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의 계절, 국화꽃)
가을의 꽃, 국화가 현란하게 피었다. 지나는 길에 만난 화원도 화려한 국화로 장식하고 있다. 마침 쏟아지는 햇살에 빛나는 국화,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참, 아름답다. 가을을 대표할만하다는 국화의 품격이다. 시골에 살 자리를 마련하던 해, 동네 입구에선 국화가 손님을 맞이해 주었다. 동네 입구 양 옆으론 국화가 일렬로 서서 물개 박수를 쳐 주는 행렬에 넋을 잃었었다. 누가 이렇게 국화를 심어 놓았을까? 이런 동네도 있구나! 가을을 물씬 안겨주던 길이었다. 고맙다는 생각으로 들어선 입구에서 또 놀랐다.
동네를 들어서기 전, 우측의 비스듬한 비탈밭에도 국화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배추를 심고 무를 심어야 하는 밭에 국화가 가득하다니! 아름다운 국화가 동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참, 좋은 동네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신이 났었다. 동네를 들어서면 국화꽃을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비탈진 국화밭을 지나면, 평평한 밭이 나타난다. 굵직한 느티나무가 우뚝 서서 동네를 지키는 곳이다. 자잘한 국화가 가득한 국화밭이다. 무슨 이유로 이 많은 국화를 심었을까?
동네 어르신이 국화를 심어 놓고 싼값에 판매하는 곳이었다. 정말, 신나는 동네였다. 국화를 구경할 수 있고, 싼 값에도 살 수 있다니 이런 호사가 또 있겠는가? 그런 연유로 매년 국화 구경도 하고, 또 구입해 키우곤 했다. 가을이 깊어지면 화단 옆에 깊숙이 묻어주며 내년을 약속할 수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여름을 밀어낸 가을은 국화꽃을 듬뿍 피워주고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동네 입구의 국화가 시들시들했다.
남은 국화도 어느 날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늘 아쉬워했지만 이 아쉬움을 달래 준 것은 비탈밭에 남은 얼마간의 국화였다. 비스듬한 비탈밭에 몇 그루의 국화가 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웬일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사연이 있겠거니 하면서 가을을 맞이했다. 지난해에도 시골집에 국화를 준비해 가을 분위기를 냈었다. 올해도 국화를 준비해야지 하면서 미루기만 했다. 언제쯤 국화를 만날 수 있을까 고심 중이었다. 아내와 함께 시내 일을 보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 화원 앞을 지나다 생각이 났다. 얼른 차를 돌려 화원으로 들어섰다.
노랗고 빨간 국화가 화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다양한 색깔의 국화들이 꽃을 가득 피운 것이다. 국화를 사러 들린 화원에서 꽃구경만 하고 있다. 모든 국화가 아름다워 전부 사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것을 사야 할까? 한참을 망설이다 덜 핀 진 노랑빛 국화와 국화과 참취 속(Aster) 식물인 보랏빛 아스타를 선택했다. 아스타는 그리스어로 별을 의미하는데, 꽃 모양이 별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국화꽃과 비슷한 모양의 진보라 빛 꽃이 국화와 잘 어울린다. 국화와 아스타를 차에 실었더니 향긋한 성스런 가을이 한가득이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꽃 국화, 중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꽃이다. 중국 이름은 국(菊)이요, 한국 이름은 국화이다. 중국에선 국화를 황화라고도 하는데, 꽃의 왕자라는 뜻에서 황화라 칭한다고 한다. 국화는 꽃의 크기에 따라 대국, 중국, 소국으로 나누기도 하며,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지칭되어 왔다. 날씨가 차가워진 가을, 서리를 맞으면서도 굳건히 아름다움을 지키는 국화에서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이다. 뜰에도 서너 그루의 국화가 있지만 아직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시골집에 커다란 국화와 아스타가 등장했다. 갑자기 시골집이 훤해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새 벌들이 모여들었다. 작은 화분을 몇 개 더 준비해야겠다. 깊어 가는 가을을 축복하기 위해서이다. 벌써부터 화단에 있는 국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꽃을 피우려는지 서서히 꿈틀대고 있다. 노랑과 붉음의 중간색, 지난해에 꽃을 보고 화단에 심은 국화다. 언제 꽃을 피울까 망설이는 사이, 구절초가 꽃을 피웠다. 하얀색과 보랏빛을 머금은 구절초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남은 국화가 있고, 수십 그루의 구절초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수많은 구절초와 국화가 꽃을 피울 것이다.
국화가 하얀 서리를 이고, 하얀 구절초마저 꽃을 접으면 이 가을도 한 없이 깊어질 것이다. 앞 산에 하얀 서리가 나무 끝에 일렁이고, 재잘대던 도랑물이 가늘어지면 서서히 가을은 퇴장하리라. 장대한 색깔로 들판을 수놓고 성스런 성물을 전해 주던 가을, 미련 없이 뒷걸음으로 물러날 것이다. 하얀 서리가 지쳐 갈 무렵이면 서서히 하늘은 하양으로 물들어 겨울이 오리라. 그래야 다시 봄이 찾아오고, 새싹을 그릴 수 있다. 가는 가을을 서러워 말고, 오는 겨울을 반가워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양과 노랑으로 물든 정원에서 지나는 계절 속에 멍하니, 하루를 또 보내고 있는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