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 온 어버이 날

(어버이 날에 해 본 생각)

by 바람마냥

저녁 시간, 아내와 수채화를 그리려 화실에 가는 길이다. 갑자기 전화가 울려 보니 평생을 같이 한 친구의 전화이다. 시골에 자리 잡고 살아온 지가 몇 년 되었어도 자주 만나는 친구이다. 맛있는 술집에 있으니 어서 오라는 것이다. 차를 타고 오면 10여분이면 가능하니 20분을 기다리겠단다. 아내를 화실에 내려 주고 친구에게 가야만 했다. 가지 않으면 가끔 불러주지도 않을 테고 또 혼이 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 택시를 타기로 했다. 어렵게 만난 택시 기사는 60대 정도 된 듯한 사람이다. 차를 타자마자 말을 건넨다.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이들과 떨어져 살지만 가끔은 집에 온단다. 집에 오면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전화기를 갖고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단다.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이다.


세월이 그렇게 되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답을 했다. 깜짝 놀란 기사는 말도 안 된다는 소리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이다. 자기는 벼락같이 소리를 지른단다. 어림도 없단다. 부모 집에 왔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휴대폰에 매달려 정신이 없느냐는 말이다. 어쩔 수없다는 대답을 하고 말았지만 머리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러면서 나의 집, 그리고 우리 집 풍경을 생각해 본다. 우리 집의 모양 어떨까? 우리 집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집에는 무슨 생각으로 내려와 지내다 떠날까?


가끔 시골에 내려오는 아이들, 가능하면 같이 어울리려 하는 모습이다. 저녁이면 삼겹살을 굽고, 술 한 잔씩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저녁을 보낸다. 어버이 날이 다가온다며 부산에서 딸과 사위가 왔고, 수원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왔다. 부산에 있는 사위가 대게를 한 상자 사들고 왔고, 미리 준비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재미있는 저녁을 보냈다. 고요한 시골에서의 저녁, 대게가 있고 삼겹살이 노랗게 구워진다. 입을 떡 벌린 조개들이 불위에서 익어간다. 멀리 소쩍새가 구색을 맞추어 준다. 분위기를 알았는지 가끔 보슬비가 내려준다. 형광색 가로등이 훤히 비추는 저녁 밤, 언제까지 이런 밤을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밤이다. 모두에게 고마우면서도 감사한 저녁이길 바라며, 어버이날 근처가 아닌 그냥 만나는 날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서로 어울리며, 재미있고도 즐거운 날을 보내고 모두 떠나갔다. 아내와 둘만이 남아 있다. 다시 생활 터전으로 떠나는 두 아이들, 아내는 줄 수 있는 것을 바리바리 챙겨준다. 뒷산에서 꺾은 두릅도 넣어주고, 텃밭에 길러 놓은 대파도 챙겨준다. 봄내 모아 놓은 이런저런 나물도 빠트릴 수 없다. 이렇게 엄마 마음까지 담아 아이들을 보낸 집은 허전함만이 남아있다. 먼 객지에서 먹고살기에 힘겨웠을 아이들,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쉼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손녀는 꽃밭을 둘러보며 물을 주고,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서늘한 밤에 앉아 즐기는 삼겹살 파티는 즐거움을 준듯해 좋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많은 추억을 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아내와 함께 열심히 가꾼 시골집에는 꽃들이 가득하다. 작은 채소밭에는 각종 야채가 예쁘게 자리하고 있다. 뜰앞 잔디밭에 푸름이 가득하고, 상큼한 햇살이 내려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는 듯도 하다. 살기가 힘들고, 어려워서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나 생각도 해본다. 가끔은 집에 관해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은 우리 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부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오래전, 나의 시골집은 초가지붕을 거쳐 스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었다. 작은 부엌에 어머니가 계시고, 채마밭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다. 그 자리에 없으면 가까운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그 사람들이 있어 집안은 언제나 온기가 가득했다. 나는 그 온기가 그리워 시골집을 자주 찾았다. 계획도 없이 집을 찾았고, 그리운 온기를 흠뻑 안고 일터로 돌아왔다. 흥건히 낮잠이 그리웠고, 부모님의 냄새가 그리워 그냥, 찾아가는 집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했다.


커다란 이층 집에 어질러진 짐들을 정리한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손녀가 늘어놓은 물건들도 정리해야 한다. 각방에 깔려 있는 이불도 정리해야 하고, 곳곳에 있는 수건도 빨아 두어야 한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말끔히 청소를 한다. 아이들이 해 놓은 자리를 아무 말 없이 아래 위층에서 정리정돈을 한다. 아이들이 있었기에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감사해한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이렇게 큰집도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모두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다. 두 아이가 오는 날, 아내는 전기장판을 아들 내외에게 내주고, 남은 것은 딸 내외에게 내주었다. 아낌없이 주려는 부모의 마음을 그들은 얼마나 알고 갔을까? 힘겹게 준비한 시골집을 어떻게 생각하고 갔을까? 세월이 더 흘러가면, 아이들은 이 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손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억하게 될까?


언젠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큰 선물보다 부모님이 어떤 약을 챙겨 드시는가 한 번쯤 알아봤으며 좋겠단다. 부모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말일 것이다. 저녁내 떠들썩한 시골집을 채워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월이 흐름에 반할 수 없으니 이곳저곳이 저절로 삐걱거림은 어쩔 수 없다. 부지런히 몸을 아끼고 가꾸면서 남은 세월을 즐겁게 살아가려 하고 있지만, 세월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안다. 나도 그러지 못했으니 거기까지 바란다는 것은 욕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가끔이라도 찾아와 고기라도 굽고, 먹거리라도 준비해와 어울려 줌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친구 덕분에 만난 택시기사의 몇 마디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다.


아이들이 찾아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떠나간 뒷자리엔 그들의 그림자만 남아 있다. 혹시, 아이들의 늙어가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나는 세월 따라 불편함을 주는 아버지는 아니었을까?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을까? 다정다감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삶에 그슬려도 최선을 다한 삶이 그들에게 만족스러울리는 만무하다. 언제나 부족했고 미숙했다는 생각은 늘 지울 수 없다. 세월의 흐름을 떨쳐 낼 수 없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또 욕심을 또 부려보기도 한다. 가끔 엄마가 그립고 집이 좋아 낮잠이라도 한숨 자려 찾아오는 집일 수는 없을까? 엄마 밥이 그리워 찾아오는 집이 될 수는 없을까?


엄마, 아빠가 가꾸어 놓은 꽃이 보고 싶고, 예쁘게 길러 놓은 야채라도 그리워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부모 일을 대신할 수는 없어도, 느닷없이 찾고 싶은 좋은 집이었으면 더 좋겠다. 그냥 엄마가 사는 집이니 찾아오고, 엄마 밥이 그리워 찾아오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엄마 그리고 아빠가 가꾸어 놓은 화단이 보고 싶고, 그들이 그린 수채화가 걸린 집이 그리워지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만난 어버이 날, 슬쩍 돈 몇 푼으로 대신하는 아이들이 아닌 엄마의 약봉지라도 챙겨보는 자식, 작은 것이라도 관심을 갖는 그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어버이 날의 욕심이기도 하다. 다시 찾아온, 어버이 날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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