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의 뜰엔, 아직도 가을 흔적이 남아있다.

(감사함이 가득한 식구들, 뒷산을 넘어온 가을)

by 바람마냥

아직도 가을의 흔적은 남아 있다. 짓궂은 바람은 오늘도 손님을 데리고 왔다. 울긋불긋 가을 색을 입은 단풍들이다. 노란 솔잎을 데리고 왔고, 붉은 화살나무 잎도 동반했다. 노랑과 붉음의 조합은 어디에도 빠질 수 없이 적당함이다. 진한 노랑도 아닌 연한 노랑에 진빨강이 섞인 붉음이다. 가을의 색으로는 빼놓을 수 없는 색의 조화였다. 가끔 차량들이 오가는 시골길의 가을 모습이다. 가을의 분신들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한 곳에 모아야겠다. 단풍들이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다. 곳곳에 누은 가을의 흔적을 모아 앞산으로 보내 주었다.


도로 위에 떨어진 낙엽을 보내고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가을의 흔적은 남아 있다. 게으른 듯 꽃을 피운 국화가 여전하고, 대문을 지키고 있는 칠자화가 든든하다. 하얀 꽃으로 온갖 벌과 나비를 유혹하던 칠자화다. 가을색은 찾아왔지만 아직 가을이 남았다는 듯이 칠자화가 건재하다. 지난해 화분으로 구입해 가을을 보고 화단에 심은 국화도 든든하다. 붉음과 노랑이 적당히 석인 국화, 몇 번의 서리발도 끄떡없이 든든하다. 마치 링 위에 오른 권투 선수 모습이다. 아무리 상대가 쓰러지길 바래도 전혀 내색이 없다. 가을이 저물 무렵에나 생각해 보려는 듯싶다. 여전히 든든함을 자랑하는 국화가 가을을 지키고 있다.

IMG_0077.JPG 아직도 건재 한 국화

잔디밭을 지키고 있는 것은 여전히 공작단풍도 있다. 가을까지 견딘 공작단풍은 계절을 버틸 만큼의 잎만 달고 있다. 허전한 이별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적당한 잎만 떨구었다. 잔잔한 잎을 피웠고 물을 들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서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아직은 어림없다는 표정이다. 붉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빨강으로 치장 한 공작단풍이다. 갑자기 찾아온 서리발도 훌훌 털어내듯이 찬 바람에도 끄떡없다. 계절을 다한 빨강 잎이 떨어져 자리했다. 잔디밭 가에 자리를 잡고 일렁인다. 눈길을 둘 수가 없도록 잔디와의 조화가 일품이다.


빨강 공작 단풍잎이 잔디밭으로 떨어진다. 작은 바람에 일렁이며 내려온다. 가을 색에 누렇게 변한 잔디밭에 빨강 비가 내린다. 깜짝 놀란 잔디가 어쩔 줄을 모른다. 순식간에 내린 빨강 공작 단풍잎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허공에 떠있는 단풍잎이 바람에 바르르 떤다. 여기에 내린 밝은 햇살이 빛난다. 누런 잔디에 빨강 비가 내리고 햇살이 찾아온 것이다. 가을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그림이다.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다. 어떻게 할까? 고민 끝에 하루를 더 보기로 했다. 검은 밤이 지나도록 아직도 남아 있는 가을을 더 보기 위해서이다. 빨강을 찾아 나선 울타리에도 아직 가을은 건재하다. 빨강으로 물든 화살나무가 살아 있다.

