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을 쓰면서, 가을을 담은 뜰앞 산수유)
브런치에 글을 올린지도 꽤 오래되었다. 글쓰기,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더듬거림이 부끄럽기도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할까 말까를 수없이 망설이던 글, 글쓰기에 소질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왜 이렇게 거창한 일을 시작했을까? 학창 시절엔 영어와 수학에만 전력투구했던 사람은 책을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 간 후, 조금씩 마음이 변해 책을 좀 읽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뇌의 구조가 뿌리까지 이과 체질인 사람이 쉽게 될 리가 없었다. 책을 읽어도 읽는 시늉만 하고, 책에 몰입한 읽기가 아니었지만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다.
많이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책을 사고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제법 많아졌다. 시간이 나면 책방을 찾고 없는 돈을 아끼며 책을 샀다. 시대의 숨결이 스민 책도 사고, 읽어 두어야 할 것 같은 책을 사서 읽는 시늉(?)을 했다. 몇 번 이사하면서 많은 책을 정리했고 시골집으로 이사하면서 많은 책을 또 정리했다. 정리하기 아까운 책만 들고 왔는데도 기백권이니 많은 책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읽을 책이 없으면 왠지 허전한 느낌, 무엇인가 불안한 느낌을 받으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책이 주는 좋은 점과 즐거움이야 설명할 것도 없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찌게 하는 일은 늘 즐거움이었다.
나름대로 책을 골라 읽고 문자로 쓰이지 않은 상황을 상상하며 그려보는 일은 늘 흐뭇했다.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가들이 늘 존경스러웠다. 나름대로의 표현으로 독자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해 줌이 늘 신기했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기회를 마련해 줌이 늘 부러웠다. 위대해 보였고 조금이라도 닮아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삶의 여유가 있을 무렵, 나도 한 번 써 볼까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뼛속까지 수학적인 머리로 감성이 무딘 사람이고 평생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살아온 사람이다. 글을 어떻게 시작했을까?
하프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수채화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다. 늘,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의심을 하면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포항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까 궁금했다. 해 볼 수 있을까? 한 번 해 볼까? 지금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못할 것 아닌가? 내가 그림을 그리고, 색소폰을 연주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안되면 할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엄청난 독서량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감성마저 무딘 사람이다. 이치를 따지고 계산하며 살아온 사람이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몇 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면 글을 써 왔지만, 글 같지 않은 글 같아 올리기를 망설이고 또 고민하면서 하나씩 발행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쓰고 다듬으며 발행한 글들, 불편하고도 어설픈 글을 읽어 주시는 작가님들이 계셨다. 어마어마한 실력으로 이곳저곳을 누비는 작가님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셨다. 망설이던 마음에 용기를 주었고 삶에 관한 글엔 상당한 관심을 주셨다. 가끔은 메인 화면에 등장하기도 하고, 포털 사이트에도 등장한 글이 생기게 되었다. 벼락같이 오르는 숫자에 당황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오르는 숫자를 보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나의 글은 아름답고, 멋진 읽을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사람들이 시골생활, 전원생활을 꿈꾸고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시골이고, 아는 것이라곤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밖에 없으니 삶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뿐이었다.
어렵게 시작한 시골 생활, 세상에 어렵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으로 해 보는 시골생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집을 구하고 살림을 차리기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시골생활인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보는 이웃이 있고 친지들이 있는데 그냥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나와의 약속이 있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어려워도 참고, 힘들어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생활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자 했다. 시골에서의 이런 삶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시골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주로 자연과 함께하고 즐기는 일뿐이다. 브런치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자연과의 삶이고 그들과 어우러지는 모습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라게 하는 자연이 있고, 눈물이 찔끔 나도록 아름다운 그들이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도 아름다울까? 저렇게 맑고도 청명해도 되는 것인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을 보면서 삶을 엮어 가고 있다. 자연과 소통하는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글에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 대부분이 이런 삶이 어떤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선뜻 나서기는 망설여지지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이다. 시골 사는 모습을 통해 나의 삶을 설계하고 싶은 것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글은 대부분이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시작한 하루의 삶, 괜한 감정도 없고 느낌도 없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깊은 의미도 감흥도 없는 글이지만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은퇴 한 사람만이 좋아하는 듯하던 시골생활에 젊은 층에게도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 이웃에 이사 온 사람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시골집을 찾고 있다. 얼마나 즐거운 삶을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시골살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틀림없다. 깊이도 없는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그런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글쓰기가 긴장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쓰기 능력도 지식도 없는 사람이 어설픈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도 관심을 가져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시골에서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삶을 알고 싶어서다. 어설프게 시작한 시골생활이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자연과의 어울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시골생활에 관한 생각과 소소하게 살아가는 삶의 과정을 꾸밈없이 보여주려 한다. 보는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골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시골에서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자연과의 어울림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살아가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싶어서이다. 시골의 삶을 미화하거나 추천할 것이 아니라, 내 글을 읽고 현명한 선택을 통해 즐거운 삶이 될 수 있는 글을 써 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