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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21. 2021

하얀 눈이 골짜기에도 내려왔다.

(눈 내리는 골짜기)

골짜기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창문을 열자 많지 않지만 하얀 눈이 내린 것이다. 영하 14도까지 내려갔던 골짜기를 하얀 눈이 토닥이고 있다. 대지에 내려앉아 찾아오는 바람만 기다리던 낙엽도 하얀 눈이 반가운가 보다. 하얀 눈 듬뿍 쓰고 찾아온 초겨울을 즐기고 있다. 가을까지 의스대다 겨울바람에 기진맥진하던 국화, 하얀 눈이 내려 겨울임을 알려주고 있다. 길가에도 하얀 눈이 가득하다. 오가는 사람은 불편하지만 보기엔 좋아 보이는 눈이다. 서둘러 눈을 쓸어내렸는데 눈이 벌써 없어졌다. 젊은 이웃이 후딱 날려버린 것이 아닌가? 쌀짝 내린 눈을 신병기(?)로 훌쩍 날려버린 것이다. 싸리비가 아닌 낙엽을 쓰는 송풍기로 신세대임을 알려준다.


눈을 쓸어내기에는 늘 싸리비를 이용했었다. 낙엽을 쓸고 눈을 치우기 위해선 유용하기 때문이다. 효율과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해 제설용 넉가래를 이용하게 되었지만, 싸리비가 대세였다. 뒷산 양지바른 곳에 자란 싸리나무, 늘 아버지의 싸리비감이었다. 싸리나무를 잘라 말리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새끼 끈으로 묶어 냈다. 튼튼하고도 유용한 싸리비는 일 년 동안 써야 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마당을 쓸고 눈을 치워야 하며,  곡식을 타작하고 거친 검불을 쓸어내야 했다. 시골집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이었다.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아버지의 일 년 중 중요한 행사였다. 

시골집으로 이사하면서 싸리비를 두어 자루 마련했다. 낙엽도 쓸어내고 눈도 쓸기 위함이다. 골짜기에 있는 집엔 늘 쓸어내야 하는 것이 많아서다. 일 년 내내 낙엽이 있고 겨울이면 눈이 온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자연의 흔적들, 버겁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해내는 일이다. 낙엽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눈을 만날 수 있음에 고마워한다. 싸리비를 준비하고 일 년간 동거를 한다. 한해의 눈과 낙엽을 쓸고 나면 싸리비도 견딜 수가 없나 보다. 흙이 아닌 시멘트 바닥에 닳고 닳아 일 년이면 몽당 빗자루가 되었다. 흙이 아닌 시멘트 바닥을 쓸어내니 억센 싸리비도 배겨 날 수가 없나 보다. 


뒷산 산 말랭이 양지바른 곳엔 늘 싸리나무가 자랐다. 봄이면 불그레한 꽃을 피우는 싸리나무, 알아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있었다. 싸리나무를 이용한 싸리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꽃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음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는가 보다. 오랜 전, 산림녹화를 위해 씨를 받아 학교에 내야 했던 싸리나무였다. 세상이 알았는지 고속도로 주변에도 꽃을 피웠다. 산비탈 무너짐을 방지하는 것도 되겠지만 꽃의 아름다움이 간택의 이유라는 생각이다. 싸리비를 만들기 유용했던 싸리나무,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니 싸리비가 아닐까? 언젠가 상점에서 만났던 싸리비는 허울 좋은 중국산임에 씁쓸하기도 했었다. 

단단히 무장을 하고 눈이 내린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심심해하던 산 식구가 벌써 발걸음을 했다. 밤새 내린 눈이 반가왔나 보다. 전혀 볼 수 없었던 발걸음이 하얀 눈 때문에 들키고 말았다. 길게 늘어선 발자국이 서둘러 다녀갔음을 알려준다. 무엇이 그리 바쁘게 했을까? 혹시, 주인장 겁이 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산 식구들에게 언제나 모질게 대했음을 후회하며 앞산으로 눈이 간다. 먼 산에도 하얀 눈이 듬성듬성 내려왔다. 많은 눈이 오면 대관령을 방불케 하는 앞산이 어쩐지 어설프게 보인다.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이야 초가지붕만 한 그림이 있을까? 오래 전의 시골집이 그려지는 겨울이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초가지붕에 눈이 내렸다. 맑은 수채화를 방불케 하는 초가지붕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마치 눈을 뭉쳐놓은 듯이 포근함을 안고 있다. 뒤로는 수십 년 됨직한 감나무가 붉은 감을 달고 있다. 소박한 초가지붕에 내린 하얀 눈이 탐스럽다. 추위와는 상관없는 푸근함에 탐스럽기도 하다. 어느 누구 손을 탈까 지켜보고 있는 초가지붕, 자그마한 산새가 찾아왔다. 앉을까 말까를 망설이던 산새, 엄두가 나지 않은가 보다. 얼른 날라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산새가 고맙기만 하다. 하나의 흐트러짐이 없는 온전한 초가지붕을 간직하고 싶어서다. 뒤뜰 감나무가 바람 그네를 탄다.  

기나긴 여름 소나기를 맞고 가을을 지난 감나무였다. 푸르른 잎에 노랑빛이 감돌더니 붉은색이 찾아왔다. 가을이 왔다는 소식이다. 잎이 서서히 주황빛으로 물들어 갈 무렵에 가까스로 매달린 감도 익어가기 시작했다. 푸르던 감이 부쩍 몸집을 불렸고 하나둘씩 주황빛을 발했다. 가을이 다 갈 무렵, 감나무 잎이 떠나가고 서서히 감이 더 익어갔다. 주인장의 배려가 남긴 까치밥은 언제나 외로웠다. 푸르른 하늘에 여남은 개가 남아 있음이 서러워서다. 가끔 찾아오는 바람에 바람 그네도 타고, 외로울 즈음에 손님이 찾아왔다. 지나던 까치가 그냥 갈 수 없었나 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갈 수 없다는 듯이 까치가 찾은 것이다. 주인장의 배려로 추운 겨울에 먹거리를 만난 까치가 신이 났다. 겨울이 한껏 익어가는 시골의 풍경이었다. 눈이 내린 잔디밭 가를 내려섰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산수유 색깔이 빨간빛을 발한다. 여름을 나고 가을을 거쳐 겨울을 만난 산수유다. 처절하도록 붉게 익은 산수유가 식구들 중 으뜸임을 보여준다. 기가 죽은 국화가 그렇고, 잎을 늘어뜨린 구절초가 기를 잃었다. 부동자세로 움직임이 없는 천년 주목이 든든하지만, 붉은 산수유가 주목의 무심함 넘어선다. 하얀 눈을 안은 주목이 집을 지켜주고, 온몸으로 눈을 맞은 수석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하얀 눈이 내린 골짜기의 아침은 아직도 남은 식구들이 북적대고 있다. 영하 14도가 되었어도 떠들썩하고, 하얀 눈이 와도 흔들림이 없는 골짜기 속의 작은 집이다. 하루가 열리고 햇살이 넘어오면서 골짜기의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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