IMG_0073.JPG 화살나무와 블루베리

빨갛게 물든 화살나무, 줄기에 화살 깃털 모양의 코르크 날개가 달려있는 나무다. 너비 0.5cm 정도의 얇은 깃이 세로로 줄기에 붙어 있다. 화살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 화살대에 매단 깃털을 전우(箭羽)라 하는데, 화살나무에 있는 회갈색 코르크 날개가 전우 모양이다. 초봄 화살나무에는 보드라운 새싹이 돋아난다. 봄나물로 뜯어먹기도 하는 화살나무다. 초봄부터 파란 싹으로 즐거움을 주던 화살나무가 아직도 붉은 잎으로 치장하고 잔디밭을 호령하고 있다. 공작단풍이 호령하던 잔디밭을 이제는 붉게 물든 화살나무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밝은 빛이 투영된 단풍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가을이다.


붉게 물든 화살나무 잎이 떨어져 잔디밭은 꽃이 피었다. 수북이 쌓인 화살나무의 분신들 속에 공작단풍도 자리했다. 누가 더 붉게 물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비교할 수 없는 가을의 흔적에 발길을 멈추었다. 며칠을 더 보기로 했다. 붉게 물든 잔디밭이 서러워함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붉게 물든 잔디밭엔 아직도 가을이 더 남아 있다. 초봄부터 노랗게 피어났던 산수유 열매다. 잎이 나기도 전에 노랑으로 치장을 했었다. 서늘한 바람이 가득하던 초봄, 초목이 나올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을 때 난데없는 노랑꽃이 불쑥 꽃을 피웠다. 노랗게 물들여놓은 것은 전라도 구례 산동마을에서 봄을 알려주는 산수유였다. 산수유 열매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IMG_0110.JPG 붉게 익은 산수유

산수유나무는 생강나무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나무다. 전라도 구례 산동마을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나무다. 노랗게 꽃을 피운 산수유 꽃은 나무 끝자락에서 핀다. 줄기는 얇은 껍질이 벗겨져 까칠까칠하다. 생강 냄새가 난다 하는 생각나무는 나무 가지에서 꽃이 피며, 줄기가 매끄럽다. 어렵게 꽃을 피운 산수유 열매가 가을을 보내기 서러웠나 보다. 섣부른 서리발에 주눅이 든 잎에 숨어 빨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서러운 잎을 보낸 아쉬움에 붉게 물든 열매가 햇살에 반짝인다. 아직도 남아 있는 가을 흔적이 여전하다.

IMG_0124.JPG 공작단풍의 위용

가을을 선뜻 보내기 아쉬운 전원의 뜰, 곳곳에 여전히 가을의 흔적들이다. 꽃을 지운 나무수국이 물끄러미 서 있고, 잎을 떨군 개키버들 줄기가 바람에 흐느낀다. 다시 붉은빛으로 정열을 불사르는 나무, 블루베리가 있다. 가을까지 산까지의 등살을 이겨내느라 수고한 블루베리가 붉은 잎으로 반짝인다. 잔디밭 가에 심어 놓은 두 그루의 블루베리, 가끔 찾아오는 손녀를 기다릴 사이가 없다. 익은 것만 찾아 먹어대는 산까치의 방문을 막을 방법이 없어서다. 할 수 없이 산까치가 먹고 남은 것만 먹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옆에 있는 화살나무 그리고 공작 단풍과 잘 어울리며 끝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IMG_8768.JPG 단양, 사인암에 내린 가을(수채화)

아직도 곳곳에서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뜰 앞 식구들, 봄부터 가을까지 시골집을 빛내주었다. 인간의 간섭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식구들이다. 봄 새싹부터 여름 비바람을 지나 가을 선물까지 분에 넘치는 든든한 식구들이다. 언제나 감사해하고 고마운 식구들, 남은 가을을 잘 마무리하길 기대할 뿐이다. 유난히 추운 곳에 둥지를 튼 식구들이 무난히 겨울을 지내리라. 집 앞을 흐르는 도랑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긴긴 겨울을 이겨낸 식구들이 건강한 봄을 맞이했으면 하는 가을날이다.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음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자연이 주고 베푸는 대로 살아가는 시골의 삶이다. 건강한 자연과 어울리는 삶이 순리에 거슬리지 않길 간절히 바래 보는 끝가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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