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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19. 2022

간사한 입맛이 커피 맛을 알아 버렸다.

(커피에 관한 생각, 쿠바의 커피 내리는 여인)

씁쓸한 검은빛의 물, 오래 전의 커피에 대한 기억이다. 작은 접시에 올려진 예쁜 잔에 검은 물이 들어 있고, 옆엔 작은 숟가락이 놓여 있다. 덩달아 두 개의 작은 그릇이 검은 물이 담긴 잔 옆에 놓여 있다. 무슨 그릇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쟁반에 놓여 있었다. 커피라는 씁쓸한 물을 마시는 광경이었다. 조금은 부자인듯한 이웃집에서 만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잊은 듯이 세월이 흘렀고 대학생활 때의 기억이다. 텔레비전이 귀했던 시절, 유명 선수의 권투시합이 있는 날이면 찾는다. 컴컴한 불빛에 지독한 담배냄새, 알 수 없는 음악이 흐르는 다방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권투를 보는 재미에 찾는 곳이다. 커피를 맛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침에 찾아 간 다방, 모닝커피라는 것이 있었다. 쌉쌀한 커피에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 다니는 커피다. 약간은 비릿한 냄새가 나는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가지고 온 사람, 레지라고 했다. 손님을 맞이하고 주문 사항 기록이 업무였기에 등록기를 뜻하는 register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길들여진 커피 맛은 잊을 수 없나 보다. 시골에서 만난 할머니, 대접에 커피를 내어 주신다. 세월이 변해 믹스 커피가 등장하고 커피 마시기가 편해졌다. 따스한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간편한 믹스커피를 마실 수 있다. 국내에서는 물론, 커피값이 만만치 않은 외국여행에서도 빠질 수 없는 믹스커피였다. 세상은 변함없는 발전 속에 커피의 보급은 눈부시게 변해갔다. 커피 전문점이 곳곳에 세워졌다.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카페, 쿠바 아바나

전망이 좋은 곳엔 어김없이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어떻게 보면 비싼 듯한 커피 값이지만 변하는 세월은 당할 수 없었다. 너나없이 커피잔을 움켜잡고 도로를 오간다. 식사 후엔 당연히 커피를 마셔야 하고, 회식 후에 가던 노래방도 시들해졌다. 당연히 커피 전문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덩달아 따라간 커피 전문점, 낯선 커피 이름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수없이 쓰인 이름 모를 커피 이름, 어느 것을 시켜야 마땅한지 어렵다. 할 수없이 딸아이에게 묻는다. 마시기 적당한 커피는 무엇이냐고. 이젠 안심이다. 가는 곳마다 알려준 커피만 마시면 되었다. 하지만 늘 같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진력이 났다. 새로운 것을 마셔 볼까? 커피를 알아야 했다. 


할 수 없이 커피 공부를 해야 했다. 강한 압력으로 빠르게 추출한 이탈리아식 커피를 드미 타스(demitasse)라는 작은 잔에 마시던 커피가 '에스프레소'였다. 빠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에스프레소, 일터로 가기 바쁜 사람들을 위해 빠르게 추출해 제공하던 커피가 에스프레소다. 커피를 추출하는 시간이 빠르다는 에스프레소를 희석시켜 마시는 커피가 아메리카노(Americano)다. 2차 대전 당시 로마에 입성했던 미군 병사들,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희석시켜 미국인들이 마셨다 하여 아메리카노로 불렸다. 대단한 발전이다. 커피라곤 입에 대지도 않던 사람이 커피의 유래를 말하고, 맛을 이야기한다. 가끔 비엔나커피를 설명해 주고, 아포가토를 마셔보자 한다. 세월 따라 사람도 변한다 한다.

쿠바의 아바나 거리

오랫동안 편리한 믹스커피를 가끔씩 마셨다. 마시고 싶은 것이 아닌, 남들이 마시자 하니 마실 수밖에 없던 커피다. 회식장소에서 한 모금 얻어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을수록 커피 마시는 기회가 많아지고, 입맛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어느덧 프림이 섞인 커피 맛에 길들여져 갔다. 식사 후에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이면 흐뭇해졌다. 마시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마시고 나면 상쾌했다. 세월 따라 변하는 입맛은 어쩔 수 없었다.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점점 발길이 잦아졌다. 아침 운동을 하고 난 후에 만난 아이스커피 한 잔은 환장할 맛을 준다. 믹스 커피보다는 커피 본연의 맛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자전거를 타러 친구들과 만났다. 한참의 운동 끝에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익숙한 믹스커피가 주를 이루는 식당, 커피를 사양했다. 친구가 의아해하며 유난을 떤다 한다. 왜 갑자기 커피를 마시지 않느냐 한다. 긴 설명할 수도 없이 입을 닫고 말지만, 이유는 간사한 내 입맛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달한 믹스커피를 좋아했다. 언젠가부터 블랙커피에 약간의 달달함이 스민 커피가 좋아졌다. 하지만 커피 한 잔 값이 만만치 않다기보단,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전문점의 환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소비자의 입장은 그렇다. 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렀다. 

멕시코에서 만난 풍경

우연히 들렀던 휴게소 내의 의류 매장, 주인장이 화를 내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당황하는 나를 보고 해명을 한다. 5천 원짜리 커피 한잔씩 든 젊은이들이 돈 천 원을 깎으려고 한단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것을 또 깎으려 해서 화가 났단다. 할 수 없이 소시민들은 커피가 저렴한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값이 싼 커피점을 찾아 커피를 주문한다. 싼 값에 자주 찾아가는 곳이다. 삶이 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찾아간 조금은 비싼 듯한 커피 맛은 달랐다. 커피의 향이 다르고 감촉이 달랐다. 입맛이  맛을 알아차린 것이다. 예민한 입맛에  싼 커피점을 찾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커피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으며 살아온 삶이었다. 어려서는 부자들의 사치라고 생각했던 커피가 가까운 음료가 되었다. 햇살 밝은 거실에 앉아 만난 한잔의 커피는 피할 수 없다. 온 집안을 물들이는 커피는 맛보다도 커피 향에 몸서리친다. 숨이 멎을 듯한 운동 후에 만나는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은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한잔의 커피를 마주하고 카페에 앉아 느긋한 쉼은 가질 수 없다. 훌쩍 지나는 시간이 아까운 느낌에서다. 커피와 함께하는 쉼도 삶의 시간일진대, 훌쩍 마시고 서두르는 삶에 익숙해서다. 수없이 들어선 커피전문점 덕에 커피 맛을 알았다. 하지만 커피 한 잔에 나른한 몸을 맡길 수 있는 여유는 언제쯤 익숙해 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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