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쓸며, 가을의 노래하는 단풍)
현관문을 열고 나선 아침 공기가 서늘하다. 가을이 성큼 왔음을 실감하는 아침, 도랑물도 몸집이 많이 줄었나 보다. 엊그제 소리하고는 다른 소리다. 아랫배에서 나오는 우렁찬 소리였는데 아침에 만난 소리는 전혀 다르다. 앞산에서 떨어진 가을이 물길을 막았고, 물줄기에도 가을이 서려 조심스레 나는 소리다. 계절의 순환이야 어쩔 수 없는 일, 도랑 가에도 낙엽이 가득하다. 엊저녁에 불어 온 바람이 한 짓이다. 누구에게 들킨 듯이 멈추어준 바람이 잔잔해 좋다. 아직은 봐줄 만한 신선한 바람인데 아쉽기도 하다.
뜰에도 낙엽이 가득하다. 뒷산 낙엽도 그리고 앞산 낙엽도 마실을 왔다. 섣부른 바람의 마실길에 덩달아 따라왔나 보다. 어지럽게 노니는 낙엽을 치워야겠다.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이 오늘따라 썰렁하다. 새벽 아침 공기가 서늘하지만 바람이 잔잔한 아침이다. 적당히 이슬이 내려와 낙엽 쓸기 좋은 아침이다. 창고 문을 열고 싸리비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 준비한 싸리비, 궂은일을 많이 했는지 키가 많이 줄었다. 낙엽을 쓸고, 눈을 쓸어냈으며 갖가지 궂은일을 한 싸리비다. 장날에 들러 다시 장만해야 겨울을 날 수 있으리라.
오래전엔 뒷산 싸리나무가 제 몫을 했었다.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싸리나무, 자잘하게 빨간 꽃을 피워 예쁘기도 했었다. 적당히 자란 싸리나무를 베어 말려 가느다란 새끼줄로 엮어 사용했었던 싸리비, 아버지의 숨결이 담겨있었다. 그리움을 주던 싸리비를 이제 대나무가 대신하고 있다. 선뜻 구입한 싸리비에 Made in china가 붙어있어 깜짝 놀랐다. 싸리비 한 자루에도 중국의 힘을 빌려야 함에 놀라서였다. 장갑을 끼고 들어선 잔디밭엔 아침 이슬이 맑게 내려왔다.
잔잔하게 내린 이슬을 밟기가 망설여진다. 자잘한 잔디 위에 내린 이슬이다. 조금 있으면 맑은 햇살이 내려와 찬란하게 빛을 발할 잔디밭이다. 시골집에 자리를 잡고 가장 고마운 것이 햇살이었다. 도시에서 만나는 햇살이 아니었다. 잔디 위에 내린 햇살, 꽃잎 위에 내린 햇살에 넋을 놓았었다. 한참을 바라봐도 지치지 않는 맑은 햇살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곳곳에 떨어진 가을의 흔적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대지에 누웠다. 멀리서 온 노란 솔잎 그리고 참나무 잎에 공작단풍도 몇 잎 보인다.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싸리비의 수고를 빌리기로 했다. 잔디밭에도 누워있고 뜰앞 길에도 널려 있다.
선선한 아침, 적당한 이슬이 찾아와 낙엽은 자기 방식으로 널브러져 있다. 누울 대로 누워 작은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다. 흔들림이 없는 갖가지 낙엽, 빗자루가 지휘하는 대로 몸을 맡긴다. 빗자루의 손길에 거스름이 없다. 작은 이슬이 내린 아침이 낙엽을 쓸기 좋은 이유이다. 한낮에는 몸이 가벼워져 낙엽 쓸기가 난해하다. 가벼운 몸집을 제멋대로 나대 서다. 빗자루 손짓에 상관없는 발걸음에 빗자루가 고단하다. 아직도 봐줄 만한 잎들의 떨어짐에 아쉬움도 있다. 붉음에 노랑이 적당히 섞여 있는 낙엽, 처절한 나무의 삶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마지막 이별은 내년 봄을 준비하기 위해 처절한 작별이었다.
빗자루의 손길로 모아진 가을의 흔적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겠다. 대지에 힘을 주어 오는 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바람 따라 얼떨결에 따라온 낙엽은 앞산과 뒷산에서 마실 온 낙엽들이다.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감이 순리가 아니던가! 앞 산으로 자리를 옮긴 낙엽들이 제자리를 잡은 듯 편안해 보인다. 곳곳에 다양한 낙엽들이 어울려 있다. 아직도 남은 잎은 저마다의 밝은 빛으로 계절을 노래한다. 순식간에 찾아온 햇살이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넉넉한 반짝임으로 붉음에 덧칠을 하고 남은 빛은 잔디밭으로 내려왔다. 남은 이슬이 되받아 친 빛은 어쩔 줄 모르고 반짝인다.
아직도 남은 단풍은 허공에서 춤을 춘다. 갖가지 색깔로 가을을 노래하는 자연의 선물들, 붉은빛에 햇살이 내려와 찬란함을 과시한다. 아직도 가는 계절 서러워 이별을 미루고 있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함께한 나무가 가을이 되어 떨쳐내기엔 서러운가 보다. 곳곳에서 반짝이는 햇살이 묻은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날려온다. 춤추는 낙엽이 하늘에 가득하다. 이별의 아쉬움을 바람이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나 보다. 산을 넘은 작은 바람이 이별의 변을 건넨다. 이별은 언제나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라고.
붉은 낙엽이 작은 바람결도 이기지 못해 하나둘씩 떨어진다. 마지막 부여잡고 있던 힘겨운 손길도 명을 다했나 보다. 계절 속에 익어가는 우리의 삶도 같으리라. 계절의 순환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푸르른 청춘이었다. 한때는 붉게 물든 찬란한 단풍이었다. 아름답게 치장한 단풍이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계절을 마음껏 노래하고 떨어지는 낙엽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자연의 빛으로 계절에 순응하며 떨어지는 낙엽들이 경이롭고도 성스럽다. 아름답게 치장한 삶은 어떤 모습일까? 너울너울 춤을 추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붉게 물든 낙엽이 떨어지는 아침, 낙엽을 보며 지나간 삶을 기억해보는 시골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