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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28. 2021

가을을 찾아가는 길, 안면도

(안면도 여행,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 )

오래전, 안면도 소나무 숲이 그리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은 소나무 밑 그늘, 안락한 잔디밭엔 싱싱한 대하가 누워있었다. 하얀 소금이 깔린 불판에 붉게 물들어가는 대하 모습은 가을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약간은 달큼한 맛에 짭짜름한 맛이 배어 있는 대하, 가을을 논하며 피할 수 없는 맛이었다. 거기에 시원한 소주가 곁들여진 가을 맛은 비켜갈 수 없는 맛과 멋이었다. 가끔 만날 수 있는 하얀 구절초, 올해도 저물어 간다는 것을 암시해 주곤 했다. 키 작은 코스모스가 해변길을 물들여 주고, 오가는 길가엔 먹거리가 그득한 서해안 바닷길이 그리운 아침이다. 


비가 온다는 가을날 아침, 기상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햇살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말에 심통이 났었지만, 오늘따라 밝은 햇살이 반갑기만 하다. 성스런 가을날 기분이 되살아 났다. 안면도와 소박한 절집, 간월도가 생각났다. 가을 김치가 떠오르는 동네, 광천장이 떠오른 것이다. 새우젓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짐을 챙겼다. 안면도 소나무 숲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볼 참이다. 오늘 아니면 또 언제 갈 수 있을까? 쓸데없는 핑계로 운전대를 잡았다. 서둘러 갔다 와야 저녁에 있는 야구 중계를 볼 수 있다. 서둘러 안면도 소나무 숲으로 나섰다.

서해, 간월도 앞바다

곳곳에 벌써 사람들로 붐빈다. 반듯한 고속도로를 피해 지방도로로 접근하는 도로, 말도 많은 세종시에 가까워졌다. 수없이 들어선 아파트가 숨길을 막는다. 금강변을 따라 올라선 아파트가 하늘 길을 막아서고 있다. 곳곳에선 산을 허무는 굉음소리가 가득하다. 옛이야기 숨겨있는 뒷동산이 무너지고 있다. 쉼 없이 밀려나고 있는 뒷동산이 붉은 배를 드러내고 있다. 흉측한 거미처럼 온산을 휘젓고 다니는 중장비 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을 향해 드러낸 뱃속을 이리저리 휘젓는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다. 자연의 소리를 들어주어야 할 듯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숨 막히는 세종시를 벗어났지만 고속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각 진 도로를 얼른 벗어나고 싶어 속도를 내 본다. 하지만 곳곳엔 발길을 막는 속도측정기가 손사래를 친다. 죽을 수도 있으니 진정하라는 경고장도 있다. 곳곳의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문구, 깜짝 놀라곤 한다. 피곤하면 제발 쉬어가라던 애정 어린 문구가 어느 날 보니 돌변했다. 졸음운전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니란다. 깜빡 졸음 번쩍 저승이란다. 졸음운전! 목숨을 건 도박이란다. 이 정도는 되어야 잠이 달아난다는 생각인가 보다. 규정속도도 지키면서 졸음도 떨쳐야 함을 알려주는 경고문, 인간의 삶이 그렇게도 자극적으로 변했는가 보다. 길가에 사과를 파는 상점들이 분주하던 예산 길이다. 사과를 파는 상점이 줄을 이었던 도로,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가을바람 따라나선 여행, 오래 전의 일상을 기대해 본다.

바닷바람이 찾아오는 길로 들어섰다. 홍성 갈산면, 시골장터가 정겹던 곳이다. 할머니들이 나물과 해산물을 팔던 장터가 그리운 곳이다. 가을을 찾아 떠나는 많은 사람들, 인근 남당항을 찾아가는 차량들인가 보다. 가을에 살이 오른 대하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갈산을 벗어나자 서산 간척지가 보인다. 누런 빛깔의 가을 들녘이 눈앞에 보인다. 끝도 없는 누런 들판이 가을임을 알려주고,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이 한가롭기만 하다. 홍성군 서부면과 서산군 부석면을 이어 주는 A지구 방조제는 총 6,458m, B지구는 부석면 창리와 태안반도를 연결하는 2km에 이른다. 여의도의 40배가 넘는다 하니 현대의 고 정주영 회장의 뚝심을 볼 수 있는 엄청난 사업임을 알게 한다. 언제나 호젓함을 알려주는 간월도가 보인다.


