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백일홍의 추억, 우연히 만난 목백일홍)
언젠가 무창포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도로, 길 옆 언덕에 빨갛게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빨강으로 물들인 나무가 바닷바람에 일렁이고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푸르른 잎을 바탕으로 위쪽으로는 빨강 꽃을 가득 피운 꽃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무슨 꽃인지 궁금해 가까이서 바라본 꽃이 목백일홍이었다. 이렇게 만난 목백일홍, 시골길을 오가다 눈에 띄는 목백일홍이 아름다워 늘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시골집에 이사를 하고 이웃집에서 다시 목백일홍을 만났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목백일홍의 붉은 꽃은 늘 즐거움을 주는 꽃이었다. 참, 아름다웠다.
백일홍 하면 어린 시절에 만났던 엄마의 작은 장독대가 생각난다. 납작한 돌로 쌓아 올린 장독대, 주위에는 빨간 꽃을 피운 채송화와 봉숭아가 있었고, 백일 동안 꽃이 핀다는 백일홍도 있었다. 붉은 채송화와 봉숭아가 꽃을 피우고, 덩달아 백일홍이 꽃을 피워 환하게 해 주던 장독대였다. 붉은 꽃을 피우던 그 백일홍은 초롱꽃목 국화과에 속하는 원예식물이다. 멕시코가 원산지로 잡초를 개량하여 원예식물로 보급된 것인데, 100일 정도 꽃이 핀다 하여 백일홍이라 하는 꽃이다. 아주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백일홍은 지금도 시골길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꽃이다. 백일홍과 목백일홍은 100일 정도 꽃이 핀다 해서 백일홍과 목백일홍이지만 둘은 전혀 다른 식물이다.
목백일홍, 도금양목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 꽃이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하여 백일홍 나무, 세월 따라 백일홍 나무가 배기롱나무로 변하여 마침내 배롱나무가 되기도 했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당나라 장안의 자미성에 많이 심어 자미화(紫微花)라고도 하는 목백일홍은 붉은색이 흔하지만, 보라색과 흰꽃도 있다고 한다. 여름이 오면서 목백일홍이 피는 계절이 된 것이다. 목백일홍은 100일간 꽃이 핀다고 한다. 어떻게 꽃이 100일간이나 피어 있을 수 있을까?
꽃이 100일 동안 핀다는 목백일홍은 꽃이 피고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뭇가지 끝에 원뿔 모양의 꽃대가 솟아 있고, 꽃대 안에 여러 개의 꽃봉오리가 모여 있다. 많은 꽃봉오리가 아래로부터 차례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아래부터 먼저 핀 꽃봉오리가 지면 다음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면서 오랜 기간 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의 꽃들은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만, 목백일홍은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꽃을 피우는데 몇 달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목백일홍이 100일간 꽃이 핀다고 하는 것이다. 신기한 목백일홍의 삶이다.
커다란 목백일홍 줄기는 껍질이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옅은 붉은색이 섞인 갈색의 미끄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 매끄러운 목백일홍의 줄기는 화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매끄러운 줄기가 나신(裸身)을 닮았다 하여 뜰안에 심지 않았다고도 하니 말이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가지 끝이 흔들려서 간지럼나무 또는 부끄럼 나무, 한자로는 파양수(怕癢樹)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원숭이도 미끄러워 떨어질 정도로 미끄럽다 하여 '원숭이 미끄럼 나무'라 하는 나무이다. 시골집에 이사를 오면서 만난 목백일홍, 시골집에도 한 그루 정도 있으면 좋을 듯했다. 아내가 이웃집 꽃을 보며 한 그루 심어 보자고 한다. 추위를 고민하다가 심어 보기로 했다.
지지난 해에 나무시장에 들러 한 그루를 화단의 잘 보이는 곳에 심었다. 나무를 심은 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나와 목백일홍이라는 것만 보여주었다. 서서히 겨울이 오면서 추운 겨울이 염려되어 두터운 겨울 옷을 해 입였다. 무난히 겨울을 지낸 목백일홍은 그 해 나무값을 했다. 붉은 꽃을 가득히 피워 시골집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부러워하는 나무로 성장해 흐뭇함을 안겨주었던 목백일홍이었다. 지난해 겨울에 변고가 생겼다. 역시 추운 지역이라 두터운 방한복을 입히고 조마조마한 겨울을 지나고 나니 일이 생겼다.
봄이면 잎이 나오던 목백일홍이 소식이 없는 것이다. 이웃집에서 꽃을 피워 보여주던 나무도 소식이 없단다. 혹시나 하면서 며칠을 걱정했으나 봄이 왔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푸르른 봄이 익어 갈 무렵까지 소식이 없다. 할 수 없이 나무를 꺾어 보기도 하고, 나무를 캐보기로 했다. 겨울을 나기가 힘들었는가 보다. 뿌리부터 검은색으로 상해 있었고, 줄기는 물기가 없이 죽고 만 것이었다. 이웃집의 목백일홍도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시골 동네에 있던 목백일홍이 모두 죽는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조금은 추운 곳에 살다 보니 모기나 해충의 피해는 덜 받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따스함이 필요한 나무들을 볼 수 없음에 늘 안타깝다. 가까스로 감나무는 살려 놓고 있지만, 아름다웠던 홍가시나무는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붉은 옷으로 아름다움을 과시하던 남천은 올해도 간신히 잎을 내밀었다. 근처보다 해발이 200m 정도 높은 지역이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고민이 생긴다. 어떻게 할까? 100일 동안이나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주는 목백일홍을 포기할 수 없어서이다.
어떻게 할까? 목백일홍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꾸어 볼까? 지나는 길에 자주 만나는 자귀나무를 심어 볼까? 아니면 목백일홍을 다시 한번 꿈꾸어 볼까? 목백일홍이 죽고 나자 오가는 곳곳에서 목백일홍만 눈에 띈다. 지난해 꽃을 피웠던 목백일홍이 자주 생각나는 이유이다. 오늘도 고민에 빠졌다. 다시 한번 심어 볼까, 아니면 다른 나무를 심어 볼까? 빨갛게 물들여 주었던 목백일홍의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줄까를 걱정하고 있는 요즈음, 화단의 배롱나무가 기억나는 여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