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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l 12. 2020

아버지, 그리고 장날

(아버지와 장날, 몽골에서 만난 풍경)

그날도 장날이었다. 아침부터 건넌방 부엌엔 소죽이 펄펄 끓고 있다. 새벽부터 군불 겸 소죽을 쑤는 아버지의 발길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장날이라 송아지를 팔아야 하기에 일찍부터 소죽을 먹이고, 이십 리 먼 길을 소를 몰고 가야만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미소는 외양간 나서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며 뒷걸음질로 의사를 표현하는 듯하지만, 시골에서 큰 밑천이 되는 송아지는 팔아야만 하는 살림살이였다.


어느  새벽,  동네에 사는 황소를 찾아 아버지는 소와 함께 길을 나섰고, 어미는   가까이의 고단함 끝에 귀여운 송아지를 출산하였다. 시골 살림의 커다란 밑천이었던 소는 농사일을 도와주는 커다란 일꾼이기도 하였지만, 새끼를 낳아 시골 살림에 커다란 밑천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중송아지를 구입하여 이를 키우는 동안의 어려움은 많지만하루하루 돌보며 자라나는 소의 형태는 날로 달라짐을 알게 한다. 그러기에 무거운 풀 짐을 참아내고, 아침저녁으로  소죽을 쑤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건넌방에 불을 지펴야 잠을 자기도 있지만 소를 위하는 마음도 이에 못지않았으리라. 커다란 솥에 볏짚을 썰어 넣고,  위에  방아를  찧을  나온 겨를  바가지 얹어  삶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한참의 불을 지피면 솥뚜껑 사이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른  뚜껑을 열어 소죽을 한번 뒤집어 준다. 다시 불을 지피면서 김이 피어오르면 드디어 소죽이 완성되어 가고, 소는 냄새를 아는지 혀를 날름대며  목을 빼고 두리번거린다

몽골 초원에 해가 지고 있다.

이렇게   소는 무럭무럭 몸집을 불리면 아버지는 밭을 갈고 논을 갈아야 하는 소를 길들여야만 했다. 소등에 얹는 기구를 올려놓고 무거운 짐을 매   있게  다음, 동네를 돌면서 소를 훈련시켜야 했다. 처음에는 소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소란을 피우지만, 노련한 아버지의 솜씨에 결국 소는 항복하고 만다. 며칠의 훈련을 마치고 나면 일을   있는  소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되어 농사일에 요긴한 식구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곳에 있는 농산물을 실어 오기도 하고, 밭을 갈고 논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모를 심을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하니 어미소는 고단함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를 가엾이 여긴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어미소를 보살피며 틈나는 대로 소먹이를 구해오시고, 시간이 나는 대로 소풀을 먹이도록 독촉을 하시기도 하셨다


긴긴 농사일이 끝나면 추위가 찾아오는 외양간을 푸짐한 볏짚으로 치장을 하고, 바람이 스며들지 못하게 커다란 장막을 쳐서 어미소의 고마움에 대한 대우를 하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시로 외양간을 두리번거리시고, 소가 먹을만한 것이 생기면 언제나 주저하지 않으셨다


애지 중지하던 소가 병이라도 난듯하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소를 돌보셨으며, 어느 정도 어른 소가 되면 짝을 찾아  동네의 방문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송아지가 태어나던 , 집안의 경사가  듯이 좋아하셨고, 어미소는 새끼를 해칠까  두리번거리며 연신  울음을 쏟아내곤 하였다


태어나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송아지는 어미소를 더듬거리며 찾고, 어미소는 송아지를 핥으며 어미로의 사랑을 표시한다. 커다란 눈을 끔벅이며 송아지를 보면서 끔찍이도 새끼를 아끼는 마음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어쩌다 송아지가 넘어질라 하면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을 모르고 몸을 흔들어 관심을 표한다. 어미소가 가는 곳엔  송아지가 있었고, 어미는 꼬리를 연신 흔들며 아기 송아지를 뒤돌아 봤다

몽골 유목민들의 여유가 보이는 듯..

사람에 이끌려 논을 갈아야 하는 경우엔 두려움에 커다란 눈을 뜨고 논두렁을 오가면서 어미를 살폈고, 밭을 가는 경우에는 밭고랑을 오가며 어미 발치에서 풀을 뜯었다.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미 뒤에 쫄랑쫄랑 어미 발걸음에 장단을 맞추며 서둘렀고, 소죽을 먹는 어미 곁에 붙어 연신 젖을 먹는 송아지는 아름답기만 했다


풀밭이나 풀이 무성한 뒷산에서 어미소가 풀을 뜯게 되면, 송아지는 어미소 주위를 맴돌며 풀을 뜯다가도 어미소가 보이지 않으면 구슬픈 울음소리로 어미소를 찾고, 어미소는 길고도 구성진 울음으로 송아지를 찾아 나선다. 풀도 뜯지 않으며  목을 늘여 두리번거리고, 기어이 구슬픈 울음으로 송아지를 찾게 된다. 이렇게 어미와 상봉을 하게 되면 어미는  혀로 송아지를 핥으며 꼬리 치는 모습은   하는 짐승도 어미와 새끼의 관계가 어떤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달여가 지나면 송아지는 어미젖이 떨어지는 시기가 되고, 위가 사료를 섭취하여 소화할  있는 어느 정도 성숙하게 되어 서서히 어미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어미소가 일을 하면 풀을 뜯어먹으며 앙증스러운 입놀림을 하고, 어느덧 먼발치에서 어미소를 따라다니는 의젓한 송아지가 된다. 이렇게  년이 지나면서 송아지는 어느덧 중송아지가 되었고, 집안에  목돈이 필요하게 되면 송아지는 어미소와 떨어져야 하는 시기가  것이다.                                        


새벽부터 건넌방에 불을 지펴 소죽을 끓이는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지만, 그동안 송아지를 기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어미소를 돌보는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에 흐뭇하셨으리라. 하지만 애지중지하면서 기른 귀여운 송아지를 다른 사람 손에 넘겨야 한다는 서운함은 감출 수 없었으니, 소죽을 주시며 송아지를 바라보는 눈길은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서둘러 소죽을 먹이고 아침을 드신 아버지는 외양간으로 가신다. 고삐를 풀어 소를 내몰려면 어미소는 이미 눈치를 챈 듯이 발걸음을 무거워 보이고, 철없는 송아지는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쫄랑거리며 어미소를 따라나선다. 

그들의 낙타에도 그리움이 있으리라. 

송아지가 태어나고 꽉 찬 느낌을 주던 외양간은 어느새 허전함으로 가득 메워지고, 찬바람만이 휑하니 불어 집안 전체가 썰렁해진다. 물끄러미 송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도 좋은 값으로 팔리기를 바라면서도 그간 송아지와 정들었던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는가 보다. 멀어져 가는 송아지를 바라볼 수 없는 듯이, 얼른 눈길을 되돌리며 값이라도 많이 받아 서운함을 조금이나마 보상했으면 하는 생각 이리라.


집안의 커다란 재산이었던 송아지를 팔고 돌아오시는 아버지는 언제나 말이 없으셨던 것은 송아지 값이 서운했기도 했지만, 그동안 애지중지하면서 기른 송아지와의 이별 때문이었을 것이다. 허전하게 끌려서 되돌아온 어미소는 구슬픈 울음으로 서러움을 대변하고, 긴 울음은 정적 속에 있는 시골집을 긴 울림으로 휘감아 놓는다. 한동안 먹는 것을 멀리하면서 새끼에 대한 사랑을 되새겨보지만, 말로 할 수 없는 새끼와의 이별의 아픔은 한동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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