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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11. 2021

부석(浮石)은 그날, 말이 없었다.

(부석사를 찾아서, 푸근한 절집 앞 풍경)

가을이 깊어지는 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근거렸다. 벌써부터 가보고 싶었던 영주 부석사, 갈까 말까 망설이다 운전대를 잡았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찾아가는 절집이다. 부석사까지는 어느 방향으로 갈까? 한참을 망설이다 지방도를 이용해 가기로 했다. 빠르기도 하고 편리한 고속도로를 가능하면 피하는 편이다. 각진 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유연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도로가 훨씬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청주에서 단양으로 가는 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전히 가을비가 추적거리고 있다. 오래전에 만났던 길들, 청풍 호반을 끼로 돌아가는 산간 도로는 아직도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에 만났던 철쭉, 소백산 연화봉

하얀 안개를 얹고 있는 야트막한 산자락, 밑으로 웅크리고 있는 듯한 녹음과의 어울림이 일품이다. 때 맞추어 떨어지는 가을비는 고운 운율을 더해주고, 덩달아 흔들리는 산자락은 온 천지를 흔들어 주고 있다. 곳곳의 곡선 길은 여전히 유연함을 자랑하고, 골짜기에 숨은 물길은 끝없이 싱그럽다. 월악을 배경으로 한 떼구름은 별천지가 따로 없고, 잔잔한 빗줄기는 비스듬히 흩어진다. 구비구비 산과 호수 속, 신선이 되어 호수를 벗어났다. 다시 만나는 것은 소백산맥이 안고 있는 죽령 길이었다. 오래 전의 긴 추억이 되살아 난다.

부석사 입구, 인적이 없다.

희방사를 찾아 헤매던 산길, 아이들과 6월 철쭉을 만나기 위해 허덕이던 산줄기의 긴 길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철쭉을 만나러 가는 길, 언제나 기다림과 흐느낌이 있는 산이었다. 소백 줄기를 호령하는 산바람은 언제 찾았는지 안개와 하나 되었다. 소백 속을 넘나드는 인간은 한 줌의 점이 되어 신비함에 흐느낀다. 긴 언덕을 치장한 거대한 떼 철쭉에 인간의 왜소함은 한눈에 드러나고, 어느새 운무는 온산을 덮고 말았다. 긴 소백을 안고 있는 안갯속 철쭉에 흐느끼던 인간들은 너나없이 작은 점이었다. 기나긴 추억 속에 죽령을 넘어서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굽이굽이 찾아가는 태백산 부석사길, 언제나 노랑으로 젖어 있었다. 길가 은행나무가 노랑물에 젖어 길손을 맞이했었는데 오늘은 아직, 이른 가을인가 보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는 날, 노랑은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골짜기에 늘어서 들녘엔 누런 빛깔이 물들었고, 흩어진 사과 농장은 짙은 붉은빛으로 젖어들었다. 처절하게 내리는 가을 비는 누렁과 붉은빛을 진하게 적셔주고, 산골짜기엔 백색 연무가 가득히 고여 있다. 서둘러 찾아간 부석사 입구 주차장, 긴 고요만이 서성대고 있다. 사람 발길이 붐벼 들어설 공간이 부족했던 곳이다.

구름마저 멈추었다.

한마디로 썰렁하다. 비가 와서 그런가? 평일이라 그런가?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고, 어딘가 쓸쓸함에 발길마저 멈칫댄다. 손님들로 부산하던 상점들도 문을 닫고, 처절하게 빗물만 훔치고 있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입구, 그리운 할머니들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이웃집 할머니, 어머니 같았던 할머니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붉은 사과와 그득한 특산물을 구경시켜 주시던 할머니들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시국이 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 만 것이다. 주변의 사과 농장, 사과를 쌓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문을 닫았다. 주인도 손님도,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절집 입구에 들어 선 길에도 사람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긴 은행나무 길에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수가 있을까? 가을에 익어 떨어진 은행만이 널브러져 있다. 처절하리만큼 적막한 오후이다.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어깨가 그립고, 사진 찍기 불편했던 사람 흔적이 그리워진다. 절집의 은은함이 없고, 사람 냄새가 없다. 왠지 섬뜩한 기분에 발걸음까지 무겁다. 긴 은행나무 터널을 지나 절집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한쌍의 부부가 보인다. 얼마나 반갑던가? 사람 소리를 처음으로 들어 본다. 수도가에 떨어지는 물소리만 길게 들려온다. 너무도 커다랗게 들려온다. 무량수전 앞으로 올라섰다.


부석은 말이 없다.

아직도 인기척은 한 부부뿐이다. 굵은 빗줄기는 가느다랗게 변했다. 허전한 마음으로 바라본 절집 앞엔 여전히 큰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마당에 가득한 사람들이 바라보던 풍경, 허전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다. 은은히 번지는 절집 분위기가 왠지 허전하고도 쓸쓸함을 준다. 아무 소리도, 아무 움직임도 없는 절집이다. 한참을 바라보는 산줄기엔 구름마저 움직임이 없다. 사람 냄새에 구름도 춤을 추는가 보다. 아무 느낌도, 동요도 없다. 절집 앞에 한참을 서성인다. 오래전 어머님이 생각나는 절집이다.


허물어져가는 어머님을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치듯 왔던 절집이다. 허전하고도 무능함을 피하기 위해 달려왔던 절집이었다. 사람 속에 잊힐까 했던 일이, 적막한 공간 속에 홀로 서 있다. 긴 기억 속에 만난 어머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소백산 줄기에 구름이 서서히 움직인다. 하염없이 흐르는 구름 따라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서너 명의 산객이 찾아왔다. 큰 절집에 네댓 명이 전부이다. 가는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긴 산줄기 따라 떠 오르는 삶의 순간들, 오늘따라 길게 느껴지는 절집 분위기다. 아내는 무량수전으로 숨어 버렸다. 부처님을 만나고 싶은가 보다. 아직도 가랑비는 부석을 적시어 준다.

아직도 인적이 없다.

먼 산을 바라보던 눈길이 절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아직도 간절하게 절을 하고 있다. 그렇게도 간절한가 보다. 인간의 삶이 그렇고 그런 건데,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곡절이 있을게다. 무량수전 앞을 서성이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덩달아 내리는 빗줄기에 절집이 묵직해진다. 오래전, 도피하듯 찾았던 아무 소리도 없는 절집, 가을 비만 가만히 내리고 있다. 모든 세상이 제자리에 서 있다. 절집 앞 큰 배나무에 몇 덩이의 열매가 매다려 있다. 긴 빗줄기에 몸을 적시고 있다. 마치 눈물인 듯 방울방울 떨어진다. 세월을 다한 배 몇 덩어리, 대지를 베고 누워있다. 왠지 편안함을 주는 것은 왜일까? 


서둘러 되돌아 내려오는 길, 노란 은행잎이 한잎 두잎 떨어진다. 빗물에 젖어 떨어지고, 가느다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다. 세월을 다한 은행 잎이 중력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보다. 사람 사는 게 별것이 있다던가? 소소한 재미에 발 붙이고, 마음 붙이면 그것이 최고 아니던가? 봄부터 여름까지 뜨겁게 사랑했던 은행잎이 미련 없이 대지로 돌아왔다. 왠지 편안함을 주고 있다. 고요한 숲 속엔 아직도 보슬비가 추적댄다. 푸르른 청춘 은행잎은 아직도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있다. 아직도 삶의 여력이 여전한가 보다. 긴 사과밭은 아직도 침묵 중이고, 떨어진 은행만이 나뒹굴고 있는 부석사 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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