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Jan 16. 2022

우리 집 냉장고엔 한반도가 들어 있다.

(우리 집 냉장고, 용대리 황태 덕장)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여간해서 열지 않는 냉동고 문을 무심코 연 것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꽁꽁 얼어 돌덩이 같은 비닐봉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랐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지만 발등에 떨어졌으면 큰 부상을 입을 뻔했다. 아내에게 들킬까 봐 얼른 넣고 문을 닫았다. 무엇이 그렇게도 많이 채워져 있을까? 궁금하지만 열어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냉장고다. 가끔 반찬을 찾아야 할 경우도 제일 앞자리에 있는 것만 두어 개 꺼내 놓고 밥을 먹곤 한다. 주범은 아내 같지만 주동자는 언제나 나였다.


일 년에 서너 번 주문진항을 찾고, 통영 중앙시장을 찾아간다. 삼천포 용궁 시장이 궁금해 발길을 끊지 못한다. 포항 죽도시장도 빼놓을 수 없고, 강구항은 단골손님이다. 살아있는 생선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활력이 넘쳐난다. 삶에 신이 난 사람들 따라 덩달아 신이 난다. 활기찬 사람들 모습에 눈길 둘 곳이 없다. 싱싱한 활어들, 아내와 함께 욕심이 발동한다. 육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싱싱한 생선들이다. 살이 통통 오른 고등어도 사고, 싱싱함을 자랑하는 오징어도 샀다. 옆을 보니 꽁치가 싱싱해 보인다. 망설임 없이 얼른 사고 말았다. 양손으로 들 수 없을 정도로 사들고 돌아오면 생선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다. 

강구항의 모습

또다시 찾아가는 곳이 강원도 정선 5일장을 비롯해 유명 장터를 찾아 나선다.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정선 5일장, 꾸준히 찾는 곳이다. 대형 시장으로 변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오래전 맛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상쾌함을 느껴보려 또 찾아간다. 화개장터가 궁금해 철철이 찾아간다. 금산을 빼놓을 수 없고, 구례장터도 만만하다. 가끔 산청에도 바람을 쐬러 찾아가고, 용대리 황태덕장은 볼거리가 많다. 근처의 유명 재래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놀이터다. 


멀어서 궁금해 찾아가고 가까워서 또 찾아간다. 갖가지 산나물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취나물을 사야 하고 곰취도 사야 한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더덕도 좀 사고 싶다. 할머니가 껍질 벗긴 도라지도 사야 한다. 어느새 바리바리 싼 것이 양손에 가득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물들, 갈 곳은 다시 냉장고뿐이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배가 부를 수밖에 없다. 배가 잔뜩 부른 냉장고는 오늘도 식식거린다. 숨이 가빠 헐떡거리다 끝내 윙윙거린다. 가끔은 눈물을 철철 흘리기도 한다. 


계절 따라 전국을 헤매는 방랑벽이 있다. 아내는 거침없이 따라나서는 동행 벽이 있다. 여행을 나서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어 좋긴 하다. 하지만 거기엔 깊은 병이 또 하나 있으니 물건을 사 오는 병이다. 싱싱해서 사고 새로워서 사며, 아이들 생각나서 또 산다. 언제 또 오겠냐며 또 사야 했다. 고스란히 고생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서너 대의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다. 가끔 욕심을 부리지 말자 한다. 절대로 사 오지 말자 한다. 하지만, 그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병이다. 전쟁이 나도 몇 달은 버틸 수 있다는 아이들의 핀잔이다. 

화개장터의 각종 약초

가끔 열어보는 냉장고, 더 이상 넣을 곳이 없지만 아내는 꾸역꾸역 잘도 넣는다. 도저히 넣을 곳이 없는 냉장고에 한 무더기를 다 넣었단다. 말할 수 없이 숙연해지는 냉장고다. 가끔 아내에게 머리가 너무 좋다 한다. 알 수도 없는 수많은 품목들을 척척 꺼내 요리한다.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생각하지도 못한 엉뚱한 반찬이 올라온다. 꽁꽁 숨겨있는 재료를 찾아낸 것이다. 기가 막히는 기억력의 발동이다. 서너 대의 냉장고 구석구석을 꿰고 있다. 어디에 무엇이 어떻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삶의 일상이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나의 머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기억력이다. 


가끔 찾아오는 아이들, 냉장고가 좋아하는 손님들이다. 그들이 와야만 가득한 몸을 덜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집 냉장고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고기가 나와야 하고, 나물이 나와야 한다. 동해안과 남해안 그리고 서해안의 생선이 출동해야 한다. 다양한 생선과 갖가지 채소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수도 없는 물건들이 나오면 나올 때마다 놀라고 만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품목들이 나올 수 있을까? 꽁꽁 언 냉장고에서 탈출한 고기는 숨을 쉰다. 나물은 거친 호흡으로 싱싱함을 확인한다. 냉장고도 덩달아 방긋방긋 웃으며 숨을 쉰다. 이젠 생각을 해야겠다. 모든 욕심 내려놓고 간단하고도 심플하게 살아가고 싶다. 사 오느라 고생 말고, 보관하느라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광천장엔 이야기가 많다.

고기도 그리고 나물도 살려주어야 하겠고,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냉장고도 해방시켜 줘야 한다. 언제나 배를 내밀고 버거워하는 냉장고의 수고를 덜어주어야 한다. 긴 여행길도 빈손으로 돌아와야겠다. 가슴에 채우고, 마음으로 먹고 빈 손으로 와야겠다. 삶이 살아 숨 쉬는 주문진도, 산이 다 모여있는 정선 5일장도 마음속에만 두어야겠다. 구례장터를 발로만 여행하고, 화개장터도 마음으로만 갔다 와야 한다. 오늘도 우리 집 냉장고는 배를 내밀고 헐떡거리고 있다.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냉장고 배를 줄여줘야겠다. 욕심 내려놓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날이 냉장고가 큰 한 숨 몰아쉼이 끝나는 날이다. 내려놓는 편안한 삶이 그리운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중한 삶이 있는 세월이 되게 해 주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