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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30. 2021

잉크병, 뚜껑이 골을 부리고 있다.

(파란글씨의 추억)

평생 글씨를 쓰며 살아야 하는 삶, 초등학교에서는 연필로 글씨를 썼고 중학교에서는 잉크를 이용했었다.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철부지 중학생, 펜이라는 쓰기 도구에 잉크를 찍어 글씨를 썼다. 글씨 쓰는 펜과 펜촉, 코흘리개 중학생이 쓰기에는 난해한 도구였다. 펜촉을 펜대에 꽂아 잉크를 찍어가면서 글씨를 쓰는 것이다. 펜대가 없으면 볼펜 끝에 끼워서 사용하기도 했던 펜글씨다. 펜촉이 뾰쪽하기도 했지만, 잉크를 많이 찍으면 흘러내리고, 적게 찍으면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 적당한 양의 잉크를 찍어 알맞게 힘을 들여 글씨를 써야 하는 고단한 도구였다. 실수로 잉크병을 엎어 옷을 망치기도, 가방 속 잉크가 새어 난리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시절엔 모나미 볼펜이 대세였다. 펜글씨는 사라졌고 하얀색 모나미 볼펜이 주를 이루며 연필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펜글씨를 써야 글씨 쓰는 솜씨가 좋아진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의심했던 기억이다. 세월 따라 글씨 쓰는 도구가 변천하면서도 검은색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왠지 난 푸른색을 고집해 왔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색깔은 여전히 푸른색을 선호하곤 했다. 군에 입대하면서 많은 글씨를 쓰게 되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통신병 교육을 받고도 대학을 졸업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행정반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군대 시절, 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는 엄청 구박을 받기도 했다. 펜글씨를 열심히 쓰지 않아 그럴까?

행정 일을 하면서 모든 것은 수기로 했던 시절이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글씨를 썼다. 여러 장이 필요할 때는 종이 사이에 소위 '먹지'라는 것을 끼우고 눌러가며 글씨를 써야 했다. 손가락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글씨 색깔은 검은색을 주로 이용해야만 했고, 좋아하는 푸른색은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엄청난 글씨 연습으로 군대를 마치고 복귀한 학교 현장, 또 글씨를 써야 했다. 아이들한테 수학을 가르치는 직업, 그래서 선택한 글씨는 대부분 연필을 사용했다. 책상 위에는 예쁘게 깎아 놓은 연필 그리고 옆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만년필이 있었다. 물론 잉크 색깔은 푸르름을 되찾았다. 다시 푸른색 글씨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동안 연필을 주로 사용하면서 사무적인 일을 할 때는 만년필을 사용했다. 물론 색깔은 푸른색이었다. 하얀 종이 위에 푸른색으로 써 놓은 글씨, 마르지 않은 잉크에 반짝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전등에 반짝이는 파란 글씨는 눈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어설픈 펜글씨로 써놓은 알파벳 소문자 행렬, 어떻게 저렇게도 예쁘게 빛나고 있을까? 푸른색을 고집하는 이유였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파란 잉크를 넣은 만년필을 이용했다. 예쁘게 써 나가는 숫자의 행렬은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만년필을 이용한 파란 글씨는 현직을 떠날 때까지도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현직을 떠나야 했다. 글씨를 써야 하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시 글씨를 쓰는 기회를 만들고 말았다. 


현직을 떠나면서 평생 동안의 아쉬움, 영어회화에 대한 한이었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 자유롭지 못한 언어에 대한 한을 해결하고 싶었다. 몇 년의 노력에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거기엔 파란 만년필 글씨가 있었다. 소문자로 가지런히 써가는 파란 만년필 글씨, 오랫동안 살아왔던 내 집을 찾아온 기분이었다. 한 권의 노트를 파란 글씨로 채워 넣고, 다시 시작한 한 권의 노트를 파란색 만년필로 정리를 했다. 쉬면서도 왜 이리 할 일이 많던가? 몇 년 동안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연히 파란 글씨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야 했다. 다시 시작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가끔은 글씨가 필요했다. 다시 파란 만년필 글씨가 선보이게 되었다. 좋은 글귀를 노트에 정리하고, 필요한 글씨를 가지런히 써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게으름은 끝이 없다던가? 글씨를 쓰는 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하면서 사달이 났다. 작은 메모도 휴대폰에 하던가 아니면 컴퓨터를 이용하게 되었다. 위기를 맞은 것은 책상 위에 있는 만년필 식구들이었다. 그리고 파란 잉크병이었다. 아내가 선물해준 만년필, 제자들이 선물해준 만년필과 여행기념으로 구입한 만년필이 필기구 통에서 잠을 자는 사태가 벌어졌다. 잉크병은 뚜껑이 닫힌 채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파란 글씨가 그리워졌다.


책을 읽으며 기억해두고 싶은 글을 만년필로 쓰기로 했다. 다시 파란 글씨가 빛을 보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얼마간의 노력으로 파란 글씨와 만년필 그리고 파란 잉크가 다시 등장했다. 오랜만에 빛을 보게 된, 파란 글씨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식구들이다. 한동안 그들과 노는 사이, 다시 게으름이 고개를 들었다. 컴퓨터에 익숙해 있는 몸뚱이는 게으름을 피웠다. 파란 글씨를 외면하게 되고, 웬만하면 컴퓨터와 휴대폰을 이용하는 망령이 또 살아나고 만 것이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삶이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파란 글씨가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전, 파란 글씨가 생각났다. 만년필로 글씨를 써 보고 싶은 것이었다.


만년필을 꺼내 글씨를 쓰려는데 잉크가 없다. 잉크가 말라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잉크병을 꺼내 잉크병을 열려니 오랫동안 잠들어 깨어나지 않는다. 뚜껑이 말라붙어 열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손길이 오가지 않은 탓에 그만 골이 난 것이다. 잉크병이 골을 부리고 있다. 심통이 낫는지 도대체 뚜껑이 열어지지 않는다. 있는 힘을 모아 간신히 잉크병을 열자, 잉크병은 깊은 한 숨을 쉰다. 그렇게 구박을 하고 쳐 박아 놓아도 되느냐는 뜻이었다. 원망은 하지 않지만 흘긴 눈으로 바라보는 잉크병에 미안하기도 하다. 어째서 그렇게도 좋아하던 파란 글씨를 내 팽개쳤을까? 게으름을 접어 두고, 다시 파란 글씨를 예쁘게 써나가는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지속될는지 아직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음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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