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의 추억을 찾아 느린 한걸음

(뒷동산의 작은 산행, 남해 다랭이 마을 )

by 바람마냥

바깥세상 궁금한 가재 뒤뚱거리고, 초봄 머위 잎이 우거진 작은 도랑을 건너야 오를 수 있었던 뒷동산, 할미꽃 삐죽이 나오는 봄이면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연초록 잔치하는 5월이면 하얀 찔레꽃이 피어나고, 덩달아 피어오른 조팝나무와 잘 어우러지는 세상 아름다운 꽃동산이었다. 6월이 되어 작은 더위에 아카시 향 쏟아내면, 밤나무는 노르스름한 꽃술을 이고 다가 온 여름을 축복했었다.


여름을 달군 대지의 열기가 사그라지면, 초봄에 스며 나온 연초록 찔레 순은 어느덧 단단한 나무로 무장을 하고 버거운 세상 바람과 맞섰다. 여름내 꽃술을 쏟아낸 밤꽃은 자그마한 밤송이를 달고, 밀려오는 가을바람에 바람 그네 즐겼다. 가을 들녘 바람이 뒷동산에 찾게 되면, 앉은뱅이 도토리나무는 실한 열매를 달고 찾아오는 시골 아낙을 반겼다. 여름내 살 찌운 밤나무는 붉은 입술로 분장을 했고, 옹기종기 달린 보리똥이 가을 장식하던 그 추억의 뒷동산엔 겨울이면 하얀 눈 동산이 꿈속에 자리하는 뒷동산은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곳이었다.


추억과 그리움의 무대인 어린 시절 뒷동산, 긴긴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야 되돌아볼 수 있는 세월이 되었다. 삶의 버거움을 내려놓고, 새 삶을 살아보려는 골짜기에서 다시 찾고 싶은 뒷동산을 만났다. 나무가 있고 꽃이 있는 뒷동산에 추억을 심고 싶은 감사한 골짜기다. 다시 만난 뒷동산은 꿈속의 잠든 뒷동산과 함께 추억 속 뒷동산으로 자리하고 있어 스스럼없이 즐기는 즐거움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선다.

IMG_3725[1].JPG 손녀의 화단에 꽃이 피었고,

울을 벗어나면 가느다란 도랑이 옹알거리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그윽한 솔향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나도 모르게 바라보는 하늘은 봄이면 미처 자라지 못한 나뭇잎 때문에, 여름이면 여름 열기로 살이 찐 나뭇잎 때문에, 가을이면 연초록이 영근 나뭇잎 때문에 그리고 겨울이면 아낌없이 보여 주는 나무 본연의 모습 때문에 보임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색깔이 모두 달라 가슴속에 스밈이 다르니 삶을 즐기는 뒷동산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뒷동산의 추억에 휘감겨 뒷동산을 오른다.


봄철에 오르는 뒷동산은 애틋한 찔레순이 제일 먼저 반겨준다. 하얀 솜털이 묻은 작은 새싹이 올라왔다. 아침 이슬이 앉아 밝은 햇살을 맞이했다. 밝게 빛나는 새싹에 찾아온 바람, 바르르 떠는 새싹이 안쓰럽다. 앙증맞은 새싹들이 연초록으로 물들며 벌어지는 연초록의 잔치는 봄의 끝자락을 여간해서 놓아주지 않는다. 촉촉한 땅을 밀어내고 새싹이 나오면 따스한 봄바람이 보듬어 준다. 이슬이 내리고 햇살이 찾아오며 서서히 진푸름으로 물들어 봄은 점점 익어간다. 솔향기 그득한 소나무 숲 사이에 드리워진 밤나무에도 초록 물결이 바람 따라 일렁인다.


초봄에 수줍던 찔레순이 여름이 영글면서 하얀 꽃에 자리를 내어 주면, 소복한 찔레꽃이 눈부시도록 수를 놓고 하늘에 걸린 아카시꽃과 잘 어울린다. 따스한 봄볕 따라 피어나는 녹색의 향연을 즐기며 산길을 오르면 벌써 진홍빛 진달래는 파란 잎 뒤로 몸을 감추었고, 성급한 철쭉이 진분홍빛을 발하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린 시절 주전부리 삼아 먹던 진달래꽃, 거기엔 추억이 있었고 그리움이 녹아 있다. 친구와 어우러지며 산을 오르던 뒷동산이 그리운 이유이다. 한 아름 꺾어 오던 진달래와 찔레순,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다.

IMG_3721[1].JPG 뒤뜰엔 늦은 벚꽃이 피었다.

온도 차이로 이제야 피어나는 형형색색 벚꽃은 자라나는 위치와 온도에 따라 색이 다르다. 연한 분홍이 있는가 하면 진분홍도 있고, 허연 빛을 발하는 꽃이 있는가 하면 또 맑고도 하얀빛을 발하는 꽃이 있다. 하양이 모두 하양이 아니었다. 맑은 하양에 옥빛이 스민 하양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하양이 가득하다. 신비스러운 자연의 조화에 넋을 놓고 만다. 평지에서 볼 수 없는 벚꽃이 이제야 기지개를 켜며 산을 수놓고 있다. 신비한 자연의 조화에 놓았던 넋을 잡고 서서히 산등성이를 내딛는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도토리나무는 어느새 널따란 잎으로 치장을 했다. 서서히 봄이 깊어가는 산자락 모습이다. 숲 속을 비켜 자란 애기똥풀은 노란 꽃을 안고 하늘거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초록의 물결이 황홀한 뒷동산이다. 꽃과 바람이 어우러진 계절을 즐기는 사이, 군데군데 말라가는 앙상한 소나무가 눈에 보인다. 계절에 관계없이 푸르름을 자랑하던 소나무다. 언제나 꿋꿋하게 산을 지키던 소나무, 어쩐 일인지 힘을 잃고 서 있음이 안쓰럽다. 무지한 인간에게 시위하듯 버티고 서 있음이 미안스럽고도 안타깝다.


한참을 올라 중간 정상에 오르면 포효하는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골짜기마다 자리 잡은 작은 마을, 삶의 이야기가 아직도 이어진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자식이 또 아이를 낳고 삶을 이어간다. 끊임없는 삶이 이어지며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행복이 있고 불행이 있으며 갖가지 이야기가 이어지리라. 불어오는 산바람이 신선함을 더해주고, 곳곳에서 만난 푸름이 흥을 돋운다. 하늘 가득 담긴 꽃내음을 맞으며 계절에 감사해하는 뒷동산이다. 그리움이 담긴 추억을 주던 뒷동산에 오르는 날, 아름다운 뒷동산이 가까이 있음은 대단한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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