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삶의 모습, 수채화)
아내와 화실에 들러 수채화 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시간, 오후 9시가 다 되었다. 시골집으로 간다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상쾌하다. 시내에 있는 화실, 에어컨이 차가움을 선사하던 방을 나서자 숨이 턱 막힌다. 찜통더위가 그대로 얼굴을 파고든다. 마스크까지 했으니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차에 올라 집으로 오는 중, 빨간 신호등이 길을 막는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옆을 휙 하고 지나간다. 또 소리가 나더니 빨간 신호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휙 하고 지나친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두대가 옆에 서 있다.
코로나가 번창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혹시, 잠잠해지나 하면 엉뚱한 곳에서 사달이 난다. 괜찮거니 하며 방심하는 순간, 작은 생각은 엄청난 화를 불러온다. 작은 행동이 거대한 산을 무너뜨리듯이 대참사가 곳곳에서 일어난다. 모진 수고를 다하는 사람이 있고, 삶을 꾸리려 엄청난 고생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먹고 살길이 없다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도 흔하다.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 중 하나가 배달 오토바이 긴 행렬이다. 작은 생각, 그렇게도 생각이 없었을까?
삶을 야구에 던진 사람들, 프로야구 선수들이다. 보통사람이 생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부를 거머쥔 선수들도 많다. 그들의 작은 생각이 또 거대한 산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 코로나 난국에 외부인과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팬들이 있고 그 대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고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팬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외부인을 불러 술을 마시고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야구장에 들어섰다. 무더운 날씨를 마다하고 찾아주는 팬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가끔은 생각해 본다. 그렇게도 많은 돈을 걸어야 할 사람들인가? 야구장을 찾았던 기억이 억울하기도 하다. 고단한 오토바이 소리가 또 들린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바뀌고 있었다. 수도 없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에 정신이 혼돈스럽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바뀐 것은 한두 개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이 배달 오토바이 소리이다. 치열하다 못해 처절함이 녹아있다. 삶이 그렇게 변하고 말았다. 남보다 빨리 나르고, 부지런이 오고 가야 자식을 먹이고 아내를 건사할 수 있다. 한증막 같은 여름 속에 헬맷을 써야 했다. 더움이 가득하면 핼맷을 들고 뜨거운 숨을 뱉어내야 한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저녁이다. 간신히 화를 참으며 고개를 넘어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한없이 편안함을 주는 개망초꽃이 달밤임을 알려준다. 아직도 길가 양옆으로 길게 열을 지어 피어 있다. 먼 산등성이 외딴집엔 산짐승 방지용 불빛인 반짝인다. 빨간 불빛만 아니었으면 한없이 평화스러운 시골 동네이다. 다시 길을 잡아 올라가니 긴 산등성이가 맞이해 준다. 비탈밭에 가을을 밝혀줄 국화가 가득하다. 밭주인인 듯한 어르신이 새벽부터 나와 돌보는 비탈밭이다. 곳곳에 들깨도 심어져 있고, 지난해 꽃을 피웠던 국화가 긴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창문을 열었다. 시골 냄새를 맡고 싶어서이다. 상쾌한 바람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시골길의 냄새이다.
어둠을 뚫고 도착한 시골집 앞, 밝은 가로등이 길을 안내한다. 더없이 상큼한 시골의 밤공기이다. 깊이 들이 쉰 숨을 내뱉고 싶지 않은 맛이다. 어디서 이런 맛을 볼 수 있을까? 언젠가 네팔의 히말라야 언덕에서 마셨던 그 공기 맛이다. 긴 숨을 내뱉으며 다시 한번 들이마셔본다. 통쾌한 숨통이 트이며 날아갈 듯하다. 복잡했던 생각이 조금이나마 씻겨진다. 길가에 피어 있는 황금빛 메리골드가 환하게 웃고 있다. 왜 메리골드라고 했는지 알 것만 같은 밤이다. 여전히 도랑물은 졸졸거리며 밤길을 안내한다. 언제 들어도 평화스러움을 주는 내 도랑물이다. 대문임을 알려주는 문을 지났다. 멀리서 하얀 꽃이 눈에 들어온다.
잔디밭 가에 자리 잡은 나무수국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검음 속에 하양이 섞여 그런대로 멋을 부린다. 어둠 속에 비치는 수북한 꽃 봉오리가 다복하다. 앞 산 검푸른 낙엽송이 산바람에 흔들댄다. 나도 여기 있으니 봐 달라는 몸짓이다. 긴 몸을 통째로 흔들며 박자를 맞춰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팔을 들고 좌우로 흔드는 형상이다. 갖가지 꽃이 피어있고, 작은 도랑물이 갈갈대는 저녁에 시원한 바람이 찾아온 것이다. 고단한 역병이 그칠 줄 모르는 세상, 시원한 시골 속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안한 생각이다. 고단함을 멀리하지 못하는 수많은 삶들이 생각나서이다.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 조금이라도 이웃을 배려하는 세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서 역병이 끝나고 예전의 소박한 삶들이 이어졌으면 하는 저녁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