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치우는 날, 티베트에서 만난 히말라야)
올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엊저녁에 눈이 오나 했는데 아침까지 눈발이 거세다. 솜사탕같이 하얗고 탐스런 눈이 내린다. 바람을 타고 내리는 눈이 너무 아름답다. 뒷산에 있는 나무를 소복하게 감싸 안았다. 어린아이가 되어 눈 속에 빠져 들었다. 눈사람이 생각나고 초가지붕이 떠오른다. 뒷산에서 토끼를 쫒던 생각도 난다. 그런데 어디선가 요란한 기계음이 들린다. 눈을 쓸어내는 기계소리이다. 싸리비와 넉가래를 대신하는 눈 치우는 기계소리다. 순식간에 정신이 돌아왔다. 시골집 눈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하얀 눈이 쌓여 있을 시골집이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사는 시골집이다. 봄이 오면 얼른 보따리를 옮겨야 하는 집이다. 봄부터 초겨울까지는 시골집에 머문다. 산골 겨울을 견딜 수 없으면 근처 도시에서 겨울을 보낸다. 봄부터 초겨울까지 자연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이다. 겨울에도 밤은 도시에서 보내지만, 낮에는 시골집에서 살다시피 한다. 자연이 아름답고 익숙해서이지만, 눈이 많이 쌓이면 밤 시간에 도시로 가는 일이 불편해서이다. 저녁에 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수채화도 그려야 하고, 가끔 색소폰 합주도 해야 한다. 서둘러 시골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쓸어야 할 눈의 흔적이 없다. 이웃이 쓸어 버린 것이다.
눈이 오면 반드시 눈을 치우려 한다. 온 동네는 아니더라도 집 앞의 넓은 도로 눈은 치운다. 싸리비로 쓸기도 하고, 넉가래로 밀어내기도 한다. 가끔은 눈사람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이다. 눈이 오면 언제나 눈 구경이 먼저다. 앞산이 멋진 풍경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넉넉한 눈에 싸여 하늘대는 낙엽송이 아름답다. 하늘 속을 날아가는 새들이 신기하다. 어디서 잠을 자고 하루하루를 살아갈까? 무엇을 먹으며 이 겨울을 버틸까? 그래도 산에 사는 동물들은 잘 버틴다. 새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새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눈을 쓸며 세상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눈을 치워야 한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오가는 사람이 불편하다. 마을 구경 오는 사람들이 겨울에도 있다. 차가 오가는 길이 미끄러워 불편해한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빈집으로 생각할 수 있다. 텅 빈 집 같이 쓸쓸해 보여 싫다. 온기가 있는 집임을 보여주고 싶다. 더 큰 이유는 사철 누린 자연에 미안해서이다. 누릴 것만 누리고 무관심한 듯해 싫다. 오는 눈을 만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쓸지 않으면 자연에 무관심한 것 같아 싫다. 눈이 오면 눈을 치워야 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눈이 오면 시골집에 서둘러 간다. 눈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웃이 치워주기 전에 서둘러야 하는데 오늘은 이미 늦었다.
늦게 온 것이 미안한 생각이다. 서둘러 올 것인데 미처 생각을 못했다. 할 수 없이 눈 구경만 하게 생겼다. 포근한 눈이 내린 산은 더없이 아름답다. 바람에 떨어지는 눈이 살아있는 자연임을 알려준다. 앞 도랑에도 눈이 가득 내렸다. 자연에 홀려 놀다 보니 아직 쓸어야 할 눈이 남아 있는 것을 몰랐다. 뒷집에서 무슨 일인지 넓은 도로에 눈을 쓸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운동도 할 겸 잘 됐다는 생각에 넉가래를 들고 나섰다. 집 앞의 눈을 이웃이 치웠으니 윗집 눈을 대신 치워야겠다. 넉가래를 가지고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양의 눈이 내려 치우기가 버겁다. 한참의 노력 끝에 말끔히 치워졌다. 빚을 갚은 기분이라 개운하다.
길게 들어선 동네 앞길에 눈을 다 치워졌다. 열심히 내린 눈을 모두 치워 조금은 미안했다. 열심히 내린 눈을 한 나절은 봐줘야 하는데 치웠다. 엊저녁부터 내렸으니 그만하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오가는 사람이 불편하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위쪽 산에는 눈으로 가득하다. 푸르름에 하얀 눈이 이불이 되었다. 산 옆에 비탈 밭에도 흰 눈이 가득하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눈 폭풍이 일어난다. 만주 벌판에 흩날리는 눈 폭풍 같다. 멋진 눈 세상을 만들어 주는 시골이다.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시골집의 겨울은 아름다운 겨울 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