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노랫소리

오래전의 노래소리의 추억

by 바람마냥

오늘도 어김없이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노랫소리는 축 처지지 않으면서도 한이 서려있고, 흥이 곁들여 신이 나는 소리로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리이다. 아, 오늘이 장날이다 보니 동네 아저씨가 막걸리

한 잔 하시고 즐겁게 귀가하시는 중인가 보다.


시골 동네가 'ㄷ'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 집은 'ㄷ'자를 쓰는 제일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떠드는 소리로 대략 누구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오늘 노랫소리 주인공은 주씨 아저씨로, 5일마다 서는 장에 들러 한 잔 하고 오시는 것일 게다. 장날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즐거운 노랫소리다. 자주 들려오는 이 노랫소리는 늘 친숙히 들려오지만 우리 집에서는 들어 볼 수 없는 귀하고도 신기한 소리이다.


우리 집은 술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술에 관한 이야기도, 술에 관한 에피소드도, 술에 관련된 그릇조차 거의 없는 '절주', 혹은 '금주'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도 한 잔도 못하시고, 아버지는 한 잔만 하시면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어 전혀 술을 하시지 않고, 사촌들까지도 술을 즐기는 분들이 없다. 대신 외가 쪽으로는 술을 즐기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어머님은 소주를 몇 잔씩 즐기는 편이셨다.

어머님은 음식 솜씨도 좋으시지만, 술을 빚는 솜씨도 탁월하시어 동네에서도 소문난 맛있는 술을 만드셨다. 가끔 술을 빚어 놓으면, 사람 만나기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지나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못하시는 술을 같이 나누곤 하셨다. 특히, 명절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일일이 술을 따라주시면서 인심을 쓰기도 하셨다.


가끔 '술 조사'라는 것이 나왔다고 하면, 어머니는 술 만든 흔적을 없애려 분주하셨다. 감출 곳도 특별히 없는 시골집이지만, 그래도 구석진 곳을 찾아 흔적을 감추려 안간힘을 쓰시곤 했다. 쌀이 귀하던 시절에 술을 만들어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가끔 시골을 다니며 밀주를 단속하던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친정식구들이 오시면 가끔 술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피워지기 일 수였다. 그래서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이 반갑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일이었다. 술을 잘 빚는 어머니가 친정식구들이 찾아왔으니 술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술에 취해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은 우리 집에선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술과 거리가 먼 우리 식구들에게는 전혀 어색한 모습이었고, 술이 취한 사람을 어떻게 응대하여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으며, 빨리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시골 동네에는 같은 성씨가 몰려 살게 마련인데, 우리 집안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성씨의 집들은 명절이면 하루 종일 떠들썩하게 술을 나누면서 시끌벅적하였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술을 하는 사람이 없기에 술주정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술을 마시며 나누는 나름대로의 즐거움은 찾을 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윷놀이를 한다든지 아니면 무슨 행사가 있으면 동네 사람들은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기도 하고, 그간의 온갖 이야기로 하루 해가 짧아 보였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일이었고, 우리가족은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 일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있는 자리에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시는 아주 고지식하면서도 모든 일에 부지런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약주도 한잔 하지 않으셨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즐거워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 가끔 외가 식구들이 찾아와 한 잔의 술로 즐거움을 표하는 것이 신선한 모습이기도 했다.


살아오면서 가끔 술 한 잔은 괜찮겠다는 것이 늘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술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윤기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입에 대기 시작하여 조금의 술과 친해진 지금은, 한 잔의 술로 여유를 찾고 즐기는 멋을 찾아보려 하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다.


유럽의 여느 사람들처럼 햇살이 쏟아지는 광장에서 한 잔의 맥주로 한나절을 즐기는 여유는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한 잔의 맥주로 즐거움을 나누고, 한 잔의 술을 나누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멋이 부럽기도 하다.


오래전에 들렸던 아저씨의 노랫소리는 그런 여유와 재미를 벌써 꿰뚫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오늘도 들리는 노랫소리는 장날에 맞춰 고추근이나 팔아 마련한 돈으로, 장터에서 펄펄 끓는 순댓국에 막걸리 서너 잔이 저렇게 진하고도 구수한 노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 아저씬 고단한 시골 살림을 하면서 5일마다 서는 장날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날이었을 테고, 그런 기다림이 없었으면 살아가는 맛과 멋이 없었으리라.


느리면서도 한이 서렸고, 한 여름 비가 오듯이 축 처지면서도 흥이 나는 그 아저씨의 노랫소리는 지금은 들을 수가 없다. 비가 내려 질척한 길을 걸으며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도랑에 빠질 듯 빠지지 않으면서 하는 그 노랫소리는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그리운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