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끄트머리는 그랬다.

우리들 부모의 삶(아이슬란드에서 만난 풍경)

by 바람마냥

모두가 들뜬 분위기 속에 명절이 지나면, 모두는 제자리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게 된다. 길거리는 붐비게 되고, 오가는 차량들로 전국이 온통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자식을 보내는 부모는 내 자식이 제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음식과 지난해 농사지은 귀한 농산물로 바리바리 짐을 싸야 했다.


장날 차례 물건을 사 넣어 온 라면박스에 차례 음식을 넉넉히 하여 남긴 전과 부침개, 그리고 사과와 배를 넣었다. 부모님의 정이 담긴 사과와 배는 차례상에 올려졌던 것인 양 아래와 위가 칼로 잘려 나간 것이었고, 붉디붉은 둥그런 사탕도 작은 봉지에 담겨 들어있다.


지난해 뒷산에서 뜯어 따가운 햇살에 말린 고사리와 취나물은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박스 귀퉁이에는 넣었다. 여름 한때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들깨를 가을 막바지에 털어 짠 들기름도 넣었다. 들기름은 마시고 난 소주병에 담아 신문지를 둘둘 말아 넣었다. 혹시나 기름이 새어 냄새가 풍길까 걱정되어 작은 비닐로 다시 한번 넣어 실로 둘둘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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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콩은 오늘에라도 밥에 넣어 먹으라며 제일 위에 넣고, 자그마한 쌀 포대에는 뒤뜰 감나무 밑에 묻어 두었던 배추와 무를 가득 넣었다. 가을걷이를 하여 감나무 밑 한 귀퉁이를 파고 배추와 무를 넣은 다음, 위에는 찬기를 막기 위해 거적을 덮고 흙으로 그 위를 덮어 놓았었다. 배추와 무를 꺼내기 좋게 하기 위해 입구는 작은 구멍을 뚫어 볏짚을 묶어 막아 놓았었다. 입구에 손을 넣어도 배추와 무가 손에 닿지 않아 할 수 없이 고무래 힘을 빌려 꺼낸 것이다. 꺼내다 보니 옆에 졸망졸망 잡히는 감자도 꺼냈다. 조금은 언 듯한 배추와 무 그리고 감자를 쌀 포대에 가득 넣은 후, 주둥이는 노끈으로 묶으려 해도 너무 많이 넣어 묶어지지가 않는다. 할 수 없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배추를 한 포기 꺼내고 나서야 노끈으로 묶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도 성이 차지 않은 어머니는 언젠가 딸이 사준 김치냉장고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낸다. 초봄에 시작하여 여름을 이겨낸 고추를 빻아 얻은 뻘건 고춧가루이다. 설이 지나 입춘이 다가오기 무섭게 고추모를 심기 위한 비닐하우스를 만들었고, 겨우내 얼었던 밭이 겨우 녹을 즈음에 아버지는 밭이랑을 일구었다. 널따란 밭고랑을 일구어 고추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서 햇살이 준 따가움을 간직하기 위해 속 비닐을 또 씌워주었다. 이렇게 하여 얻은 고추모를 밭에 이식하고, 여름 비를 먹고 자란 고추가 어느 정도 자라면 고춧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으로 고추를 고정시켜 놓았다.


풋고추가 성장해 붉은빛으로 변하면 고추를 따고, 가을 햇살에 말려 근처 방앗간에서 곱고도 고운 고춧가루를 얻었다. 이렇게 얻은 고춧가루를 애지중지하며 보관해 온 이유는 객지에 나가 고생하는 자식들에게 주기 위함이었다. 고춧가루를 비닐봉지가 불룩하도록 넣은 후, 혹시나 터질세라 다시 한 겹 봉투에 더 넣고 주둥이를 끈으로 묶었다. 자동차 뒤 작은 공간을 찾아 고춧가루 봉투마저 넣어 이제 공간은 거의 없어졌다. 남은 공간은 마음으로 마저 채우고 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차량에 오른다.


남은 늙은 두 부모는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돌아 내려가는 차량을 바라보는 일만 남았다. 아이들이 차에 오르고 차 문을 열어 대충 인사를 끝낸 자식들은 차를 몰고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부모는 손을 흔들며 자식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기어이 자식들이 보이지 않자 돌아온 집안은 아이들의 흔적들로 어수선하다. 제멋대로 나뒹구는 이부자리며 베개들,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물건들이 어수선해 이것저것 정리하고 두 내외가 앉은 밥상머리는 허전하기만 하다.


내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아 자식들에게 주었지만, 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찾아온 집에서 편하게 쉬기나 했는지 조심스럽다. 혹시나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걱정이지만 제집에 잘 도착했는지가 더 궁금하기도 하다. 몇 푼의 용돈이라도 더 쥐여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모두가 떠난 동네를 둘러보아도 허전한 마음은 잡히지 않고, 아이들은 잘 도착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나절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 전화를 해보려 했으나, 혹시 자식들이 짜증을 낼까 봐 망설여진다. 할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텔레비전에 마음을 주고 있는 사이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다. 왜 이제야 전화를 했느냐고 묻고도 싶었지만 쓸데없는 말을 해 불편해질까 두려워 그만두었다. 이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남은 명절 끄트머리를 그냥 보내고, 명절이 아니더라도 날이 풀려 아이들이 또 내려올 때만 기다리며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올해도 명절은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