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Dec 27. 2021

체감온도 영하 20도, 전원주택 골짜기가 얼어붙었다.

(시골사람 이야기, 도랑물도 얼었다.)

창문을 열자 매서운 바람이 훅 넘어온다. 올 들어 최고로 춥다는 겨울날의 골짜기, 그야말로 최강 한파다. 눈이라도 왔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마음마저 썰렁하다. 엊저녁에 오다 만 눈발만 어슬렁거리는 잔디밭, 하얗게 얼어붙은 잔디 잎이 바르르 떨고 있다. 어제까지도 든든하게 버티던 잔디가 바짝 엎드려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골짜기의 아침이다. 이웃집 닭도 입이 얼어붙었나 기척이 없다. 앞산 식구들도 얼쩡거림이 없다. 여전히 작은 도랑물 소리만 살아있음을 전해준다. 오래전, 한기가 한껏 달아오르던 초가집이 있었다. 한참 후에야 스레트라는 괴물이 얹히기도 했지만 아직은 바람이 마음대로 오고 가는 시골집이다.


겨울 속에 갇혀버린 시골 동네엔 인기척이 없다. 가끔 오가는 찬바람만이 뒤뜰 감나무를 건드리나 보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칼바람 소리가 전해주는 소식이다. 마음대로 찬 바람이 오가는 방문이 스르륵 열린다. 어느새 군불을 지피신 어머니, 하얀 수건을 머리에 질끈 두르셨다. 하얀 버선이지만 때가 묻어 하얗지 않은 버선발이  먼저 방문을 들어선다. 두 손엔 붉은 불덩이가 수북하게 쌓인 화로가 들려 있다. 후끈한 화기가 방안을 확 돈다. 방안에 한기가 가득한 새벽녘, 식구들 따스함을 위해 군불을 지피신 것이다. 아직 펼쳐진 이불자락을 한 발로 걷고 얼른 화롯불을 내려놓으신다. 갑자기 방 안이 환해지면서 온기가 가득해진다.

잔디밭에 내린 눈

시골집의 새벽은 한없이 더 춥다. 허름한 솜이불로 얼굴을 맞대고 잠든 새벽, 찬바람이 먼저 일어났다. 얼굴을 내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쌩하고 돌아가는 찬바람에 이불속으로 얼른 밀어 넣고 만다. 방안의 넉넉한 한기는 머리맡 물그릇이 먼저 알았다. 물과 한 덩어리 된 물그릇이 몸서릴 친다. 가끔 불어오는 찬바람에 문풍지가 바르르 떠는 아침이다. 찬 공기를 데우기 위해 어머니가 나선 것이다. 썰렁한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한기 가득한 방을 데워야 하고 찬물을 데워야 식구들이 씻을 수 있다. 불을 지피고 남은 불덩이로 화롯불을 만드신 것이다.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아침, 시골 아침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서둘러 발길을 돌린 어머니는 부엌으로 내닫는다. 남은 아침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솥뚜껑에서 부르르 떨며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척' 하며 김이 빠지며 솥뚜껑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검은 솥 주변으로 긴 눈물이 흘러내릴 때쯤, 어머니는 된장을 끓여내야 했다. 밥이 구수하게 뜸 들도록 아궁이 불을 잠시 줄여줘야 한다. 아궁이에 남은 불 등걸을 긁어모았다. 된장을 끓이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검은 뚝배기에 된장을 풀고 파가 곁들여진 양념과 깍두기 그리고 두부를 넣는다. 긁어낸 아궁이 불 위에 올려진 뚝배기, 신이 난 불 등걸은 맛있는 된장을 끓여낸다. 가끔 센 불에 튀어 오른 된장이 붉은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구수하게 타오르는 된장 냄새가 시골 아침을 감싼다. 환장할 어머니의 맛을 주는 된장 맛이었다. 된장 뚝배기는 안방 화롯불 위로 공수되었다.

소나무와 반송의 자태

역시 멋진 맛을 주는 된장이 시골밥상의 주인이다. 방 한가운데 부글부글 끓는 된장뚝배기가 자리 잡았다. 아침부터 환장할 맛을 주는 된장냄새가 진동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된장 뚝배기, 가끔 두부가 헤엄을 치고 덩달아 깍두기 조각이 몸을 비튼다. 붉은 고춧가루가 솟아오를 때 푸른 파조각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진저리 나게 맛있는 된장 뚝배기가 춤을 추는 시골 아침의 모습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된장을 끓이던 어머니도, 아궁이도 그리고 구수한 된장 냄새도 없다. 허연 머릿결에 흰 수건 질끈 두른 어머니 그리고 덩달아 화끈하게 달구어주던 아궁이와 된장도 만날 수 없다. 그리움과 추억이 담긴 겨울 아침 풍경이었다. 눈길이 간 곳은 강력한 추위가 찾아온 잔디밭이다. 거기엔 아직도 남은 정원 식구들이 있다. 


겨울 뜨락이 허전할까 남겨둔 국화 줄기가 화단을 지키고 있다. 노랑과 주황빛으로 꽃을 피웠었다. 한 가득 꽃을 이고 의젓하게 화단을 지켜주던 국화였다. 초겨울 찬서리에도 끄떡없었다. 올 테면 와보라는 국화의 당당함에 당황하기도 했었다. 계절의 순환에 어쩔 수 없는 국화의 순응이다. 어느새 꽃을 지운 줄기가 잎을 접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국화는 주인장의 처분만 바랬었다. 초겨울의 당당함까지만 보여주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다. 골짜기 썰렁함에 지친 국화가 부르르 뭄을 떤다. 가을을 빛내주던 국화, 허전함을 핑계 삼아 두었음이 후회스럽다. 국화의 당당함이 지워질까 두려워서다. 잔디밭 가에 몇 그루 반송 곁엔 구절초가 가득했었다.

아직도 갈갈대는 도랑물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시골집을 지켜주던 구절초다. 반송이 외로워할까 초겨울까지 두기로 했었다. 당당하던 구절초의 모습은 겨울이 앗아갔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초겨울쯤에 정리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위풍당당하던 구절초의 모습은 간데없고 앙상한 가지만 겨울과 씨름하고 있다. 온전히 견디려는 몸부림이 안타까워 눈길을 거두었다. 자연엔 때가 있어 거역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아침이다. 시골집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준 수석, 강력한 한파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며칠 전까지도 의젓했던 수석도 골짜기 추위를 감당할 수 없는가 보다. 엊저녁에 내린 눈 발 몇 개가 앉아 겨울임을 보여주고 있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찬바람이 쌩하고 지나간다. 언제 떨어졌는지 주황빛 소나무 잎이 뒤 따라간다. 길 위의 하얀 먼지도 뒤 따라나선다. 앞 산 소나무  솔잎이 떨어지며 그 자리를 메워준다. 바람이 왔는지 갔는지 흔적이 없다. 가을녁에 가득하던 낙엽은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도랑에도 엎드렸고 길가에도 바짝 움츠리고 있다. 잔인한 겨울이 꽉 붙들어 놓았나 보다. 늦게 찾아온 한 겨울이 골짜기를 정지시켜 놓았다. 앞산의 나무들도 움직임이 없고, 정원 식구들도 꼼짝하지 않는 산골짜기의 아침이다. 하얀 눈이라도 내렸으면 하는 골짜기에 겨울이 가득 내려온 아침은 영하 16도다. 얼른 햇살이 산을 넘어 골짜기 식구들을 구원해 주었으면 하는 아침이다. 골짜기의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는 되는 듯하니, 역시 겨울은 추운 계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얀 눈이 골짜기에도 내려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