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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생명들이 행복한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추석 즈음에, 구절초)

by 바람마냥

서늘한 바람이 찾아왔다. 가을이 서서히 깊어 간다는 계절의 신호다. 들판엔 벼가 고개 숙인 지 오래고, 텃밭에 수수도 검은 머리를 내렸다. 벼가 얼른 익어야 추석 즈음에 햅쌀을 먹을 수 있다. 날씨가 도와줘야 하는데 가끔 심통을 부림이 불안하기도 하다. 따가운 햇살에 벼가 익어야 하얀 햅쌀밥을 조상님 차례상에 올릴 수 있다.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살림살이가 궁했던 오래전 추석 즈음의 걱정거리들이었다. 추석이 서서히 다가오면서 긴 둑에 심어 놓은 동부 꼬투리가 누런 빛을 발한다.


하얀 쌀 밥에 잘 익은 동부를 넣어 지은 밥, 반찬이 없어도 걱정 없는 밥상이다.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더 숙이고 메뚜기가 이리저리 뛴다. 한껏 살이 오른 메뚜기가 들판을 누빌 무렵, 송사리도 한껏 살이 올랐다. 벼를 베기 위해 논을 꾸덕꾸덕 말려야 한다. 물을 빼기 위한 논 가운데 봇도랑, 살찐 송사리가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두렁 콩이 누렇게 익어간다. 벼가 익어가고 두렁 콩이 익어 갈 무렵이면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서서히 시골 동네가 달아오르며 없는 살림에 추석 준비를 해야 한다.


힘겨운 살림살이를 아껴 가용 돈을 마련해야 한다. 여름내 피와 땀에 절은 고추를 내다 팔아야 하고, 횃대에서 살을 찌운 씨암탉도 팔아야 한다. 5일 장날, 조상님께 올릴 제사상 준비도 해야 하고, 어린 자식들 옷가지라도 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땀으로 준비한 돈 거리가 야속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살림살이다. 바쁜 나날이 지나고 추석이 가까이 왔다. 5일장에 차례상 거리도 준비했고, 아이들 추석빔도 준비되었다. 그렇게 추석이 다가오면서 시골 동네는 서서히 달아오른다.


초가지붕 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뒷산에 솔잎을 준비해 송편을 빚어야 하고, 전도 부쳐야 한다. 횃대에 남아 있는 씨암탉도 잡아야 한다. 따스한 봄날, 노랗게 물든 병아리가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뒤뚱거리는 작은 병아리가 놀던 마당이 그득해졌다. 여름내 살을 찌웠기 때문이다. 5일장에 나가 살림밑천이 되기도 했지만, 추석의 먹거리로도 나서야 한다. 서서히 추석이 가까워지자 동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외지로 나간 사람들이 고향을 찾은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 삶이 궁핍하던 살림에 도움이 될까 서둘러 대처로 나서야 했다. 시골살이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고향을 등지고 올랐던 도시 생활,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팍팍했다. 기세 좋게 고향을 등진 모습이 떠올라 이를 악물고 살아야 했다.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밤과 낮의 구분이 없었다. 시골엔 동생들이 있고 늙어가는 부모님이 계셨다. 동생들 학비가 급했고 늙어가는 부모님을 도와야만 했다. 아끼고 아낀 돈을 고향으로 보냈지만 궁핍한 살림은 넉넉해지지 않았다. 대처로 나가 출세하리라던 꿈을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근근이 생활하며 그럴듯한 차림으로 고향을 찾아야 했다. 이웃이 있고, 친구들이 있으며 늙어가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였다. 추석이 되었으니 가야만 하는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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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삶이 팍팍하지만 오랜만에 찾는 고향, 섣부른 차림으로 갈 수는 없다. 아끼고 아꼈던 돈을 모아 그럴듯한 옷가지도 준비했다. 손에는 바리바리 선물 보따리도 들어야 했다. 부모님과 기다리는 동생들도 생각해야 하는 고향 나들이다. 시골을 찾아가는 길, 언제나 설레고도 신나는 나들이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버스가 섰다. 뿌연 먼지를 몰고 온 버스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어이 도착한 시골 동네 버스 정류장, 언제나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모습이다.


대처로 나갔던 이웃들, 모두가 상기된 얼굴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변함이 없지만 마음만은 부자인듯한 모습이다. 긴 동네길로 들어오는 길은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 그리고 반가운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시골길이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동네가 푸근함을 주는 추석 즈음이다.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만나고, 이웃집 친구를 만날 수 있다. 도시에서의 고생이 떠오르지만,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따스함에 순식간에 녹아든다. 역시, 집이 좋고 고향은 언제나 푸근하다. 그곳엔 어머님이 있고 그리운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불을 밝히고 동네는 한껏 달아올랐다. 서서히 시골집의 추석은 풍성해졌다. 갖가지 음식이 차려지고 오랜만에 한잔 술에 거나해졌다. 고단했던 삶의 응어리가 순식간에 떠오른다. 시골살이의 고단함과 서울살이의 서러움이 만났다. 호락호락하게 보였던 서울살이는 살을 에이는 서러움이 있었고, 눈물 없이는 견디기 힘들었다. 쉽게 견디어질 듯하던 타향살이는 팍팍하기만 했다.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던 삶이 떠오르는 저녁이다. 고단한 나의 삶이 조금이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었으니 뿌듯하기도 하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할 리가 있겠는가? 농사일의 어려움과 서울살이의 서러움을 주고받는 추석 전의 밤의 깊어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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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세월이 더 흘러갔다. 먹거리가 풍족해졌고, 시골의 모양새가 달라졌다. 좁은 골목까지 깨끗이 포장되었고, 곳곳에 자가용이 들어서 있다. 정다웠던 굴뚝이 보이지 않고 큼지막한 농기구가 마당을 점령하고 있다. 트럭을 타고 논두렁을 오가며 물꼬를 보고 있다. 살찐 메뚜기도 보이지 않고, 몰려다니던 송사리는 구경할 수 없다. 다시 돌아온 추석, 서울로 돈 벌러 간 사람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오래전 서울로 갔던 친구들은 안녕할까? 추석이 왔지만 그들은 오고 가지 않는다.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니 궁금하다. 지나는 바람이 전해준 소식은 잘 살고 있다고도 하고, 오래전에 떠나갔다는 소식이 오락가락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갔고 또 삶이 변했다는 것일 게다. 돌아온 추석, 다시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가을이 한없이 익어가고 있는 시절, 성스런 들판이 열렬이 환영하고 있다. 두 손 들어 박수를 친다. 밝은 햇살이 산을 넘어온 세상을 밝혀 주고 있다. 고요한 시골의 아침, 닭이 울어주고 산새들이 일어나라 깨워준다. 아름답게 맞이한 추석 즈음, 세상 모든 생명들이 가을의 이 축제를 풍성하게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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