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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l 30. 2021

어머니, 당신의 화단을 찾았습니다.

(어머니의 화단, 풍접초)

오래전, 아주아주 오래전에 만났던 꽃이 있었다. 어머니의 화단에서 만났던 꽃이다. 허물어져가는 담장 밑엔 채송화가 있었고 봉숭아도 있었다. 그곳엔 백일홍과 맨드라미도 있었던 기억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담장 밑 어머니의 화단, 분홍빛과 흰빛을 띤 다복한 꽃이 피어 있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무슨 꽃인지는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월이 지나며 늘 궁금했지만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길을 지나다 만나는 비슷한 꽃이면 또 기억해보곤 했다. 그것이 무슨 꽃이었을까?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나서려는데 앞 산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나무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오늘도 엄청난 더위를 보여주려나 보다. 얼른 서둘러야 동네를 빠져나갈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일터로 나서기 전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시골 동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 쑥스럽고 미안해서이다.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는 기분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 시원한 기분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화려하게 꽃을 피운 풍접초

좁은 논길로 접어들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트럭이 농로를 지키고 있지만,  커다란 중형 세단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터로 나서는 길에 타고 온 모양이다. 시골집 골목에도 트럭과 멋진 자가용이 가득하다. 기계화로 거대한 영농 기계들을 시골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다. 살기 좋은 세월이 왔음을 실감케 하는 풍경들이다. 바람이 시원하지만 햇살은 따가워 그늘을 찾아 페달을 밟는다. 예쁘게 지어 놓은 시골집에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하다. 양지바른 곳에 멋들어지게 지어 놓은 시골집을 만났다. 


갖가지 꽃과 나무로 화단을 정리해 놓았다. 향나무로 동물들의 모양을 만들어 놓았고, 작은 화단에는 갖가지 꽃이 피어있다. 맨드라미가 있고, 백일홍도 있다. 봉숭아가 붉은 꽃을 피웠다.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화단에 오래전 어머니 화단에서 보았던 꽃이 있는 것이 아닌가? 분홍과 흰색이 섞여 화려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밝은 그 꽃이다. 긴 수염이 늘어져 있는 어머니의 화단에서 보았던 그 꽃이다. 오랜 기억 속에 어머니의 화단을 기억해 볼 수 있는 반가운 꽃을 만난 것이다.

추억을 깨워주는 봉숭아꽃

햇살을 따라 사진을 찍고 폭풍 검색을 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름하여 '풍접초'라 하는 꽃이었다. 풍접초(風蝶草),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이며 클레오메, 백화채, 족두리풀 등으로 불리는 꽃이란다. 꽃 모양이 바람에 나부끼는 나비의 날갯짓 같다 하여 풍접초, 화려함이 새색시가 시집갈 때 쓰던 족두리를 닮았다 하여 족두리꽃이라 하기도 한단다. 홍접초와 백접초는 들어 본 이름이지만 풍접초는 처음 접하는 꽃 이름이다.  


풍접초가 활짝 꽃을 피우고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나비의 날갯짓 같다는 말처럼 아름답다. 분홍과 하양이 적당히 섞인 그 꽃이다. 긴 수염이 하늘거리고, 꽃이 지면서 아래쪽으로는 씨를 담은 주머니가 콩처럼 달려 있는 모습이다. 나비의 날갯짓 같기도 하고, 언뜻 보면 새색시 머리에 얹은 족두리와도 같이 화사한 꽃이다. 오랜 기억 속에 숨겨진 어머니의 화단을 꾸역 구역 끄집어 내 본다. 어머니의 화단은 여러 곳에 있었는데, 곳곳에 다양한 꽃을 심어 놓으셨다.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시면서도 어머니는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다. 궁핍한 살림살이 시름을 덜기 위해 당신의 화단을 만드셨을 것이리라. 우선은 무너져가는 돌담 밑에 소박한 화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단엔 여러 가지 꽃이 있었다. 채송화와 봉숭아가 있었고 빨간 백일홍도 있었다. 작은 분꽃이 분홍색 꽃을 피워주었다. 많은 꽃들이 꽃을 피우고 있던 돌담 밑 그 화단에, 화려한 풍접초가 자리하고 있었다. 화단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화단의 주인 역할을 하는 꽃이었다. 두고두고 기억해 보려 했던 어머니의 꽃이었다.

가을로 가는 길

뒤뜰 언덕 위에는 하얀 수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래쪽으론 푸른 이끼가 자라 푸름을 주었고, 하얀 꽃으로 뒤 뜰을 환하게 비추어 주던 꽃이었다. 어제나 푸근함을 주던 수국이었다. 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꽃을 피웠고, 지나는 작은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멋진 몸짓이었다. 다시 뒤뜰을 돌아서면 작은 화단이 또 있었다. 자그마한 장독대, 납작한 돌로 만들어진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 뒤편으론 두 그루의 배나무가 있었고, 돌로 만들어진 장독대 주변에도 소박한 어머니의 화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화단에는 매화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키에 하얀 꽃을 달고 서 있었던 매화, 당신의 모습과도 같은 매화나무였다. 매화 옆으로는 파란 난초가 있어 봄이면 다복한 새싹을 밀어내곤 했다. 장독대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던 난초는 늘 푸르름 속에 꽃을 피워 주었다. 난초 옆으로는 껑충한 나리가 꽃을 피우고 서 있었는데, 잎이 나는 날개 부분에 까만 씨가 있었던 것으로 보면 참나리였을 것이다. 어머니 정원에는 꽃으로 가득했었지만, 그중에서도 풍접초가 으뜸이었다. 분홍색 꽃을 가득히 피운 어머니 화단의 풍접초를 만난 것이다. 

정원 끝에 핀 접시꽃

바람에 흔들리는 풍접초를 뒤로 하고 페달을 밟는다. 드문드문 있는 시골집 곳곳엔 어머니 화단에서 만났던 꽃들을 만날 수 있다. 봉숭아를 비롯해 백일홍과 맨드라미도 만났다. 나리가 곳곳에서 꽃을 피웠다. 오래도록 기억 속에만 있던 풍접초를 만났다. 하지만, 곳곳의 화단을 둘러봐도 작은 분꽃은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동네로 찾아가 봐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자전거 길을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자전거로 달려가는 곳곳엔 가을을 약속하는 많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한 뼘의 땅도 헛됨이 없다.


긴 제방의 작은 땅에도 들깨가 가득 심어져 있다. 한 뼘의 땅도 남겨 놓지 않는 농부의 살림살이이다. 오래전, 어머니의 손길을 보는 시골의 풍경이다. 머리에 흰 수건을 질끈 묶으신 어머니, 언제나 텃밭에서 살아가셨다. 봄부터 가을까지 끊임없는 발걸음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신 당신이었다. 봄에 시작한 농사일이 가을이면 끝이 나지만, 긴긴 겨울에도 끝날 수 없는 팍팍한 살림살이였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나선 길, 우연히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던 어머니 화단을 찾았다. 기억 속에만 있던 풍접초를 만났고, 어머니 화단 속에 있었던 꽃들을 만났다. 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꽃, 분홍색 꽃을 피운 분꽃을 찾아 자전거 길을 다시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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