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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흘러야 보이긴 했다.

(식당에서 만난 생각, 베고니아가 활짝 웃고 있다.)

by 바람마냥

가을빛이지만 여름인 듯 더위가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연일 무슨 일인지 할 일이 생겨 시골집을 돌 볼 시간이 나지 않는다. 눈길을 주면 발걸음을 해야 하는 잔디밭, 며칠째 눈길을 주지 않았다. 보기에는 안락한 푸르름이 으뜸이지만 잔디밭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나 발걸음을 하며 돌봐 주어야 한다. 어제저녁,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나선 잔디밭은 불편함을 준다. 며칠째 본척만척 해더니 온갖 잡초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돌아보지 않아야 마음이 편한 잔디밭이다. 어떻게 할까? 며칠째 벼르다 시간을 내기로 했다. 아내에게 내일 잡초를 뽑자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뜨니 여섯 시가 되었다. 동쪽 잔디밭에 햇살이 올 참이니 잡초를 뽑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집으로 그늘이 만들어지는 서쪽에 자리를 잡았다. 두어 시간을 아내와 함께 잡초를 뽑았다. 더위 속에 한참의 수고가 잔디밭을 예쁘게 단장해 마음이 후련하다. 상쾌한 기분으로 한쪽 잔디밭 정리를 끝냈다. 반대편은 저녁때 하기로 하고 하루를 보냈다. 저녁때가 되어 아내와 함께 다시 남은 잔디밭으로 진격(?)했다.

IMG_9214[1].JPG 가을은 깊어지며 사색의 계절이 찾아왔다.

잔디밭 잡초와 한동안 씨름을 하자 저녁시간이 되고, 하루 종일 일을 시켰으니 아내에게 저녁이라도 사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 했다. 아내는 좋다 하며 앞장서는 것이 아닌가? 시골집 가까이 있는 식당에 들어서자 가족인 듯한 한 가족만이 식사를 하고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두 딸 부부가 식사를 하러 온 듯하다. 삼겹살과 맥주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시골에 위치한 식당, 깨끗이 정돈된 것도 아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시골이라 식당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귀하게 있는 삼겹살집이다. 시골스런 집에 음식도 시골 음식이다. 야채도 시골 밭에서 재배한 것이고, 모든 것이 밭에서 직접 공수(?) 한 것이다. 삼겹살을 굽고 맥주에 소주를 한잔 섞어 마시고 나니 마음까지 시원하다. 더위 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일을 했으니 마음까지 고단한 저녁이다. 집에서 식사하는 것보다 잘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사를 했다. 옆 자리에선 가족들이 모여 단란한 식사를 즐기고 있다. 텔레비전에선 막바지에 도달한 야구 중계를 하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에 눈길이 자주 간다. 야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옆자리엔 여자 형제인듯한 식구들도 술잔이 오고 간다. 흥겨운 식사자리이다. 옆자리를 엿보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방향과 같은 방향이기에 자연히 보게 됨이 불편하기만 하다. 한 편에 앉아 있는 할머니, 두 여자의 어머니인 듯하다. 천천히 식사를 하시고 의자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신다. 무심히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다른 식구들은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 지루한 듯한 할머니, 식구들이 따라 준 음료수 잔을 입에 댔다 떼기를 반복하신다. 아직 식구들의 식사는 끝나지 않았다. 막내인듯한 여자, 아무 상관없는 듯이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있다.

IMG_9212[1].JPG 오늘따라 넉넉해 보이는 가을 들판이다.

여름에 만난 풍경이 또 생각난다. 자식들과 어울려 야외로 나오신 할머니, 자식들과 점심 식사를 하신 모양이다. 가족들과 점심을 끝낸 듯한 할머니는 휠체어에 우두커니 앉아 계신다. 나머지 가족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의자에 누운 듯이 앉은 사람,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다. 모두는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무엇을 그렇게도 열심히 보고 있을까? 혼자 앉아 계신 할머니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들이다.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까? 한동안 울적한 기분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다시 비슷한 광경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언제 식사가 끝날지 알 수가 없다. 할머니는 연신 음료수 잔을 입에 댔다 떼면서 지루함을 달래고 있다. 막내인 듯한 여인은 아직도 식사 중이다. 나머지 식구들은 분주하게 술잔을 주고받는다. 언제 식사가 끝나고, 할머니는 음료수 잔을 그만 들어야 할까? 지루해도 할 수 없다. 오랜만에 찾은 식구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식구들 사이에서 뒷전으로 물러난 듯한 할머니는 다시 음료수 잔을 드신다. 언제 식구들의 식사가 끝날지 할머니는 침묵만이 할 일이다. 할머니 모습,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은 왜 였을까?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왜 그렇게도 자주 눈에 들어올까? 흘러간 세월들이 알려준 그림인가 보다. 그렇다. 어느 시절엔 보이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풍경이었다. 누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보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삶의 세월이 서서히 보이게 되나 보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돌아볼 생각도 못하는 철부지였으리라. 편안함이 사라질 무렵이 되어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됨은 한참이 지나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세월이 눈이 보임은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보다. 보기가 불편한 이웃의 식사자리가 어색해 얼른 자리를 털고 나온 저녁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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