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라이딩, 녹음이 가득한 낙동강 풍경)
친구들과 어울려 떠난 낙동강 자전거길, 애초엔 2박 3일 동안 297km를 완주할 계획으로 시작한 도전이었다. 비예보라는 복병을 만났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만나 급히 1박 2일로 수정해야만 했다. 자주 다니는 자전거길이지만, 머릿결이 허연 친구들이라 언제나 기대감과 걱정을 동시에 안고 출발하는 자전거길이다. 보통의 자전거길은 40km에서 60km를 계획하는데, 멀리 나서는 자전거길은 대략 100km 정도를 다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늙음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허세 좋게 출발한 자전거 길, 그래도 하고 난 후의 깔끔함은 더 없는 환희를 준다. 그래서 다시 출발해 보는 자전거길이다.
첫날 자전거를 실은 차를 상주 상풍교 인증센터에 주차했다. 자전거를 정비하여 고단한 라이딩이 시작됐다. 거대한 낙동강이 물줄기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고, 널따란 들판에는 모내기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넓은 들판을 보고 달린 자전거길은 잠깐만에 상주보에 도착했다. 드넓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낙동강이다. 잠시 쉬는 사이 멋진 젊은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다. 공무원인 부부가 휴가를 내서 부산서 출발했단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는 저 시절에 무엇을 했을까?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넉넉함을 가득 안고 달려가는 부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다시 길을 잡았다.
제방길 곳곳에 피기 시작한 금계국이 넘치는 번식력을 자랑한다. 곳에 따라서는 피기도 했고, 이제 피기 시작도 한다. 노랑으로 여름을 물들이는 금계국, 전국을 누비며 자라고 있다. 넘치는 번식력, 곳곳에 살아남은 그들이 대단하기도 하고, 언젠가 금계국 천지가 될까 두렵기도 하다. 시골집에 자리 잡았던 몇 포기가 집을 둘러싸도록 번식을 했다. 토종 식물이 설 곳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작은 생각에서이다. 첫 번째 고비, 경천대 국민관광단지를 넘어가는 고개를 만났다. 경사도가 상당한 산길로 접어든 게 잘못이었다. 우회도로를 지나치는 바람에 고단한 산길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엄청난 고갯길에 찾아온 더위는 몸을 달구어 놓고 말았다. 헐떡거리며 산고개를 올라갔다. 찾아오는 바람은 심장까지 식혀준다. 산 언덕에 다달았다.
언덕을 내려와 고단한 산길을 벗어나자 멋진 낙동강이 반겨준다. 대단한 수량을 자랑하는 낙동강을 가까이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다. 찾아온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유난히 빛나고 있는 낙동강이다. 고단함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다는 평범함 진리를 깨달으며 내달리는 자전거는 고단함도 잊은 듯하다. 세상을 구경하는 방법은 어렵지만 즐겁다는 생각을 늘 하는 자전거길이다. 가는 곳마다 길을 안내하는 낙동강 물길은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있다. 물길을 따라 펼쳐지는 푸르름은 발길을 멎게 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만난 낙동강은 말이 없었다. 곳곳에 만들어 놓은 대규모의 보가 잠잠한 호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거대한 저수지를 연상케 한다.
오래전 시골에서 만났던 아기자기한 보, 흐르는 개울물이 아깝던 시절이다. 농사철에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냇물에 말뚝을 박는다. 말뚝에 나무를 엮고 흙을 쌓아 물의 흐름을 줄이면서 물을 가두어 놓는 것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보였다. 하지만 저수지가 생기고, 대형보를 만들어 물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물의 양도 바뀌었고, 흐름도 바뀌었다. 자전거길에 만난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고령보, 달성보, 합천 창령보 등 대규모의 보가 조용한 낙동강을 만들어 놓았다. 철거와 유지를 가지고 각가지 논의를 하지만, 언제나 힘의 논리에 집착하는 인간의 아집에 관심마저 놓게 만들어 놓았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길을 잡는다.
100km로 가까워지자 근육이 고단해한다. 칠곡을 지나 성주에 이르자 저녁이 가까워졌다. 간단히 음료수로 몸을 식히며 길을 나선다. 저녁이 되었으니 잠자리를 찾아야 했고, 저녁과 아침 먹을 곳을 찾아야 했다. 세상엔 살아볼 만한 세상임을 알게 하는 저녁나절이다. 쉴 곳을 찾아 헤매던 순간, 쉼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동호인을 만났다. 우리 세대쯤 되는 사람이다. 갈 곳을 잃은 듯한 청춘(?)들을 알아차리고 세세하게 묻고 알려준다. 깨끗한 잠자리와 먹을 만한 먹거리도 알려준다. 길을 잃지 않도록 거리까지 알려주면 유유히 사라진다.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를 찾았을 때는 거의 100km에 가깝게 달려왔다. 다리의 근육도 지치고, 허기에 목마름이 가득한 저녁이다.
