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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18. 2021

겨울비 내리는 골짜기, 생각을 멈추었다.

(비 오는 골짜기 모습, 겨울비와의 만남)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던 이웃집 닭도 비 오는 걸 알았나 보다. 날개를 접었는지 입을 다물었고, 가끔 짖어대던 동네 지킴이도 놀 친구가 없는지 조용하다. 추근대는 겨울 빗소리에 골짜기가 모두 잠들고 말았다. 가을을 아쉬워하는 앞산 언덕배기 낙엽만 겨울비를 맞으며 소리 낼뿐이다. 가끔 찾아오는 작은 바람이 이웃집 굴뚝에 연기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골짜기 풍경이다. 오늘은 새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웃들도 어디를 갔는지 인적마저 끊긴 한적한 모습에 갑자기 인기척 소리가 난다. 가끔 찾아오는 택배 기사가 적막한 골짜기 그림 속을 거니는 풍경이 전부다.


작년 이맘때쯤이면 가끔 찾아오는 눈발이 겨울 풍경을 빛내 주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눈이 골짜기를 수북이 덮어 겨울임을 알려주는 곳이었다. 오가는 차량이야 불편하지만 겨울 속 시골이야 눈이 수북이 쌓여야 제격 아니던가? 눈을 치우는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푹신한 눈밭을 거니는 맛이야 더할 나위 없는 추억 속 기억이다. 작은 눈사람 둘을 만들어 대문 앞에 세워 놓았다. 찾아온 햇살이 심술을 부려 눈사람은 눈물을 철철 흘리기도 했었다. 올해는 눈 같은 눈이 오지 않는다. 초겨울에 찔끔 내린 눈이 전부였고 도대체 눈이 오지 않는 겨울이다. 참다못한 겨울비가 겨울을 비웃듯이 내리는 시골집, 추근대는 빗줄기가 초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가을을 빛내주던 국화밭에도 겨울은 왔다.

앞산엔 우두커니 서 있는 낙엽송이 빗물에 온 몸을 적셨다. 후줄근하게 젖은 옷이 무거웠는지 골 부리듯 말이 없다. 가끔 바람이라도 찾아와야 말을 건네고, 햇살이라도 넘어와야 즐거운 하루다. 구중중한 겨울비만 찾는 하루가 심통이 났는가 보다. 푸르른 소나무는 아직도 계절을 잊은 듯이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골부리는 낙엽송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수북이 대지를 덮은 낙엽, 찾아온 겨울비에 흠뻑 젖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 도랑은 가느다란 물줄기로 여전히 낭랑한 목청을 유지하고 있다. 도랑임을 알려주는 물줄기가 끝없이 옹알거림에 다정하기만 하다.


누렇게 물든 잔디밭에 내린 겨울비, 누런 잎이 힘겨운가 보다. 묵직한 잎을 늘어뜨리며 힘겹게 몸을 가누고 있다. 초겨울에 딱 한번 눈을 만났던 장독대에도 작은 빗줄기는 투덕거린다. 작은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떨어지고, 다시 튀어 올라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으로 떨어진 물방울이 어디로 갈지 몰라 길을 헤매고 있다. 할 수 없이 모여든 물줄기는 찾아온 겨울을 몰라보고 있다. 하얀 얼음이어야 하는 맑은 물방울들이 모여 하늘을 가득 담고 있다. 하얀 눈이 쌓여 대관령을 방불케 하던 앞 산엔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겨울비를 따라온 안개

하얀 눈이 듬뿍 내려와 온 산을 덮었었다. 갈길을 잃은 산 짐승들이 헤매던 산 골짜기였다. 고라니가 살 길을 찾아 울부짖고, 하얀 토끼가 오고 가던 산 골짜기 모습이었다. 친구와 어울려 토기 사냥을 나섰던 골짜기가 있었다. 왜 토끼는 오가는 길로만 다닐까? 길이 아닌 곳으로 다니면 사람들이 놓은 올가미에 걸리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토끼는 머리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토끼가 오가는 길이 훤하게 보인다. 발자국이 뚜렷하니 그곳에 올가미를 놔야만 한다. 어린것들에게 토끼가 잡힐리는 만무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그 눈이 오지 않는다.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있어야 할 산등성이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갑자기 낙엽송 위로도 물안개가 찾아왔다. 혹시 햇살이 찾아 오려나 기대하던 생각이 훅하고 달아났다. 아직도 산새들은 기척이 없다. 고라니도 간 곳이 없고, 가끔 찾아온다는 산돼지도 볼 수 없는 골짜기이다. 자그맣게 들리는 도랑물 소기가 전부인 골짜기, 홀로 앉아 마냥 평온함을 만나고 있다. 초겨울에 하얀 눈을 만났던 몇 점의 수석, 겨울 속을 찾은 비에 흠뻑 젖었다. 수석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산수 경석이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능선 능선마다 산줄기를 드러냈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수석의 본모습을 겨울비 덕분에 만나게 되었다.

겨울비를 맞은 수석 한점

시골에 사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수석 몇 점이다. 아끼던 수석 몇 점을 밖으로 내놓으면서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었지만, 기우였고 부질없었던 생각이 부끄럽기까지 한 시골이다. 누구 하나 기웃거림이 없고, 전혀 염려할 것이 없는 시골 인심이다. 대문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고, 대문이 있어도 여기가 대문이라는 것만 알려줄 뿐이다. 밖에서 열어도 되는 대문, 항상 열어 놓고 다니는 대문, 다만 경계만을 표시하는 것이 대문의 역할임을 알게 한 시골이다. 아직도 추근대는 겨울비는 내리고 있다. 앞산 식구들은 아직도 움직임이 없다. 고요만이 골짜기를 오고 가는 한적함이 가득 고였다.


겨울이 되면 추위를 달래려는 소리가 가득했었다.  장작을 패는 소리가 정겨웠던 이웃집, 나무를 구하기 어렵다며 기름보일러를 놓았다. 내심으론 아쉬움을 주기도 했었다. 겨울이 오면 나무 자르는 톱 소리, 장작 패는 소리가 정겨웠기 때문이다. 오래 전의 추억을 불러주는 그리운 소리였다. 하지만 벽난로  연기가 있고, 먼 이웃 군불 지피는 연기가 있어 다행스럽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모습이 정겹고, 가끔 찾아오는 장작 타는 냄새는 잊지 못할 추억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웃집 닭이 지루함을 참지 못했나 보다. 덩달아 울어주는 닭소리가 들리는 골짜기, 여기가 시골임을 알려주는 닭소리다. 동네 지킴이도 짖어댈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다. 

저녁임을 알려주는 굴뚝 연기

잔잔한 커피 향이 온 집을 채웠다. 일층에서 넘친 향이 이층으로 올라왔다. 순식간에 구부러진 계단을 냉큼 올라서고 말았다. 냉랭한 겨울을 한 껏 밀어내고 만 커피 향이 이층을 침범한 것이다. 가끔 넘겨지는 책장 소리와 어울리는 커피 향,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시골집의 향기다. 지나온 날들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겨울비, 아직도 골짜기는 조용하다. 이따금 울어주는 닭 울음소리가 전부인 골짜기엔 숨이 멎을 듯한 고요만이 가득하다. 골짜기엔 생각 없는 무단 침입자가 없기 때문이다. 잔잔히 빗소리만 속삭이는 골짜기는 아직도 정지되어 있다. 잠잠한 고요만이 생각을 깨워주는 겨울 골짜기의 잔잔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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