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라이딩 1일차, 낙동강가 억새 전경)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도 벌써 꽤 되어간다. 2015년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7년을 자전거와 살아오고 있다. 자전거 라이딩,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된 지 오래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들과 어울려 50km 정도를 타고, 곳곳의 맛집을 찾아 하루를 즐긴다. 다시 일주일에 한두 번은 혼자서 길을 나선다. 시골길을 따라 곳곳을 찾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고을마다 사람들 살아가는 사연들을 보고, 때로는 꽃을 따라 곳곳을 헤매기도 한다. 중요한 일, 계절마다 친구들과 하는 큰 행사가 있다. 먼 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다. 전국의 유명지를 돌면서 자전거를 타며, 신나는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행사이다.
곳곳의 여행지 중에는 기억에 남는 곳이 꽤 여러 곳이 있다.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까지의 라이딩, 섬진강 라이딩, 두물머리를 중심으로 남한강과 북한강 라이딩 그리고 각종 섬을 찾아 나서는 라이딩 등 많은 곳이 있다. 지난 5월엔 낙동강을 따라 친구들과 멋진 라이딩을 했었다. 상주에서 시작한 라이딩, 낙동강 줄기를 따라 달리고 달려, 창녕합천보까지의 긴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 상주 상풍교에서 부산 낙동강 하구둑까지는 324km, 그중에서 상주에서 합천창녕보까지를 완주하고 150여 km 정도가 남아 있었다. 언제나 숙제가 남은 듯한 낙동강 길이었다.
여러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는 중, 남은 낙동강 숙제를 해 보기로 했다. 오래도록 남은 숙제를 하고 싶어서였다. 고희에 가까운 친구들의 기세는 청년들의 기세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날짜가 결정되고 참가인원이 정해지자 두대의 차량에 자전거를 싣고 합천창녕보로 달려갔다. 널따란 낙동강을 보면서 지난 라이딩 길이 새롭게 느껴진다. 푸르른 들판이 누런 들판으로 바뀌었고, 산색마저 누렇게 물이 들었다. 어느새 농부의 발길은 바빠진 들녘이 시끄럽기만 하다. 출발한 날은 날씨까지 청명해 자전거를 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합천창녕보, 맑은 날씨를 축복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라이딩에 나섰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나섰다. 나름대로의 멋을 부린 젊은 청춘들, 부럽기도 하고 보기 좋기도 하다. 날렵한 자전거에 늘씬한 몸을 싣고 강바람에 따라 달리는 청춘들, 긴 머리칼이 싱그럽기만 하다. 두터운 허벅지가 세상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가는 곳마다 기세 좋게 나타나는 젊은 청춘들이 곳곳을 누비고 있다.
나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많은 생각이 바뀌고 생활양식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일에 지치고 쉼이 필요했던 시절, 놀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느새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은 삶의 일부로 바뀌고 말았다. 쉼을 위한 일이지, 일을 위한 쉼이 아님은 오래전에 바뀌고 말았다. 일을 하기 위해 쉼을 하였던 나의 청춘은 오간 데가 없다. 고희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쉼을 위한 삶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이제서라도 쉼을 위한 삶이 되었음이 다행이긴 하지만, 살아가는 삶의 생각이 변했음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흐르는 강물이 싱그럽다. 푸름과 누름이 어울린 산하, 곳곳에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쉼 없이 달려가는 낙동강, 주변의 가을 들판을 그들먹하게 만들었다. 곳곳에 농부들의 뿌듯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반짝이는 햇살과 함께 익어가는 가을은 먹지 않아도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오래전, 우리의 부모들이 몸부림치던 그 들녘이 이제는 평화스러운 춤판으로 변했음을 실감한다. 등짐을 지던 지게가 우람한 농기계로 변했고, 힘겨운 리어카가 트럭으로 변했다. 평화스럽고도 풍성한 가을들판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낙동강 길, 언제 이런 길을 또 달려 보겠는가? 곳곳에서 가을을 빛내주는 하얀 억새가 발길을 잡고 있다. 흐르는 강물 따라 하늘대는 하얀 억새가 가을을 노래한다. 높아진 하늘은 푸름과 한 몸이 되었다. 신나게 달리던 자전거 길, 합천창녕보를 출발해 첫 번째 고비를 만났다.
박진고개를 넘어가는 구간, 의령군 낙서면을 통과하는 구간이다. 대단한 경사도를 가지고 있는 박진고개, 고개를 넘는 트럭도 헐떡거린다. 오늘따라 여름날처럼 덥기만 하다. 힘껏 페달을 밟아보지만 언덕을 넘을 힘이 모자란다. 할 수 없이 걷기 시작한다. 높다란 비탈길을 그냥 걷기도 힘든 길이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고희의 청춘들, 힘을 내서 발을 내딛는다. 한참을 올라가는 중 젊은 청춘들도 할 수 없다는 듯이 걷는다. 금요일에 일을 끝내고 자전거길에 올랐단다. 혼자서 오는 길이 너무 좋단다. 한참을 달려도 혼자인 길,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된단다. 무엇을 그리 정리할 일이 있었을까? 사람의 삶이야 모두가 제각각이기에 삶은 역시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언덕을 오른다.
힘겹게 올라선 산등성이, 구름재 쉼터를 만났다. 한 모금을 물로 목을 축이고 내려다본 낙동강은 유유희 흐를 뿐, 말이 없다. 곳곳에 알곡을 영글게 하며 따가운 햇살을 받고 있다. 멀리서 농부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있다.
한 모금의 물과, 산뜻한 공기는 몸을 일으켜 주었다. 다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만 하고, 잠시 방심하면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에 올라 조심조심하며 내려선 길은 시원하기만 하다.
골골의 산골마다 푸근한 집들이 들어서 있다. 앞으론 들판이 있고, 뒤편으로 푸근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름하여 배산임수, 보기에도 안락한 시골 동네들이다. 골짜기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삶을 꾸려 갈 것이다. 거기에도 어미가 있고 아비가 있으며, 새끼들이 함께 하는 삶일 것이다. 삶의 즐거움도 있을 테고 또 슬픔도 있으련만, 가을을 맞이해 바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순도순 살아사는 서민들의 삶이야 늘 마찬가지지만, 이 가을엔 풍성함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도 해 보는 자전거 길이다.
서둘러 내려간 길, 다시 오르는 산길이 기다리고 있다. 삶의 굴곡처럼 곳곳에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 자전거 길이다. 편함만을 주는 삶이 어디 있다던가?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어 오름을 참고 견디는 이유가 된다. 힘겹게 오른 길을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시원하던가?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언덕길을 올라선다. 멀리 보이는 낙동강 물길만이 힘겨움을 알아준다. 산뜻한 녹음이 심호흡을 편하게 해 주는 자전거 길이다. 편안한 자전거길이 아닌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는 산악자전거 길이다. 하지만 곳곳의 누런 가을색이 가쁜 숨도 금세 평안함을 준다. 서둘러 자전거에 힘을 얹어 자전거 길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