지나는 길손의 도움으로 찾은 잠자리와 식당에서 고단함 끝에 호사를 누려봤다. 민물장어와 간단한 소주를 곁들여 거나한 저녁이다. 이튿날 다시 출발이다. 오늘은 60km 정도만 달려가면 된다. 내일 비가 온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남은 여정은 다음 기회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아침에 만나는 낙동강은 신선하다. 낙동강의 푸르름과 여름을 맞이하는 검푸름은 멋진 계절임을 손수 보여주고 있다. 꽃이 피어있고, 물이 있으며 거기에 녹음이 어울린다. 새들이 찾아들고 호수인듯한 강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헤엄을 친다. 그 위에 젊은 듯한 늙어가는 청춘들이 바람을 가른다. 강가에 만들어진 데크길을 가르는 바람은 신선하기만 하다. 다시는 올 수 없는 아름다운 길을 또 나선다. 계절 속을 유영하는 젊은 청춘들의 방황이자 반항이기도 하다.
달성에서 고령으로 넘어가야 한다. 자전거길을 찾기에 쉽지 않다. 지나는 동호인을 만났다. 대구에서 출발했단다. 합천 창령보를 묻자 두말도 하지 않는다. '따라 오이소!', 딱 한 마디를 하고 앞장을 선다. 경상도 사나이 답다는 생각을 또 한다. 젊은이는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늙은 청춘들의 보조를 맞추어 준다. 어려운 도시길을 벗어나 기존 도로와 자전거길을 이어주는 곳을 만났다. 기존의 길과 새로 난 자전거길을 이어주는 곳은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망설여야 하는 곳이 너무 많다. 젊은 듯한 사람이 천천히 안내를 하고, 낙동강 길을 찾게 되자 인사를 한다. 가봐야겠단다. 그동안 우리의 보조를 맞추어 주느라 천천히 왔음을 알게 한다. 서둘러 긴 낙동강 길을 따라 멀어지는 젊은이, 곳곳에서 만나는 이웃들 덕분에 편안한 자전거길을 또 나선다. 곳곳의 제방은 분위기가 다르다. 제방 곳곳에 금계국 천지를 이루고 거기에 보랏빛 덩굴 나물이 조화를 이룬다.
헤어리 베치(hairy vetch), 청풍보라, 벳지 또는 덩굴 나물로도 불리는 보랏색 식물이다. 낙동강 자전거길에서 자주 만나는 헤어리 베치가 멋진 광경을 만들어 준다. 사료작물로 도입하였으나 내한성이 좋아 녹비작물로도 재배되는 식물이다. 연한 잎과 줄기를 삶거나 데처 먹기도 하는 나물이란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제방을 메우고 있다. 얼마 지나면 금계국이 또 자리하고 있다. 멈출 수 없는 번식력을 자랑하는 금계국이 거친 자갈밭에도 노란 꽃을 피웠다. 거기에 보랏빛 헤어리 베치가 어울리며 낙동강변을 빛내주고 있다. 가끔 만나는 계절의 꽃, 하얀 찔레나무가 꽃을 뒤집어쓰고 있다. 다리의 근육이 풀릴 때쯤 시골에서 자주 만나는 한 식부 뷔페를 만났다. 합천 창녕보를 10km 남긴 곳이다. 허기진 배를 안고 들어간 식당엔 눈이 휘둥레해진다.
갖가지 야채와 반찬이 가득하다. 허기짐 속에 만난 하얀 쌀밥이 기다리고 있고, 푸르른 푸성귀가 눈을 번쩍 띄게 한다. 아름다움과 먹음직함을 겸한 점심을 해결한다. 시원한 냉막걸리 한 사발은 더 찾을 것이 없다. 시원함에 온몸을 짜릿하게 해 준다. 젊은 사장은 얼음을 한 사발 주며 물통에 채워가란다. 너무도 고마운 낙동강 자전거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적당히 배를 불리고 찾아 나선 자전거길은 다시 험한 길로 접어들었다. 무심사의 절벽 같은 산길, 도저히 타고 오를 수가 없는 길이다. 자전거를 들고 가야 하는 길인데, 여기서도 길을 잘못 잡은 탓이었다. 평평한 길을 찾지 못해 찾은 무심사엔 갖가지 공사가 한창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어 미안한 생각이다. 어서 점프 차량을 불러 원점으로 복귀해야 하겠다. 서둘러 전화를 했다
하루 한나절을 달려온 자전거길, 거의 160여 km에 다다른다. 머릿결이 허연 친구들과 어울림이 이루어낸 도전의 결과이다. 남은 130여 km는 다음으로 미루고 멋진 자전거길을 마무리해야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멀지 않아 고희를 바라보는 청춘들의 삶의 도전길이 이렇게 마무리한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던가? 친구가 술잔을 들며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청바지'란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란다. 지금부터가 아니고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 자전거를 끌고 숨이 턱턱 막히는 산길을 올라 볼 것인가? 언제 낙동강변의 무심사를 만날 수 있을까? 푸름과 젊음이 어려있는 300km 낙동강 길을 언제 또 가볼 것인가? 할 수 있으면 지금 해야 하는 청춘들이기에 다시 또 무슨 도전을 해볼까 궁금해하며 돌아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