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 홍접초)
대체 공휴일, 오늘이 월요일이지만 공휴일이다. 직장인들이야 신나는 주말이 연장되어 연휴가 되었다.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고 싶지만 공휴일은 체육관도 문을 닫는다. 소비자 측을 배려한다면 쉬는 날에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볼까 고민을 한다. 내일은 낙동강 자전거길을 나서야 한다. 마지막 점검을 해 볼까? 1박 2일에 150km를 탄다고 하지만 오고 가는 시간을 제하면 먼 거리임엔 틀림없다. 고희에 가까운 친구들이 나서는 길이기 때문이다.
잠깐, 망설이다 도로를 뛰어보기로 했다. 젊어서는 하프마라톤을 뛰었고, 체육관에서 늘 5km 정도를 뛰기 때문에 무리가 없을 듯해서이다. 운동 복장으로 차려입고 도로로 나섰다. 시작부터 기분이 이상하다. 상하로 흔들리는 피부가 러닝머신 위에서와는 전혀 다르다. 도로의 탄력이 발바닥으로부터 전달되는 강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인가 보다. 도로의 딱딱한 기분이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얼굴의 흔들림이 격하다는 느낌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러닝머신에서의 달리기와 도로 위에서의 달리기, 같은 달리기이기에 같을 듯 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전에도 여러 번 느껴왔던 기분이 그대로 온다.
서서히 몸을 추스르며 달리는 기분, 오래 전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나도 할 수 있을까를 시험하기 위해 도전한 하프마라톤이었다. 겁 없이 도전한 하프마라톤은 내 몸에 처절함을 전해준 최초의 도전이었다. 짧은 거리를 해보고 도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도전이었다. 느닷없이 20여 km를 달려가는 몸은 감당하기가 힘에 겨웠다. 같이 뛰는 사람들을 따라가려는 마음에 몸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 무작정 달려 나가는 도전 아닌 무모함, 몸이 감당되지 않을 정도였다. 팔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괜한 도전이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기분,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비록 2시간을 넘겼지만 죽을힘을 다해 이루어낸 첫 도전은 많은 용기를 주었다. 곳곳의 대회를 따라다니며 마라톤을 하게 된 동기였다. 10여 년의 하프마라톤,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순(耳順)이 넘어서면서 무릎이 편치 않아졌다. 쓸데없는 오기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할 수 없이 거리를 줄여 10km를 뛰다, 이제는 5km로 줄여서 운동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뛰고 있으니 적은 운동량은 아니지만 도로에서의 만남은 조금 생소한 기분이다.
긴 도로를 뛰어가는 느낌은 오래전에 만났던 기분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선한 바람이 찾아온다. 곳곳에서 가을 냄새가 전해 온다. 길가 논에는 벼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고, 곳곳의 배추밭에는 배춧잎이 밭을 가득히 덮었다. 먼 산자락에 있는 집에선 오늘도 연기가 피어오른다. 언제나 그리움을 주는 집이다. 도로를 뛰어가는 숨이 가빠진다. 언제까지 뛸 수 있을까? 얼마나 뛸 수 있을까? 코로나 전까지는 10km의 마라톤을 하기도 했었는데, 코로나가 발길마저 막고 말았다. 3km 정도를 뛰어 왔으니 돌아가면 거의 6km는 되리라는 생각이다. 숨이 벅차다. 진즉 도로에서 달리기를 해 볼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든다.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야겠다.
내려온 길이니 올라갈 길만 남았다. 긴 3km의 길이 올라가는 길이다. 내리막이었으니 오르막이 당연하다. 삶에도 그렇지 않던가? 힘이 들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수월하다. 얼마나 남았는가를 생각하면 훨씬 힘든다는 것은 벌써부터 알고 있다. 부지런히 달려 도착하면 땀을 흘린 채로 잔디밭을 정리해야겠다. 잔디밭 정리가 끝나면 잔디밭 가에 심어 놓은 배추를 돌보아야겠다. 심심해서 심어 놓은 배추 20여 포기, 제법 몸집을 불려 놓았다. 아침, 저녁으로 돌아보는 배추밭, 그런데 배춧잎을 무엇이 갉아먹고 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고심을 하던 중, 엊그제 배추밭을 바라보다 범인을 찾았다. 잔디밭에서 자라고 있는 메뚜기가 아닌가? 배추밭으로 자리를 옮겨 갉아먹고 있는 것이었다. 방법이 있었다. 메뚜기도 살고 배추도 온전한 방법이다.
메뚜기를 배추밭에서 멀리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한 마리씩 붙잡아 멀리 격리시키는 작업을 했는데, 또 격리 작업을 해야겠다. 시간이 남으면 배추밭에 물을 흠뻑 주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집에 가까이 도착했다. 온몸에 땀으로 젖어 있다. 몸은 땀에 젖어 있어도 마음만은 산뜻하다. 마라톤을 하지 않았으면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땀을 흘리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 아니던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겨우 뛰어 온 거리는 6km에 불과한데 몸은 쉽사리 반겨주지 않는다. 세월의 흔적을 다시 한번 느끼며 잔디밭을 돌보고, 다시 배추밭을 돌보아야겠다. 산뜻하게 아침을 보냈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갔음을 실감하는 아침이다. 두 시간 내로 20여 km를 뛰어도 살았었는데, 6km를 뛰고 나서 헐떡거리고 있다.
하지만, 6km를 뛰고도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괜한 마음으로 위안을 삼으며 삶의 궤적을 기억해 본다. 오후 9시에 퇴근하고도 20km를 뛰었다. 마라톤에 중독되어 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였다. 하프 마라톤 10여 년, 많은 거리를 뛰어다녔다. 신이 나서 뛰어다녔고, 마라톤 맛을 보기 위해 그리고 시원한 공기 맛을 보기 위해 뛰어다녔다. 죽을힘을 다해 뛰어다녔던 다리이기에 이젠, 그 다리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마라톤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했으니 아직도 10여 km를 거뜬히 뛸 수 있고, 또 내일은 150여 km 자전거 길을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조금은 비겁한 핑계로 위안을 삼으며 흘러 간 세월을 돌아보는 가을날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