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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22. 2021

세월은 공평해 내 세월, 엄마 세월은 함께 흘렀다.

(엄마의 행복은 간단하다, 해바라기)

운전을 하던 중에 라디오에서 들리는 소리, 가슴이 멍했다. '엄마의 행복은 간단하다', 쉬운 듯 하지만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째 엄마의 행복이 그리도 간단할까? 집에 오는 내내 이 생각에 휩싸였다. 그럴까? 엄마의 행복이 그렇게도 간단할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쉽게 수긍이 가는 소리였다. 엄마의 행복은 간단했다. 엄마의 행복은 너무나 간단하다. 전화 한 통화로도 행복해 할 수 있고, 작은 선물 하나로도 행복해 할 수 있었다. 엄마의 제일 큰 행복은 그중에서도 '작은 관심'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기에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야 그 말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작은 시골의 소농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몇 마지기의 농사로 온 식구를 연명해 나가야 했다. 고단한 삶을 살으셨던 부모님,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었다. 몇 마지기의 논과 작은 밭농사로 한 가정을 꾸리기엔 고단한 삶이었다. 고단한 삶 중에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으로 참고 견디며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수 있었을까? 고단함을 이겨내는 힘은 언제나 자식들에게 있었다. 자식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당신들은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았지만, 자식들이 알아주기엔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여름은 서서히 짐을 싸고

자식들이 당신들의 좋은 날만 기다리던 세월, 당신들은 허연 백발로 가쁜 숨만 남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숨이 차고 무릎이 성치 않아졌다. 내색도 하지 않고 자식들 눈치만 보고 살았다. 혹시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혹시 알면 걱정될까 염려하며 또 하루를 보냈다. 어느새 어둑한 방구석 검은 비닐 속엔 약봉지가 가득해졌다. 바쁘다는 자식들, 잊을만하면 전화를 한다. 전화기 속에 들려오는 자식들 목소리에 힘이 나지만, 자식이 알까 가쁜 숨 몰아쉬며 서둘러 끊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어느덧 자식들의 삶도 무르익어 갈 무렵, 가쁜 숨마저 어려워지면 자식들은 후회를 한다. 더러는 통곡을 하기도 한다.


어렵게 마련한 저녁식사자리,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러 모인 자리이다. 힘들다는 시간을 쪼개어 모두가 모인 자리, 오랜만에 모인 형제자매가 화기애애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식들 자랑 속에 즐거운 식사자리이다. 허물어져 버린 이를 무기 삼아 식사를 끝낸 당신, 끼어들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자식들만 떠들썩하다. 굽은 허리 편히 펴고 싶지만 오랜만에 모인 자리라 끝가지 지켜야 했다. 아픈 허리 다잡으며 참고 지켜도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른다. 서둘러 옆자리로 옮겨 앉아 자식들 이야기를 듣는 척해야 했다.

가을은 여름 눈치를 보고 있다.

구순이 넘은 장모님이 요양원에 계신지 몇 년 되었다. 코로나 시국 전엔 자주 찾아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자주 찾아뵙는 것이 도리지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끔 전화를 한다. 생각나도 전화를 하고, 부근을 지나는 길에도 전화를 한다. 너무나 반가워하는 목소리이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신다. 무엇이 그리 고맙다는 말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고 끊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기어이 전화가 끊어질 무렵, 전화해 줘서 고마우니 또 해 달란다. 목이 매인 목소리처럼 들려 전화하기가 망설여진다. 몸이 성하셨을 땐 무심했던 무뚝뚝한 사위였다.


간신히 명절 때나 뵙고, 가끔 편치 않으시면 찾아뵈었다. 참, 모질게도 살아온  삶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쁘고 짬이 없어 그랬을까? 기어이 몸져누우니 전화를 자주 한다. 왜 그 전엔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도 그랬다. 가끔은 전화를 드렸지만 살갑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모두가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인지 알지만 행하지 못함이 서럽기만 하다. 한 푼의 용돈이 아니라 더 찾아뵙고, 조금이라도 돌보지 못함이 바보스러운 삶이었다. 부모님의 행복은 너무나 간단했다.

엄마 화단의 추억, 분꽃

거창한 식사가 아니었고, 많은 용돈이 아니었으며 작은 관심이었다. 조그마한 마음을 실어 보내는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으리라. 짬이 없다고, 할 일이 많다고 찾아뵙지 않으면 그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월은 공평해 나의 세월과 부모의 세월은 함께 흐른다. 당신은 늘 내 곁에 있을지 알았지만 그들의 세월도 쉼이 없다. 할 일이 있어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그냥 찾아가는 부모 곁이다. 부모가 있으니 찾아가는 길, 작은 이야길 나누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다. 거기엔 엄청난 식사가 필요 없고, 많은 돈이 필요 없다. 작은 정성이 그들에겐 커다란 용기가 되고, 살아갈 힘이 되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세월은 공평해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으니,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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