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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26. 2021

운동 길은 전원의 단풍놀이였고, 운동은 덤이었다.

(자연에 눈물 흘리다, 단풍나무)

오래전부터 아침 운동을 해왔다. 작은 소도시에서 살았을 무렵의 기억이다. 운동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아침마다 논둑길을 뛰기로 했다. 논둑길을 뛰는 일, 불편한 일이 참 많았다. 논길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일하는 농부들 눈치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운동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조금 멀어도 길이 평평한 길, 호젓한 산길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뛰고 난 후의 기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통쾌함은 잊을 수가 없었다. 운동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된 계기였다. 운동을 시작하고 그만둘 수 없는 세월이었다. 운동의 시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니 꽤 오랜 세월, 40여 년 하고 있는 중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체육관으로 간다. 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하고 샤워장을 들러 집으로 온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수십 년 해온 일과였는데, 시골집으로 터전을 옮기고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운동할 수 있는 장소 때문이다. 할 수 없이 10여 km 떨어진 도시로 나가야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가는 중요한 일과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는 일과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뭔가를 빼놓은 듯한 기분이다. 운동에 중독이 된 듯이 온몸 구석구석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새벽에 눈을 떴다.  

오늘도 굴뚝에선 연기가 난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날씨가 제법 서늘해졌다. 언제나 운동길은 망설여진다.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고 정신을 차렸다. 앞산을 붉게 물들인 가을이 고맙기도 하다. 앞산의 노란 낙엽송이 눈을 번쩍 뜨이게 했기 때문이다.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한참을 바라보다 운동길에 나서기로 했다. 운전을 하고 나서는 동네길, 길가에 있는 배추밭이 심상치 않다. 분수없이 내리던 가을비가 배추를 주저앉히고 말았다. 곳곳에 누런 배추가 밭고랑에 주저앉아 심통을 부리고 있다. 농부의 가슴을 찢어 놓는 울부짖음이다. 얼른 눈을 돌려 내려가는 시골길, 지난해에 국화를 심었던 밭이 보인다. 시골집을 선택하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국화마을이었다.


시골집을 들어오는 입구에는 '시 지정 생태마을'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국화가 가득했었다. 생태마을로 지정되어 가축사육농가가 전무하고, 길가에는 노랗고 붉은 국화가 가득했었다. 길가에 열을 지어 국화가 자랐고, 근처 밭에도 국화가 가득했었다. 언제나 즐거움을 주던 국화밭이 올 들어 시들해졌다. 서운함을 뒤로하고 들어선 큰길, 역시 메타쉐콰이어가 힘을 준다. 단풍으로 물든 메타쉐콰이어가 두줄로 서 있다. 거기에 안개가 드리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다. 삶을 위한 긴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얼른 행렬에 합세해 열을 맞춰본다.  가끔 만나는 길가 은행나무는 여전히 싱싱하다. 운동하러 나선 길이 단풍 나들이를 하는 길이다.

하늘에서 노란 물이 떨어진다.

운동을 하며 창문을 통해 보는 세상, 노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도시에 안락함과 푸르름을 많은 나무가 주고 있다.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가 여름을 빛내 주었다. 하얀 꽃으로 밝혀주던 가로수, 곳곳엔 가을을 노래하는 은행나무가 버티고 있다. 가을 따라 맑은 노랑으로 계절을 노래한다. 샛노란 색이 얼마나 맑은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아침이다. 노란 은행잎이 한들거리며 햇살에 반짝인다. 얇은 잎을 통과한 햇살에 속살을 드러낸다. 하얀 실핏줄이 보이도록 연약한 잎, 눈길을 둘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저렇게도 아름다운 잎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서두르는 가을빛을 미워지기도 하는 아침이다. 먼 산으로 눈을 두었다. 그곳에도 가을은 가득히 왔다. 


