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Apr 01. 2021

달래가 푸짐한 파전을 만났다.

(봄에 만난 달래 이야기, 아프리카 잠비아의잠배지강)

밥을 하면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장작이 타고 남은 불덩이를 화로에 담았다. 아직도 봄바람이 썰렁한 이른 봄, 화로 불가에 앉아 불을 쬐는 맛은 가히 대단했다. 따스하다. 밥상이 들어오기 전, 화롯불 위에 된장 뚝배기가 얹혀 안방에 자리 잡았다. 흰 수건을 머리를 질끈 묶은 어머니가 밥을 하시는 중이다. 보글보글 된장이 끓는다. 구수한 냄새가 방의 정적을 깬다. 거기엔 깍두기 크기 네모난 두부가 요동을 치고, 덩달아 하얀 달래가 헤엄친다. 군침 흐르는 멋진 뚝배기 된장의 풍미이다.


뒤 울, 작은 배나무 앞에 장독대가 있다. 널찍한 돌을 모아 장독대를 만드셨다. 둘레엔 봉숭아도 심으셨고 빨간 채송화도 뿌리를 내렸다. 배나무 밑에 싱싱한 달래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곳곳에 소복하게 무리를 지어 옹기종기 모여 자라고 있다. 달래 가족의 일부분이 된장 뚝배기에서 헤엄 치는 것이다. 된장만 끓여 먹어도 꿀맛이다. 두부가 들어가면 말할 것이 없다. 거기에 봄철 달래가 함께하면 금상첨화이다. 이렇게 달래는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달래는 마늘과 같이 매운맛이 난다 하여 작은 마늘, 소산(小蒜)이라고도 한다. 들이나 야산에서 자란다고 하여 야산(野蒜)으로도 불린단다. 蒜은 마늘을 뜻하는 마늘 '산'자이다. 맛은 맵지만 성질이 따듯하여 신장의 기능을 돕고, 소화력을 돕는 식품으로 분류된다. 가끔은 간장에 섞여 산뜻한 맛을 주는 위대한 소스 역할을 한다. 검붉은 간장에 앉아 마늘 아닌 마늘 역할에 상큼한 맛을 풍기는 고명 역할도 한다. 가느다란 온몸을 바치고 뿌리까지 던져 안기는 맛에 반할 수밖에 없다. 달래의 진수는 부침개와 어울리며 나타난다.  


노르스름한 파전을 부처야 한다. 질펀한 밀가루 반죽을 뒤집힌 솥뚜껑에 얇게 펼친다. 붉은 장작불이 몸부림치며 타오른다. 뒤집힌 솥뚜껑이 서서히 달아오르면 굵직한 대파를 나란히 눕힌다. 인심 좋으면 대충 썬 오징어 다리가 떨어진다. 구수한 냄새가 피어나면 품위를 지키며 파전을 뒤집어야 한다. 기분 좋으면 허공을 갈라도 좋고, 자신 없으면 슬며시 뒤집으면 된다. 장작불이 달아오르면 누르스름한 파전이 서서히 익어간다. 물리칠 수 없는 솥뚜껑의 예술이다.


적당히 익어 갈 무렵 얼기설기 엮은 작은 소쿠리에 파전을 옮긴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파전이 우선은 모양새로 유혹한다. 풍기는 구수한 냄새는 떨칠 수가 없다. 푸짐하게 잘린 파전을 젓가락이 들어 올렸다. 잘게 잘린 달래가 섞인 간장이 파전 맛을 먼저 본다. 고소한 깨도 섞인 검붉은 간장이다. 가끔 청양고추도 한몫한다. 미친 맛의 간장이 파전 맛에 감탄한다. 드디어 젓가락에 들린 파전, 입안에 입성했다. 따스한 봄철에 간드러진 맛이다. 입안에 자연이 가득 들어왔다. 바다도 들어왔다. 젓가락질은 끝날 줄 모른다. 봄철, 달래의 헌신이다.


달래는 독특한 맛과 특유의 향취가 가득하다. 맛과 멋을 지닌 향신채로 봄내음을 물씬 풍기는 나물이었다. 달래를 캐는 댕기 꼬리 아가씨가 떠오른다. 다시 찾아온 봄을 연상케 하는 나물이었다. 일상에서 한껏 즐기는 산나물이었다. 지금은, 사시사철 재배되어 언제나 만날 수 있다. 겨울에도 즐길 수 있어 계절감각을 무색하게 한다. 계절을 잊게 함이 아쉽지만 식욕을 돋워 주는 데는 변함없는 나물이다. 아무리 재배되어 사철 만날 수 있는 달래이지만, 돌 틈에서 삐죽이 살아남은 달래 맛이야 따를 수 있겠는가?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진 맛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 날이 추워졌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