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Dec 12. 2021

1/4의 아쉬움, 낮잠과 늦잠으로 꿀잠 세월이 되었다.

(새벽에 나는 생각, 앞 산의 넉넉함)

새벽에 눈을 뜨니 부지런 떨던 시곗바늘도 4시까지 밖에 가지 못했다. 목이 말라 머리맡 물병을 치켜세웠다. 시원한 물줄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꽤 상쾌하다. 엊저녁, 아내와 소주 한 잔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기에 시원함이 더한가 보다. 아홉 시가 되지 않아 잠자리에 들었으니 7시간은 눈을 감고 있었다. 대개는 12시는 넘기고 자는 사람이지만 가끔 세상 이야기 나 몰라라 남겨 놓고 잠자리에 들곤 한다. 하지만 야속한 늙은 몸은 많은 시간을 자기엔 적합하지 않은 모양이다. 기어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마니 조금은 야속하기도 하다. 눈을 뜨니 또 생각이 많아진다.


한참을 뒹굴거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평생 80년을 산다고 생각할 경우, 하루에 6시간을 잔다고 생각해 보자. 하루의 1/4을 눈을 감고 있으니 80년의 1/4을 눈을 감고 있음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었다. 20년 이상을 눈을 감고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일찍 일어나 늦게 자고,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누리며 살고 싶었던 기억이다. 세월이 흘러갔다. 1/4의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잠도 휴식이고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낮잠도 자고, 늦잠도 즐기는 꿀잠의 세월을 보내는 이유다. 

뜰 앞에 가을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언제나처럼 맛깔난 신선한 맛이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었고, 이 느낌을 무너트리는 방해꾼 하나 없는 조용한 산골이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한적한 산골에 나 홀로 앉아 있다. 세상 무슨 생각을 하든 건드림이 없는 공간이다. 고요한 산골짜기에 앉아 흔들림이 없는 앞산을 바라보고 있다. 너무나 홀가분 한 기분에 숨이 멎는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에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하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는 골짜기다. 새 한 마리 흔적이 없는 공간에 홀로 남겨진 나였다. 정신을 차리자 자그마한 도랑물 소리가 들려온다. 겨울이 깊어지는 소리였다. 


엊저녁에 아내와 소주 한 잔 나누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왜 이런 골짜기에 와서 살고 있을까? 내가 이런 곳에 와서 살게 될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치열한 삶의 현장, 많은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엔 거친 말과도 만나야 했다. 많은 삶 속엔 내색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다. 어떻게 할까? 울컥한 마음에 한 번 내지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음에 가슴으로 새기고 말았다. 긴 세월 그렇게 움츠리며 살아온 삶이었다. 엊저녁 아내에게 건넨 말은, 안락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십수 년을 찾아 나섰던 수석  한점

홀로 앉아 고요함을 찾은 공간, 적어도 20여 년은 찾아 나섰던 공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나만의 생각과 행동으로 내 삶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그리워서였다. 시골 아침의 고요 속엔 편안함이 있고, 편안함 속에 어느 순간 내가 있었다. 시골로 자리를 옮겨 몇 년 지나는 동안 삶의 변화였다.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의 부족함을 늘 아쉬워하는 고요한 새벽, 모든 것이 안락하다. 


우선은 마음이 편안해졌고 모든 것이 고요한 상태다. 늦잠을 방해한다는 이웃집 닭소리가 한없이 한가롭고, 처마 밑에 찾아오는 참새가 반가워진다. 뜰앞 손녀의 블루베리를 따 먹는 산까치가 오지 않아 궁금하다. 도랑물 소리가 쇠잔 해저 돌아 올 계절이 기다려진다. 앞 산 나무숲을 뚫고 나온 햇살이 평화롭고, 잔디밭에 내린 서리가 눈부시다. 서리 녹은 물방울에 내린 햇살이 아름답다. 대지를 밀고 나온 새싹이 대견하고, 푸름을 자랑하는 녹음이 성스럽다. 한잔의 커피를 끼고 앉은 아침이 해맑은 하루를 던져준다. 자연과의 어울림 그렇게 평화롭다. 혼자인 공간에 앉아 외롭지 않은 생각을 하는 이유이다.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수에서

다시 떠 오르는 생각, 삶이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나의 삶, 삶이란 늘 하나의 놀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하루를 살고, 일 년을 살며 평생을 산다는 것은 어느 공간에서 어떤 놀이를 택해, 어떻게 함께하느냐가 삶을 결정해 준다는 생각이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운동을 하면서 편안함을 찾고, 돈을 버는 사람은 돈을 벌며 사는 즐거움을 찾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면서 하루의 평안함과 즐거움으로 살아간다. 낚시를 하는 사람, 산을 오르는 사람 등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편안함을 주는 공간에서 나만의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또, 어떤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즐거운 놀이를 위해 많은 것을 찝쩍거렸다. 기본적인 삶을 위한 몸부림을 치기도 했지만, 나름의 즐거움을 위해 부지런을 떨기도 했다. 

수채화, 파도와 바위

수석 수집을 위해 산천을 십수 년간 헤맸고, 낚시에 빠져 수많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마라톤의 마력에 빠져보기도 했고, 마력을 지닌 드럼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었다.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중에 하나, 수없이 떠난 국내여행과 배낭여행이었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미 등 수십 개국을 돌아다닌 배낭여행은 삶의 즐거움 중에 으뜸이었다. 음악과 미술에 끝없는 도전을 해 봤고, 수없이 많은 도전 속에 즐거움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아직도 진행 중인 많은 도전의 연속이지만, 미숙한 글쓰기 도전이 남아 있다. 어렵게 시작한 글쓰기가 쉽지 않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어느 도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과 동시에 희열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남 사천 바닷가 풍경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상처 없는 안락한 평화를 주고 고요함을 준다. 오늘은 어떤 놀이를 하면서 즐거움을 찾아볼까? 우선은 운동으로 몸을 깨워야 하고, 잠깐이라도 찾아온 햇살을 즐겨야 한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맑은 햇살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다. 앞뜰에 찾은 햇살도, 창문을 넘은 햇살도 만나봐야 한다. 얼마나 따스하고 푸근한지 궁금해서다. 일렁이는 앞산을 봐주기도 해야 한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가 외로워할지 몰라서다. 찾아온 햇살만으로는 썰렁한 앞산이다. 가끔 울어주는 닭소리도 들어주어야 하고, 찾아온 산새 소리도 들어주어야 한다. 골짜기 식구들과 함께 하는 새벽은 조용하기만 하다. 서로 보듬어 주는 골짜기 식구들과 이야기가 끝나면,  오늘은 어떤 글을 쓰며 즐겨 볼까 고민해 보는 새벽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 길은 전원의 단풍놀이였고, 운동은 덤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