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집을 가다. 2개월 수고 한 수채화: 파도)
7월 어느 날, 부산에 사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8월 초순에 시댁에 일이 있어 겸사겸사 친정엘 오겠다는 전화였다. 그 후, 8월이 되었지만 사위 일이 너무 바빠 중순으로 연기되었고, 다시 전화가 왔다. 사위 일도 바쁘지만 제 몸이 불편해 오지 못하겠단다. 아내와 어쩔까를 망설이다 부산을 가기로 했다. 마음이 불편한 하루를 보내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아내는 꽉 채워진 냉장고를 헐어 바리바리 짐을 꾸렸다. 아프다는 딸이 걱정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따스한 밥이라도 한 끼 해주고 싶다는 아내의 말이다. 세 시간을 운전해야 하니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아침 일찍 서둘렀다.
다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코로나 시국에 외지를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시골에서 명줄만 연명하고 있었으니 괜찮으리라는 생각으로 출발한 것이다. 아내는 무엇을 그리 많이 준비했는지 보따리가 세 개나 된다. 무겁게 짐을 싣고 도착한 부산 아파트, 딸이 주차장으로 나온 것을 봐서는 다소 안심이 된다. 아내와 맞벌이를 한 관계로 늘 아이들에게 미안해했던 아내이다.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하고 보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짐을 풀고 이것저것을 물어보니 점점 호전되어 간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무너졌던 아비의 마음이 좀 가벼워 안도의 숨을 쉰다. 손녀도 그 사이에 제법 커서 어른스럽다.
가끔 찾아가는 딸 집, 멀리서 부모가 왔으니 아이들 마음이 편할리는 없다. 하지만 사위와 함께 정성을 다해 살펴주려는 마음이 기특해 늘 고마운 마음이다. 잠깐 쉬고 난 오후, 부산에 오셨으니 바닷가라도 구경 가자는 딸이다. 휴일이지만 오늘도 사위는 회사에 매여있고, 손녀를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바닷가는 폐쇄되었고,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바닷가에 있는 한적한 카페에 들렀다. 커피를 시키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이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바닷가, 딸이 아니었으면 생각하지도 못한 바닷가에 앉아 있다. 오랜만에 한가한 마음으로 아무 생각이 없다.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볼까?
어울리지 않는 커피숍에서 남의 장사에 방해는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한편으론 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부모를 생각해 주는 딸이 한없이 고마운 오후이다. 선선한 바닷가에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끝없이 바라본다. 언제 이런 한가한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을까? 이젠 흔한 고희라고 하지만, 몸은 한 군데 한 군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70년 가까이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어느 연예인이 건강에 대해 묻자 대답한다. 그의 나이 70여 세, 이 나이에 아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이젠, 아픈 곳을 덜 아프게 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프마라톤 정도는 거뜬하게 뛰었던 몸, 이제는 그것을 그리워할 뿐이니 말이다.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는 싱그럽기만 하다. 젊은 청춘들이 싱그러운 바닷가를 오간다. 갓난아이를 안은 부부가 함박웃음으로 지나간다. 시원한 카페에는 젊은 청춘들이 시원한 바다와 잘도 어울린다. 한참을 앉아 흐르는 세월을 바라본다. 딸 내외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는 나, 아무 생각 없이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장난을 걸어오는 귀여운 손녀가 한꺼번에 뇌리에 스쳐온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가슴까지 밀려온다. 숨이 막히지만 싱그러움에 푸른 청춘이 되살아난다. 푸르름과 그 많은 열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던 푸름의 계절은 어디로 숨었을까? 한참을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는 부산의 오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느릿한 시간을 보내고 딸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어야 하지만 식당에 갈 수 없으니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 언제나처럼 다정다감한 사위가 저녁상을 거들고 아내와 딸이 차린 저녁 밥상, 그럴듯하게 차려졌다. 늘 자상한 사위가 잔잔한 준비로 늘 풍성한 밥상이다. 간단히 소주 한잔을 곁들인 저녁을 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한다. 그나마 아프던 몸을 추스른 딸의 모습에 안도의 숨을 쉰다. 지난밤을 뒤척이다 내려온 아비의 마음을 알까? 하긴 알아줘서 또 뭐하려고 이런 생각을 하나? 별 생각을 다하면서 식사를 한다. 아비의 마음 그리고 어미의 마음, 어떤 것이라는 생각은 늘 하면서 산다. 우리의 엄마와 아버지는 어떠했을까?
시골에서 농사 일로 쉴틈이 없었던 부모님, 늘 마음 아프게 생각은 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렸을까? 오랜 세월이 흘러 부모님의 세월을 살고 나니 작으나마 심정을 짐작하게 한다.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 생각되고 어때나 저때나 잘 있을까를 생각했던 당신들, 두고두고 그리움과 고마움에 가슴이 저려오는 철부지 아들이다. 밤과 낮이 구분 없이 직장에 매달리는 사위, 아이를 돌보느라 늘 걱정인 딸아이가 대견스럽기도 또 안쓰럽기도 하다. 맛깔난 저녁 식사 후, 손녀의 입맛에 맞춘 후식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언제나처럼 일찍 일어났지만 아이들이 자고 있으니 조용한 아침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시골집이 그리워 마음이 바빠진다. 만사 뿌리치고 시골로 올라갈까를 고민 중이다.
아이들이 부담스러울까 봐 서둘러 짐을 챙기려 하지만 하룻밤을 더 묵어 가라는 딸 내외의 성화에 발길이 묶였다. 딸이야 제 부모니 어쩔 수 없지만, 사위가 잡는 모습에 뿌리칠 수가 없다. 멋진 저녁을 예약하려 하고, 이것저것을 궁리하는 모습에 고맙기만 하다. 누가 이렇게 신경을 써 줄 것인가? 엊저녁에 식사만으로도 넉넉함을 갖고 하루를 지냈다. 하지만, 하루를 더 쉬면서 있다 가란다. 전혀 부담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사위의 당부이다. 이리저리 마음 써 주는 사위가 고맙기만 하다. 어디를 가도 하룻밤이면 족한 나들이였다. 국내 여행은 물론, 친척집을 찾아도 이틀을 묵는 경우는 없다. 오로지 예외가 딸 집인데, 오늘도 딸 내외의 만류에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더 묵기로 한 것이다.
세월이 더 흘러, 아이들도 살만큼 살았을 때 부모를 어떻게 생각할까? 손녀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도 하루의 삶을 누리면서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다. 하루를 묵고 또 하루를 더 묵는다.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딸네 집에서 말이다. 이제 여름도 서서히 짐을 챙기는 모습이다. 가을이 멀리서 망을 보고 있다. 여름이 짐을 챙겨 가기를 바라고 있는 눈치이다. 오늘따라 창가에 여름 비는 추근거리며 가슴을 적시어 준다. 세월의 흐름을 재촉이라도 하는 듯한 여름 비이다. 목청을 높이 개구리가 가는 여름을 서러워한다. 어서 가족들과 소주 한잔으로 세월이 담긴 여름 비를 이겨내야겠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하루는 또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