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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삶이 있는 세월이 되게 해 주소서!

(아비의 허황된 생각, 뜰에 하얀 눈이 내렸다)

by 바람마냥

아침 운동을 하고 싶어 문을 나섰다. 시간을 보니 일곱 시가 조금 넘었다. '아, 사람의 몸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떠오른다. 몸이 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겠는가? 은퇴를 하기 전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일곱 시가 넘었으면 이미 출근을 해서 하루를 시작할 때가 아니던가? 새벽 다섯시면 체육관에 도착해 운동을 했을 테고, 여섯 시가 넘어 집으로 와야 했다. 식사를 하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음과 몸이 이렇게 변했다. 일곱 시까지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다, 이제야 운동길에 나서는 것이다.


엊저녁, 회사에 다니는 아이가 전화를 했다. 퇴근하는 중으로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시간, 오후 여덟 시가 넘었다. 오늘은 조금 이르게 퇴근한단다. 언제나처럼 깜짝 놀라 화도 나고 또, 걱정스럽기도 하다. 오후 8시가 지나 퇴근해서 밥을 먹는다고? 언제 잠을 자고 또 새벽에 출근하려면 몇 시간 잠을 자는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데? 일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세상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놓았었다. 적어도 엘리트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던 아이였다.

뜰앞의 빨간 산수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일본 유학길에 올랐었다. 생활비부터 학비까지 국비 장학금을 받아 아비의 주머니를 홀가분하게 해 준 아이다. 일본 최고의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모회사에서 대체복무를 마치고, 다시 세계 유명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주 5일제, 틀림없는 주 40시간 근무를 고집하는 회사였다. 자기 시간과 휴식이 일상화된 근무조건이었다. 문제는 일본에서 근무해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고민하던 중, 국내 유명 기업 스카우트 망에 잡혔던 모양이다. 스카우트라는 미명 아래 돌아왔지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근무해야 하는 삶이다.


삶이 이렇게 힘들어야 하고, 세월은 힘겹게 만들었는가 보다. 힘든 삶이지만 집하나 마련하기도 요원한 세월이다. 아이 하나 편하게 낳을 수 없는 세월이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쉼 없이 일을 했다. 살기는 그래도 팍팍하다. 위대한(?) 위정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국민의 부름을 받았고, 국민의 삶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다 한다. 어림 반푼 어치도 없음은 익히 알고 있다. 흠집 없는 위정자 한 명 찾기가 그리 힘들단 말인가? 모두가 고만고만한 인간들, 도토리가 키를 재봐야 고것이 고것 아니던가? 괜히 도토리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누굴 택할까 아직도 고민 중이다. 심통이 나면 공중부양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잔잔함을 주는 남해

여러 생각을 하던 중,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삶의 과정은 마찬가지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체육관으로 갔다. 다시 돌아와 7시면 출근을 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아이들 진학을 위해 밤늦게까지 눈을 비비며 살아왔다. 퇴근이 오후 10시는 이른 시간이요, 11시가 보통 아니었던가? 왜 그런 고생을 하면서 살았을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었던 기억이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출근을 했고, 잠든 시간에 퇴근 했었다. 긴 세월 지나고 난 후의 생각, 돈도 명예도 생각하지 않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속엔 꿈이 있었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삶이 있었다.


자식도 이런 생활을 한다니 화가 나고 걱정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내 삶도 같은 삶이었고, 늦은 시간에 운동하러 가는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평생을 살아온 삶이 아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의 자식이 그리 살아감에 불편하게 생각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젠, 젊은이들에게도 사람다운 삶이 주어졌어야 하는 세월이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이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의 일의 끝엔 엉덩이라도 붙일 수 있는 삶이 있었다. 소소한 삶의 재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살림살이였다.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삶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고, 위대한(?) 위정자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 삶은 훨씬 팍팍해졌다.

앞 산에 햇살이 찾아왔다.

일자리가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현실, 늦게라도 퇴근할 수 있음에 고마워해야 하는 삶이다. 하지만 아비의 마음이야 그럴 수 있겠는가? 저녁이 있어야 하고, 쉼이 있는 세월을 주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저녁을 가질 수 있는 삶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여느 인간들처럼 수십억 자산가도 아닌, 근근이 연명해 나가는 소시민인 아비의 심정이다. 엉덩이 붙일 방하나 구하기가 별따기와 같은 세상,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세상이다. 편히 아이 하나 낳기 겁나는 세상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언제쯤 그들의 가정이 있고, 삶이 있는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세상을 탓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아비의 심정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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