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진 왜 그리 과묵하셨을까?

(아버지의 추억, 티베트의 라싸에서)

by 바람마냥

우리 아버진, 왜 그리 과묵하셨을까?


특별히 하실 말씀이 아니면 언제나 말이 없으셨던 아버지, 여느 아버지처럼 늘 과묵하셨다. 세상 걱정을 모두 하시는 듯, 언제나 말없이 깊은 생각으로 과묵하시었다. 대신 어머니께서는 다정다감하시고, 활력 있는 살림살이로 가정에 활기를 불어넣으셨지만, 그래도 아버진 말이 없으셨다. 가정의 모든 일을 꿰뚫고 계시면서 손수 해결할 수 있어 누구에게도 얘기할 필요가 없으셨을까? 아니면, 할 일이 너무 많아 망설여서 그랬을까? 큰 놈의 결혼도, 작은놈의 학비도, 이웃과의 품앗이도 고민해야 하니 말씀하시길 망설이시다 그만 두시 었을까?


왜, 아버진 과묵하셨을까?


아버진, 우리 집의 대장이셨다. 모든 일에 선봉장 노릇을 하셨고, 언제나 치밀하고 빈틈이 없었기에 아버지 일에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가정일을 하시면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일을 하시었다. 일을 시켜도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시키지 않으려 말을 하지 않으셨을까? 아니면 대장이 섣부른 말로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 아니며, 대장에게 덤비는 졸병이 나타날까 말을 아끼셨을까?


우리 아버진, 왜 과묵하셨을까?

삶이 고단해 보였던 티베트에서 만나 그들의 삶 중 하나

아버진, 모든 가정사를 한눈에 읽고 계시었다. 날짜에 따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한치의 착오도 없으셨다. 누군가가 당신이 하는 일에 군소리를 할 수가 없도록 치밀하셨다. 하지만 언제나 당신의 생각이 옳고 언제나 주장이 강하시었다. 언제나 주장이 강하시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삶의 연속이기에 고단 하셨겠지만, 치밀한 생각과 삶으로 군더더기가 묻은 말이 싫어 말이 없으셨을까?


아버진, 밥상머리에서조차 왜 말이 없으셨을까?


어머니는 활달하시면서, 가능하면 아이들 편에 서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동네 잔칫상 준비에는 언제나 초빙 대상이셨고, 특히 술을 잘 빚으셨다. 그러니 어머님이 만드신 음식에 타박할 것이 없으셨고, 언제나 집안 어른이 밥상 앞에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말이 없으셨을까? 아니면, 밥상머리에서의 잔소리로 복이 나갈까 봐 말이 없으셨을까?


아버진, 왜 그리 말조차도 그렇게 과묵하셨을까?


아버지는 남에게 신세를 짓는 일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그 자리에 굶어 죽는다 해도 그럴 분이셨다. 언제나 강직하고 올곧았기에 구태여 남한테 구차한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한 평생을 살아가시면서 남을 탓한 일도, 남에게 헛된 덕을 보려 하지 않으셨다. 그리도 강직하게 살아오시면서 가족들에게 부탁도, 지시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남에게 부탁하는 것이 싫어 그리도 말없이 과묵하셨을까?


아버지는 왜 그리 과묵하셨을까?


언제나 말없이 가정일을 하시면서도, 자식들이 고단하면 등을 내주시는 아버지셨다. 자식들이 아프다 하면 어떻게든지 약을 구해주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손수하시었고, 누구에게도 부탁하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가족들이 알아서 일을 해결하는 것을 원하시었다. 공부하라는 말도 없으셨고, 부지런히 일을 하라는 말씀도 없으셨으며, 돼지풀을 베어 주라는 말도 없으셨다. 하지만 모든 일을 스스로 하길 원하시는 듯했으니 이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쑥스러워 그리도 과묵하셨을까?

티베트에서 만난 처절한 삶의 기도, 오체투지

아버지는 왜 그리도 과묵하셨을까?


살아가시면서 가끔, 어머니가 반대를 하시고 언쟁이 있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리 쉽게 수긍하지 않으실 것 같은 아버지의 고집이 원래 있으셨기에 그렇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버지는 고지식하신 분이고, 어머니는 그래도 타협의 가능성이 충분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항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침묵을 통한 상대방의 투항을 위해 과묵하셨을까?


아버지는 왜 그리 과묵하셨을까?


어머니와도 거의 말을 하지 않으셨고, 꼭 필요한 두세 마디가 전부인듯했다. 타인과의 대화도 거의가 듣는 것이 전부였고, 하실 말씀만 두어 마디 하셨을 뿐이지만 하시는 일에는 틀림이 없었다. 특히, 일을 하시면서 남에게 부탁을 하거나 구차한 변명은 전혀 통하지 않는 분이셨다. 술은 한 잔도 못하시는 멋이 없는 분이셨지만, 타인에게는 술잔이 철철 넘치도록 따라 주시는 분이셨다. 언제나 부지런하신 분으로 삶에는 완벽하시려 하셨기에, 남이 하는 일은 마음에 들지도 않아하셨다. 아버지는 남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모두가 스스로 완벽해지기를 기다리기만 하시다 돌아가셨을까?


우리 아버지는 왜, 그렇게도 과묵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