간월도, 고려말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도를 깨우쳤다 하여 간월암(看月庵), 이 섬을 간월도라 하였다 하는 곳이다. 오래전엔 시골 할머니들이 자연산 굴로 만든 어리굴젓이 맛스러움을 주던 곳이다. 소박함은 어느새 없어지고 현대인의 물결이 가득한 간월도가 되었다. 서서히 안면도가 보인다. 안면도(安眠島), 편안하게 잠자는 듯한 섬이라는 뜻이다. 섬의 모양도 사람이 잠자는 모습처럼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곳곳에 고구마를 파는 상점들이 여전하다. 입구부터 코로나의 위력을 알게 한다. 허전한 상점들이 보이고 전과 같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백사장 입구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대하와 꽃게가 넘쳐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백사장이었다.

어떻게 할까?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데, 썰렁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곳곳에 있는 상점에서 사람을 부르지만 내키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 속에 사는 재미가 있는 법, 썰렁한 식당을 외면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사람이 많은 듯한 식당으로 갔다. 차가 줄지어 있지만 식당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코로나의 위세를 실감하게 된다. 주차를 하고 들어선 식당, 두어 명이 점심을 하고 있다. 잘못 들어왔나? 순간 발길을 멈칫거리게 한다. 어쩔까 망성이다 들어선 식당이 썰렁하다. 메뉴를 고르느라 눈의 수고를 빌리던 중, 주인이 메뉴를 설명한다. 게국지가 맛있단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한단다. 오래전에 게국지를 먹은 적이 있다.


아이들과 찾아갔던 서산 재래시장, 허름한 게국지 집에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유명한 식당을 언제나 자상한 사위가 찾아낸 것이다. 역시 젊음이 좋다는 생각을 하며 먹었던 게국지가 생각나 주문했다. 게국지, 게를 손질하여 겉절이 김치와 함께 끓여 낸 향토음식이다. 기다림 끝에 나왔던 게국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서산에서 만났던 게국지가 아니었다. 꽃게 두어 마리와 대하 서너 마리 그리고 묵은지를 넣어 끓인 국이었다. 바닷가라 소금이 흔했던지 짠맛이 가득해 먹을 수가 없다. 물을 붓고 끓이는 것을 보고 다가온 주인장,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는데 하면서 걱정을 한다. 간신히 게국지(?) 맛을 보고 나오는 안면도의 바람은 서늘하기만 하다. 코로나가 음식 맛까지 이렇게 만들었나 보다. 

간월도가 한적하다.

안면도 구경에 나섰다. 백사장해수욕장 소나무 숲, 오래 전의 숲이 아니었다. 어설픈 펜션이 자리 잡았고, 썰렁한 바닷바람만 서성인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인적이 끊어졌다. 곳곳에 사람이 북적이던 곳, 그곳에 파도 소리만 가득하다. 사람의 온기가 스미지 않은 곳, 역시 바닷바람만 있을 뿐이다. 허전함을 뒤로하고 찾아간 바닷길도 마찬가지였다. 인적은 드물고 곳곳에 자리한 펜션은 썰렁한 기분이다. 주차장이 가득했던 주말인데 몇 대의 차량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꽃지 해수욕장을 들러 나오는 바닷바람은 춥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벌써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온다는 뜻인가 보다. 짧아진 해를 감안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오는 길에 간월암을 들렀다. 


무학대사의 발길이 있었다는 간월암, 제법 사람들이 붐빈다. 썰렁한 바람은 찾아왔지만 코로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절집으로 오게 했는가 보다. 푸르른 바닷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간월암, 서늘한 바닷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언제나 푸근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던 간월암이 서먹서먹해진다. 왠지 먼 곳에 있는 듯한 섬이라 여겨진다. 멀리는 안면도가 누워있고, 파란 바닷물에 떠 있는 간월암이 흘깃 바라보는 간월도는 오래 전의 섬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손수 만든 어리굴젓이 그립고, 고실고실한 하얀 쌀밥에 고명으로 앉아 있던 얼큰한 어리굴젓 맛을 보고 싶은 여행길이다. 소박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어느새 세월 따라 변했음이 아쉽지만, 오랜만에 나선 서해안 여행길은 한가한 가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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