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 마음 편했던 여행지 : 부탄)
하루 대부분 시간 전화기를 지니고 다녀도 남들과 같이 큰 쓰임새는 없는 전화기다. 많은 자료가 입력되어 있어 소중하지만, 많은 전화가 오고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끔 친구들과 술 한잔 하자는 전화나 밴드에서 친구 소식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요긴하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전화기의 필요함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어떻게 변했는지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새벽부터 울려대는 재난문자다. 코로나와 관련된 문자, 날씨에 관한 문자 등 쉴틈이 없다. 시군 경계에 사는 골짜기, 근접한 세 개의 시군에서 시도 때도 없이 문자가 온다.
새벽부터 재난문자가 전화기를 흔든다. 깜짝 놀란 전화기는 오늘도 몸서리를 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가 싫어 언제나 진동으로 해 놓기 때문이다. 진동으로 해 놓은 전화기, 가끔은 받지 못해 뭐하러 전화기를 샀느냐는 핀잔도 듣는다. 전화가 많이 오지도 않지만, 가능하면 전화기와 멀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무슨 엄청난 사업이나 하는 것처럼 끼고 다니기 싫어서다. 가끔 벨이 울리게 해 놓고 내 전화소리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이층에 처박아 놓고 일층에서 노는 경우엔 하루 종일 와도 받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혼이 날 때도 있다. 제발 전화 좀 받아 달랐지만, 별 생각이 없다. 전화를 할 곳도 없고, 받아야 할 전화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보험에 가입하라는 전화나 죽을 준비나 하라는 상조회 전화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전화기를 열어보니 아내와 함께 다니는 수채화 화실 선생님이다. 전화를 할 일이 없을 텐데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다. 세월이 그런 세월이라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역시, 코로나에 관한 이야기다. 선생님이 코로나 확진자를 만난 사람한테 수채화를 지도했다는 것이다. 엊그제 저녁에 아내와 함께 수채화 지도를 받았다. 혹시 모르니 가능하면 행동반경을 최소화하라는 전화였다.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 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인가? 정신을 가다듬고 어제와 오늘 행로를 기억해 본다. 도대체 어느 곳에 누구와 같이 었었나? 기억이 없다.
어쩐 일인지 모를 일이 자주 벌어진다. 오늘 무슨 일을 했지? 어제는 무슨 일을 했지?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일상사, 야속한 세월만 탓하고 만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잘 못된 일인지 알 수가 없는 세월이다. 천천히 기억해 보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란 말인가?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면 아내가 만난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정신이 혼란해지는 머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코로나를 원망할 수도 없고, 세월을 탓할 수도 없다. 다행히 모두가 무사함에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일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엊그제 친구를 만나러 나갔던 아내가 전화를 했다. 전화를 잘하지 않는 아내, 자동차사고가 났거나 아니면 특별한 경우에만 전화를 한다. 다급한 전화였다. 아내가 있었던 공간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것이다. 그것이 엊그제 일이니 3일이 지난 일이다.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니 늦게 집에 온단다. 갑자기 머리를 뒤집어 놓고 말았다. 어제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서울엘 갔다 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악수를 했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엔 지인과 만나 술 한잔 하고 들어왔다. 술집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도대체 혼란스러운 머리가 정리되지 않는다. 오늘 저녁엔 색소폰 동호회 연습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숨을 죽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허둥지둥 아내가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으며 이 놈의 코로나의 위세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에 있었던 또는 지나간 수십 명을 다 검사했단다. 검사 결과는 내일 아침에 나오는데, 그동안은 움직이지 말고 집에 있어야 한단다. 운동도 가지 말아야 하고, 색소폰 연습도 가지 말아야 한다. 회원의 혼사가 있어 축가 연주를 하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한다. 여러 명이 어우러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색소폰 연주다.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중지하고 아침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 수가 많지는 않다.
기껏해야 자전거를 타고, 수채화를 하며 또 색소폰 연주를 하기 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 소주 한잔 나누는 사람들, 그 외엔 특별한 사람들이 없는 편이다. 만약 내가 코로나에 확진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를 만난 사람들이 위험하고, 그 사람들이 만난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된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얗게 되고 말았다. 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렇게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생각이다. 할 수 없이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을 기다렸다. 눈을 뜨자마자 아내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여덟 시 가까이 되어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판단되었단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운동을 하러 나섰다. 누구든지 자유로울 수 없는 코로나19, 조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 사람이 확진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감염자 수를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코로나19 방지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 행적일 제대로 말하지 않아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의도적으로 행적을 숨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쩔 수 없는 기억력으로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생각, 아찔함을 주는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백신 예약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아야 할까?
코로나 접종을 완료했는데, 다시 부스터 샷을 예약하란다. 부스터 샷(Booster Shot), 예방 접종 후에 면역효과를 강화하거나 효력 연장을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추가 접종 하는것을 뜻한다. booster의 뜻이 후원자, 원조자 또는 승압기, 효능 촉진제 등을 뜻한다고 하니 '추가접종'이라 하면 쉬운 것을 이름도 생소하게 '부스터 샷'이라 한다. 부스터 샷, 이름도 생소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갖가지 루머가 떠 다니는 세월, 추가접종을 해야 할까 아니면 버티어 볼까? 세계 곳곳에선 예방접종을 강제하려는 정부에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예방접종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예방접종 효과가 하지 않는 것보다는 크다는 생각에 Booster Shot, 예약을 했다. 간신히 아내도 설득해 예약을 했다. 언제 코로나19가 정리되고 전의 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