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전원살이엔 극복해야 할 것도 많다.

(전원 살이의 꿈, 능소화의 꿈)

by 바람마냥

시골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삶의 둥지를 튼지도 몇 년이 되어간다. 집을 구하고 치장을 하며 갖가지 꿈을 꾸며 준비해 온 집이다. 운이 좋게도 적당한 가격의 집을, 제때에 구입하게 되는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운을 얻기에는 수많은 다리 품을 팔며 곳곳을 누빈 덕분이기도 하다. 집을 보는 안목도 생겼고, 가격이나 동네의 위치도 대략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푸른 꿈을 안고 찾아든 시골집, 그곳엔 자연이 주는 갖가지 축복이 있지만 극복해야만 하는 삶도 많다. 시내와의 거리관계, 지역민과의 소통관계와 자연과의 어울림 등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삶의 터전 마련이 그리 쉽다던가?


도시의 삶을 접고 살아가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이 그렇고, 살아감의 방식도 웬만한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시에서 10여 km에 위치한 적당한 거리에 집을 마련했다. 잠깐이면 도시에 닿을 수 있어 웬만한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일주일에 운동을 하러 서너 번, 취미생활을 위해 자주 오고 간다. 운전은 자연을 벗 삼아 재미로 즐기고 있다. 원래부터 운전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원주택은 생활 패턴을 고려해 적당한 위치에 마련해야 한다.

IMG_9201[1].JPG 칠자화가 꽃을 피우고,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고, 각종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좋아한다. 가끔 열리는 국가대표 축구경기나 프로야구를 현장에서 많이 즐기는 편이다. 소도시에 살면서 잠실이나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운동장을 찾아가야 하고, 반대로 내려와야 하는 일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위치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어려울 수 있지만 거리가 적당하면 큰 문제가 없다. 특히,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있을 경우엔 문제가 될 수 있다. 갑자기 병이 나거나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원주민들과의 소통이나 어울림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원주민들과의 어울림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따가운 햇살 아래 농사일로 바쁜 사람들이다. 원주민들의 삶과 관계없이 살아가면 언젠가는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그들의 삶과 상관없는 행동은 누가 봐도 공감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내가 사는 조용한 시골에 난데없는 사람들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시끄럽게 한다고 생각해 보자. 누군들 이런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삶은 어디를 가나 똑같다는 생각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모습이어야 공존할 수 있다. 가능하면 그들과의 격의 없는 어울림이 있어야 한다.

IMG_E9133[1].JPG 방울토마토가 열매를 맺고,

시골은 사방에 둘러싸인 것이 녹음이기에 습기와 각종 벌레가 많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말할 것도 없다. 언제나 습기에 대비해야 하는 시골살이다. 집안이 눅눅하고 습한 주변 때문에 각종 벌레와 같이 살아야 한다. 우선은 습기, 집안이 눅눅하고 곰팡이와 싸움을 해야 한다. 아침이면 문을 여는 것이 첫 번째 일과이다.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습기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택의 아래층이 모두 지하실이고, 1m 정도는 돋워서 집을 지었다. 윗집과 같은 높이에 주거공간이 놓여있고, 아래층과 같은 넓이의 지하공간에 철저한 방수처리가 되어 있다. 벽의 두께를 거의 40cm가 넘을 정도가 된다. 지하실엔 방음이 되는 음악실로 개조해 색소폰 연주, 하모니카 연주를 해도 전혀 불편이 없다.


다시 걱정은 벌레와의 전쟁이다. 모기나 각종 해충은 동거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공간에 인간들이 들어와 사는 것이지 않는가?. 다행히도 주변 도시보다 해발 200m 정도가 높다. 온도 차이가 3~4도이어서 여름에도 에어컨이 거의 필요 없다. 덕분에 모기도 그렇게 많지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한 마리의 모기나 파리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면 극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주변에는 벌이나 뱀이 있을 수 있고, 각종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지혜가 그들보다 뛰어나기에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 있다. 뱀이 싫어하는 식물이 있고, 동물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의 지혜가 있다. 몇 년을 살아가면서 시골살이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더 큰 것은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IMG_8815[1].JPG 밤에 만난 시골엔 푸근함이 있다.

잔디밭에 떨어지는 햇살, 녹음에 내려앉는 햇살이 도시와는 다르다. 맑은 반짝임에 눈이 부시다. 눈을 뜰 수 없는 싱그러움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자연을 언제 맛볼 수 있을까? 적당한 크기의 텃밭에 심어 놓은 채소가 자라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숙여진다. 주변 산천에서 나오는 각종 나물과 열매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삶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삶이 그리 쉬울 수 있다던가? 신선한 바람이 피부에 내려앉는 산뜻한 느낌을 알고 있는가? 홀연히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며 친구와 나누는 소주 한잔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삶에는 얻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잃는 것도 있다. 하나를 얻었으니 한 두 개는 포기해야 형평에 맞지 않겠는가? 자연이 주는 만큼 그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아량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재잘대는 이름 모를 새들과도 같이 살아야 한다. 집을 짓고, 알을 낳으며 새끼를 치고 살아간다. 인간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삶에서 나를 배우고, 배려하는 삶을 읽어 간다. 자연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삶을 위해 적당한 노동력과 바꿀 수 있는 아량도 있어야 한다. 일정한 삶을 내려놓지 않고 즐거움이 있을 수 없는 시골살이이다.


아름다운 이웃들과의 어울림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감동이다. 같이 어울리는 삶이어야 즐거울 수 있다. 작은 것에 얼굴 붉히고 양보가 없다면 살 수가 없다. 매일 보고 만나는 이웃이다. 울 너머로 얼굴을 보면서 삶을 살아간다.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양보하고 배려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 울을 넘어 싱싱한 과일이 오고 가고, 채소 한 줌이 넘어온다. 싱싱함에 고마움이 가득 담긴 그릇이다. 그 보다 더 맛있는 삶이 어디 있다던가? 거기엔 알맞은 노력과 공감이 있어야 한다. 대신, 내려놓은 삶보다는 즐기는 삶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살아가고 시골살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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