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이야기, 본인 작품: 화진포에서 만난 풍경)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두 시간 정도를 화실에서 머문다. 몇 년 전부터 해오던 수채화를 그리기 위한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몇 년을 해오는 수채화는 대부분 사람들이 퇴근하여 휴식을 취하는 오후 6시에 시작된다. 언제나 내가 운전을 하고 아내는 짧은 시간이지만 저녁 식사 후의 간단한 휴식을 취한다. 수채화 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도 수채화 하고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수채화를 하게 되었을까? 주변에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조그마한 소농의 가정에서 대학까지 공부를 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자란 사람이다.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했고, 더구나 미술과 음악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남의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 미술은 접하지도 못했고,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접한 한두 시간이 경험의 전부였다. 미술과 음악은 나와는 먼 이야기였고, 단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사치로 보일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우아한 모습으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미술과 음악에 관한 응어리였다.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없을까? 은연중에 가슴에 남아있던 앙금이었다. 긴 고뇌 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가슴속에 있는 응어리를 복수하고 싶어서였다. 수채화, 아내가 먼저 시작한 후에 접하게 되었다. 처음의 시작은 어려웠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렵기도 했지만, 새로운 분야에 접하는 분위기는 매우 낯설었다.
이순(耳順)에 가까운 문외한인 사람이 시작하기엔 너무 힘겨운 일이었다. 시작은 요란했지만 끝이 허망하면 어쩔까? 시작하면서 늘 고민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나와의 약속'이라는 것은 늘 가슴에 품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수채화도 마찬가지였다. 나와의 약속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수채화가 거의 10년이 되어 가고 있다.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소질이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엔, 나와의 약속이라는 것이 숨어 있었다. 나와의 약속을 무시하지 않은 긴 세월의 삶에 누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라도 있던가? 고희에 가까운 세월 속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왜 일까? 공부도 그러하고, 사는 것도 그러했다. 모든 삶이 쉽지 않았다. 수채화를 배우러 신입회원이 등록한다.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왔으리라! 수채화 용품을 사고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드나든다. 몇 달이 지났다. 옆 사람과 같게 그려지지 않는다. 어쩐지 나만 못하는 기분이 드나 보다. 한참을 망설이다 고민에 빠진다. 더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늘 망설이는 표정이다. 수채화 도구도 챙기지 않고 슬며시 그만둔다. 쉽게 그려질지 알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아 왔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렇게도 쉬우면 못 그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림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은 수십 년간 공을 들여 내공을 쌓는다. 피나는 연습과 고난 속에 그림을 그려 나간다. 그림을 몰랐을 때는 그림 한 장 정도는 쉽게 얻을 수도 있는 줄 알았다. 잘 그리는 사람은 금방 그릴 수 있는 것인지 알았다. 그림의 세상을 알고 나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소재를 찾고 색을 입히기까지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배어 있는 것이다.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노력과 고뇌가 녹아 있는 그림이다. 그것을 섣불리 주고받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는 나의 분신과 같은 그림이다. 하나의 일을 이루기까지는 수많은 고뇌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었다.
수채화 그리기를 재미 삼아하고 있다. 하나하나 그리면서 이루어지는 모습이 신기하고 무엇인가를 해내고 있다는 즐거움이 멈추지 못하는 이유이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수채화를 하고자 했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며 즐기는 사이에 그림은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약속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하나의 분야를 접했을 때 초심을 잃지 않고, 미련하도록 버티면 무엇인가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수채화를 하러 화실로 가는 가장 큰 이유, 나와의 약속을 지키러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