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잔치 속, 짠한 소주 한잔 마셨다.

(뒷동산의 봄날)

by 바람마냥

시골집 뒷산, 봄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나물을 뜯기 위해서이다. 요즈음은 두릅을 따고, 고비를 따러 많이 찾아온다. 두릅이 있을까? 아침나절 짬을 내어 뒷산을 올랐다. 여기저기에 벚꽃이 활짝 피어 봄의 생기가 돋아난다. 추운 지역이라 이제야 벚꽃이 만발하여 꽃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 좋다. 곳곳에 조팝나무도 봄을 거들고, 덩달아 병꽃나무도 분홍색 꽃을 피웠다. 그렇게 꽃들의 잔치가 골짜기에 한참이다. 산이 살아 있는 듯해 좋다. 높은 산 고랑을 타고 오른 산, 여기저기에 두릅나무들이 서 있다. 왠지 썰렁한 기분이다. 하늘로 향한 두릅나무는 푸른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처참하리만큼 발가 벗겨있다. 앙상한 가시만이 웅크리고 있다.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갔다. 양지바른 곳엔 취나물이 여기저기 나풀거린다. 아직은 덜 자라 작은 잎이 하늘거릴 뿐이다. 여기도 두릅나무가 가득하지만 두릅은 구경할 수 없다. 깜짝 놀랄 일을 보고 말았다. 누군가 두릅이 나오는 순부분을 나무채 잘라 갔다. 두릅나무 모두가 목이 잘려 처참한 꼴이다. 처절하게 짓밟힌 나무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곳곳엔 무엇을 캐 갔는지 구덩이가 수없이 많다. 봄철이기에 가끔은 나물을 뜯고 두릅을 따 먹어야 한다. 제철에 만나는 나물이니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다. 수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산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길, 길게 이어진 밭이 보인다. 고추를 심으려는지 길게 비닐이 덮여있다. 한 구석에 경운기가 세워져 있고, 근처에서 어르신이 울타리를 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네자 고라니와 멧돼지 때문에 울타리를 할 수밖에 없다 하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무거운 짐을 옮기려 하신다. 짐을 받아 옮기 드리려 하니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얼른 무거운 짐을 옮겨 놓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잠깐 기다려 보라 하신다. 소주를 한 잔 하고 가라는 것이 아닌가? 소주, 어르신이 소주를 가지고 오신 모양이다. 주섬주섬 짐을 여시 더니 소주를 한 병 꺼내신다. 소주병을 들어 한 잔 권하는 것이 아닌가?


잔을 받아 어르신께 따라 드리자 경운기 운전해야 한단다. 그래도 한 잔을 권해 드렸더니 조금만 마시고 소주잔을 건네주신다. 소주잔도 변변치 않은 스티로폼 술잔이다. 한잔이 소주 두 잔을 될 양이다. 작은 그릇에 담긴 두부를 안주로 건네며 어서 마시란다. 얼른 한 잔을 마셨더니 또 한잔을 권하신다. 소주잔에 따른 양이 많아서인지 얼큰한 기분이다. 다시 한 잔을 받아 마시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제 술잔을 사양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외롭고 고단한 밭일에 사람이 그리우셨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발길을 잡으신다. 연세가 80이 가까운데 놀면 뭐하느냐 하신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일을 해야 한단다. 연세에 비해 건강한 얼굴에 허리도 아직은 꼿꼿하시다. 낯선 어르신과 나눈 소주 한 잔이 짠하게 전해진다. 두릅나무에 상한 마음은 잊었지만, 낯선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어르신 생각에서이다. 서둘러 발길 돌려 내려오는 길, 어르신은 아직도 울타리 작업을 하고 계신다. 일을 도와주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잠시 도와 드리고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다.


온 산에는 하얀 벚꽃이 가득 있고, 봄볕이 따스한 봄날이다. 나물을 뜯으러 올라갔던 발길이 어르신을 만나 맛있는 술을 한 잔 하고 내려왔다. 언제 소주라도 한 잔 사드려야겠다. 술이라도 준비해 밭일을 하고 계실 어른께 드려야겠다. 술을 두 잔 얻어 마셨으니 소주 두병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다. 어느 봄날, 멋있는 봄꽃이 만발한 산골짜기에서 술 한 잔을 얻어 마셨다. 기분 좋은 봄 술잔에는 어르신의 짠한 마음이 녹아있었다. 봄꽃 핀 꽃잔치에 짠한 술 잔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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