멀리 보이는 앞산, 낙엽송이 한없이 아름답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산이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무심하게 살아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오우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은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 은행나무 잎이 떨어진다. 연한 노랑으로 물든 은행나무 잎이 흩날린다. 가을을 빛낸 잎들이 대지의 부름을 받아야 했다. 노랗게 물들인 대지위에 맑은 햇살이 떨어졌다. 노랑물이 튀어 오르는 대지엔 아름다움만 남아 있다. 어떤 나뭇잎도 흉내 낼 수 없는 계절의 선물이다. 

아름다운 단풍잎, 아직도 건재하다.

연약함에 아름다움이 깃든 은행나무 잎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차장이 붐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큰길로 접어들자 많은 차량들이 아직도 줄을 섰다. 가까스로 끼어들어 비로소 산길로 들어섰다. 커다란 산을 뚫어 만든 길이다. 산길에는 갖가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들어서 있다. 그중엔 커다란 낙엽송도 있고 오리나무도 있다. 요즈음 낙엽송이 아름다운 색을 발하고 있다. 오리나무도 뒤질세라 노랗게 물을 들였다. 시샘하듯이 갖가지 색깔을 품은 산은 아름다워 눈을 둘 곳이 없다. 눈을 산으로 돌리는 사이, 숨이 멎었다. 갖가지 색으로 물든 산으로 햇살이 내려온 것이다. 언제나 봐도 환장할 정도로 예쁜 햇살이다.


단풍이 저렇게도 예쁠 수가 있구나! 옆에 서 있는 나무는 단풍나무인가 보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에 단풍나무가 간주를 넣어 준다. 오리나무도 색을 발한다. 어울리지 않을 합창소리가 어느새 멋진 조합을 이룬다. 할 수 없이 차를 몰아 옆길에 멈추고 말았다. 곳곳에 꽃을 피운 단풍나무가 갖가지 색으로 물들였다. 저렇게 많은 색이 있을 수도 있구나! 자연의 팔레트에는 여러 색을 갖추고 있나 보다. 내 팔레트엔 고작 30여 가지 색뿐이다. 저렇게도 다양한 색상을 준비하고 있는가 보다! 다양한 색상으로 물들인 단풍은 같은 색이 없다. 할 수 없이 휴대폰을 들고 나섰다. 언제나 생각은 똑같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가슴에 담은 풍경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알고도 또 알지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곳곳에 단풍 든 낙엽송이다.

노랗게 물든 산을 찍고, 온갖 색으로 물든 단풍나무를 찍는다. 사진이 잘 찍힌다는 아이폰이다. 얼마나 잘 찍을 수 있는지 열심히 촬영한다. 반짝이는 햇살이 왔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있고, 조금은 덜 진한 단풍나무도 있다. 주황색으로 물든 단풍나무가 반짝인다. 그냥 지날 수 없다. 멀리서 낙엽송이 바람에 흔들린다. 노란 오리나무도 손을 흔든다. 한참 동안 단풍놀이를 하고 차에 올랐다. 오는 길에 보이는 단풍 색깔에 가슴이 저려온다. 저렇게도 자연은 처절한 색을 준비하고 있구나! 가슴에 가득 담고 돌아오는 길, 이번에는 메타쉐콰이어가 발길을 잡는다. 주황색으로 물든 나무가 길가에 열을 지어 서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메타쉐콰이어 뒤, 낙엽송이 물들었다.

길옆에 차를 세워야 했다. 조심스레 휴대폰을 내밀어 사진을 찍는다. 이런 광경을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멀리 들판은 휑하니 비어있다. 가을이 깊어졌다는 뜻 이리라. 먼 산에서 낙엽송이 햇살에 반짝인다. 온 산이 노랑으로 가득 덮었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아침, 시원한 바람이 찾아왔다. 한참을 서성이는 길가엔 해가 중천으로 떠 올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보다. 서둘러 차를 몰고 들어 온 시골길, 골짜기 속 시골집 부근에도 노랑으로 물들었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어진 까닭이다. 아침에 출발한 운동길이 아니라 단풍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러 떠난 운동은 덤이 되었다. 자연이 이렇게도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가을날이다. 운동은 덤이었고, 단풍놀이가 전부였던 아침 운동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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