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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26. 2022

소주 한잔엔, 일 인분으로 충분하다.

(사람의 욕심, 적당한 일인 분)

친구와 소주를 한잔하기 위해 술집에 들어섰다. 뭘 먹을까? 늘 고심하는 일이다. 따끈한 동태탕도 끌리고, 맛깔난 짜글이도 눈이 간다. 오랜만에 의견 일치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삼겹살과 밑반찬 그리고 야채가 준비되었다. 한 겨울에 만나는 싱싱한 채소, 입맛이 살아난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빠질 수 있겠는가? 삼겹살을 굽는 것은 늘 전공처럼 맡아서 한다. 돼지기름으로 불판에 밑 기름을 친다. 불판이 어느 정도 달구어졌는지 칙~하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때다 싶어 맛깔나게 붉은빛 삼겹살을 불판에 올렸다. 하얀 줄과 붉은 줄이 번갈아 자리 잡은 삼겹살, 언제 봐도 친근하다. 연달아 칙~~~ 소리를 내며 입맛을 돋워 준다. 


삼겹살 옆엔 얇게 썬 마늘도 누워있다. 삼겹살이 노르스름하게 익어 갈 무렵, 마늘도 덩달아 익어간다. 삼겹살 익어 가는 냄새에 묵은지도 가세했다. 겨울을 잘 넘긴 묵은지와 어우러진 콩나물도 기세 등등하다. 이에 질세라 살이 통통 오른 버섯도 한 몫 한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불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삼겹살은 삼겹살대로, 마늘은 마늘대로 몸부림친다. 삼겹살 옆 묵은지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흐르는 기름에 몸을 적시며 뜨거운 불판에서 몸을 흔든다. 다 같이 입맛 돋워주는 소리에 젓가락을 멈출 수 없다. 성급한 젓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넘치는 식욕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방금 냉장고에서 공수된 소주와 맥주도 자리했다. 다년간 숙련된 솜씨, 숟가락을 잡고 맥주병 뚜껑을 허공으로 밀어낸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경쾌한 소리다. 시원한 소주병을 들고 허공으로 한 바퀴 획 돌리자 파란 물이 병 안에서 요동친다. 경쾌한 비틀림으로 솟구칠 무렵, 소주병 뚜껑을 비틀었다. 언제나 숙련된 솜씨로 맥주잔에 섞임의 예술이 선보인다. 하얀 맥주잔에 소주잔 7부 정도의 소주를 부었다. 한 입에 쏟아부을 정도의  맥주를 쏟아붓는다. 몇 개의 맑은 방울이 올라 올 즈음에 숟가락을 넣어 휘 저어주자 경쾌한 비틀림으로 섞임이 춤을 춘다. 경쾌한 컵 안의 예술 혼이 춤을 춘다. 마실 것이  준비되었으니 안주가 마련돼야 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어 진 삼겹살 한 점을 상추에 올렸다. 붉게 치장된 파절이를 얹어 놓고, 얇게 썬 청양고추 두어 개와 적당히 익은 마늘을 올려놓았다. 맥주에 소주가 동승한 컵을 입에 털어 넣는다. 입안을 통과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줄기, 흐르는 속도와 느낌이 확 다가온다. 시원함과 약간은 고소함에 몸서리가 처진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의 흐름은 몸을 저절로 흔들게 한다. 캬~~ 소리와 함께 손에 든 삼겹살 상추쌈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포기할 수 없는 그리운 맛이다. 여기에 삶의 이야기기 빠질 수 없다. 술잔이 오가면서 서서히 서서히 흥이 올랐다. 붉어지는 얼굴빛에 반비례해 술과 고기의 양이 줄어든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술과 고기 바닥이 보인다. 바닥이 보이는 술과 고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스러운 시간이 또 찾아왔다.

삼겹살 2인분을 주문했고, 술도 적당량으로 출출함을 달랬다. 적당한 삼겹살에 각종 야채가 동행했고, 알맞은 듯한 알코올에 기분이 살아났다. 가끔 술을 마시는 이유가 생각난다. 아, 이런 기분에 또 술을 마시는구나! 정신을 차려보니 고민거리가 생겼다. 친구도 고민을 하는 듯하다. 고기가 약간 모자란 듯 하지만 술도 조금은 섭섭하다. 고민하는 친구에게 묻자 네 맘대로 하란다. 조금 모자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안다. 한참을 망설이다 고기를 일 인분, 호기롭게 술도 주문했다. 안주와 균형을 맞춘다는 미명(?) 아래 알코올이 필요한 것이다. 언제나 하루가 지나면 불찰이라는 것을 알지만 할 수 없다. 한껏 오른 분위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퍼뜩 아내 말이 떠 오른다. 


적당히 마시면 기분 좋은데 그것을 잊고 더 마신단다. 그걸 기억하지 못하고 또 마시는 것 아니냐 한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릴 것을 잊고 또 과음한단다. 매번 잊어버리니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냐는 변이다. 구차한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 분위기에 어울리다 보면 어쩔 수 없다고. 애꿎은 친구 핑계를 대지만 결국 할 말이 없어 입을 닫는다. 고기가 왔고 새 술도 자리를 잡았다.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술잔을 채웠다. 먹을 만큼 먹었는지 젓가락이 멈칫댄다. 술잔도 식탁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주문한 삼겹살이 불판 위에서 타고 있다. 누렇게 익은 고기가 검은빛으로 골을 낸다. 마늘도 불판에서 몸부림 끝에 지쳐나보다. 꼼짝을 하지 않는다. 삼겹살을 야채를 곁들여 술과 함께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제 몸의 적당량도 모르면서 지금껏 살고 있다.


일 인분만 먹고 말 것을 또 주문한 것이다. 기분 좋은 술의 양도 또 알아차리지 못했다. 평생 술자리에 오면 반복하는 짓이다. 아차 싶지만 또 어쩔 수 없다. 술도 삼겹살도 적당량을 넘은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또 한 것이다. 술자리가 많지는 않지만 대부분 술자리가 똑같다. 정해진 일 인분은 적당한 먹을 양이다. 조금 더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 아무리 먹어도 끄떡없던 젊은 시절이 지난 것이다. 세월을 잊고 있어 머리가 나쁘다는 아내의 말이 또 생각나는 술자리다. 모자란듯해 시킬까 말까 하는 고민을 그만 둘 때도 됐다. 미련 없이 술잔을 내려놓을 때도 됐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일정량이 넘으면 맛이 없다. 언제쯤 일 인 분으로도 충분함을 알아차릴지 야속한 술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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