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화단)
지난해 봄, 아내와 함께 고창 청보리밭을 찾았었다. 파랗게 물든 푸름이 보고 싶어서다. 가끔 찾아가는 선운사가 있고 바다가 있는 곳, 거기엔 싱그러움이 있었다. 고즈넉한 선운사의 동백을 보고 절집을 나와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고창하면 풍천장어가 아니던가? 조용한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나온 화단에 눈이 멎었다. 노란 수선화가 꽃을 피워서다. 작은 밭에 한가득 꽃이 피었다. 아내가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린다. 노란 수선화 한 뿌리를 얻고 싶은 모양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수선화 주인을 찾으러 간 것이다.
수더분한 남자주인, 화단에 가득한 수선화 한 뿌리를 망설인다. 예쁜 꽃을 떠나보내기 아쉬웠나 보다. 간신히 두 뿌리를 얻어 손녀의 화단에 심었었다. 키는 크지 않지만 색깔이 고운 노란빛 수선화였다. 골짜기에 봄바람이 불어오더니, 어떻게 봄을 알고 파란 싹을 밀어냈었다. 엊저녁 내린 비에 마음이 동했는지 노란 꽃을 피운 것이다. 야, 저런 빛깔이 있었구나! 작은 잎을 가지고도 저렇게 노란빛을 낼 수 있다니. 손녀의 화단을 밝게 비추어주고 있음에 깜짝 놀란 3월이다. 자세히 보니 수선화 옆으로도 봄은 시끌벅적하다.
튤립이 푸름을 밀어냈고, 앙증맞은 앵초도 싹을 올려놓았다. 옆으론 금낭화가 촉을 보여주고 있다. 손녀의 화단에 봄은 성큼 와 있었다. 수선화가 두어 뿌리 더 나오고, 다시 튤립이 붉음에 노랑빛의 꽃을 피울 것이다. 탐스런 튤립이 꽃을 얹고, 여기에 분홍빛 앵초가 꽃을 피우면 화단은 한층 풍성해질 것이다. 봄이면 금낭화도 뒤지지 않는다. 푸르른 줄기를 길게 늘어뜨리고 주렁주렁 꽃을 달 것이다. 붉음에 하양이 섞인 며느리의 한이 서린 꽃, 누가 며느리밥풀 꽃이라 했던가! 금낭화의 전설은 손녀의 화단에 있다.
이웃집 화단에 금낭화가 환하게 피었었다. 언제 봐도 아름다움에 한 포기를 얻어볼까 망설이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부러워하며 바라보던 금낭화, 한 해가 지나고 깜짝 놀랐다. 이웃집과 마주한 우리 집 화단 바위틈에 금낭화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위틈에 금낭화가 자리 잡고 꽃을 피운 것이다. 어떻게 바위틈에 자리를 잡고 꽃을 피웠을까? 이웃집 금낭화가 우리 집으로 넘어온 사연이 궁금했던 금낭화다. 번식력이 화려한 금낭화는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자잘한 푸름을 밀어내며 힘을 내고 있다. 여기엔 또 하나 순진한 꽃이 있다.
손녀의 화단에 있어야 하는 패랭이 꽃이다. 샛빨강 물을 들인 패팽이 꽃, 봄이면 아내가 심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 뿌리 준비해 놓고 있다. 노란 수선화와 붉은 튤립이 꽃을 피우면, 분홍빛 앵초가 앙증스러운 꽃을 피운다. 여기에 비밀리에 숨어든 금낭화가 주렁주렁 꽃을 피우고, 붉은 패랭이 꽃이 어우러진다. 넉넉한 손녀의 화단이 완성되는가 했는데, 꺽다리 나리가 기다리고 있다. 한 구석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어느새 푸름을 밀어내고 있다. 가냘픈 줄기에 한껏 키를 불려 주황빛 꽃을 피운다. 지나는 가느다란 바람도 이기지 못하는 나리는 지난해 뒷동산에서 이식해 놓은 식구다. 손녀의 화단이 그득해질 무렵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황금낮 달맞이꽃이다. 노랗게 꽃을 피우며 화단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손녀의 화단은 언제나 화려하다. 혹독한 추위에도 꽃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을 지켜낸 생명들이 두터운 대지를 밀어내고 곳곳에서 수줍은 푸름을 보여주었다. 성질이 급한 수선화는 벌써 꽃을 피웠다. 작은 푸름이 서서히 몸집을 불리더니 꽃을 피워낸 것이다. 겨울에도 소홀이 할 수 없는 화단이다. 어둠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고, 어김없이 꽃을 피우려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따스한 바람 따라 존재감을 과시하는 화단이다. 화려한 꽃이 가득 메우면, 봄은 가득할 테고 멀리서 찾아온 손녀는 좋아하리라. 작은 물조리개로 물을 뿌리며, 할아버지 시골집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