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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29. 2022

겨울 밥상에서 사계절을 추억한다.

(겨울 골짜기 이야기, 텃밭이 길러 낸 맛)

아담한 골짜기에 찬 바람이 불고 있다. 하얀 눈이라도 와 주었으면 좋을 테지만 하늘은 꿈쩍도 않는다. 뿌연 하늘이 내려앉은 골짜기엔 정적만이 남아있다. 정적 속에 남아 있는 낙엽송, 푸름을 주던 기세는 간곳없이 차렷 자세 한 초등학생이다. 푸름의 기세는 어딜 두고 소나무도 핼쑥해져 추위를 맞고 있다. 끝없이 오가던 산새들도 간 곳이 없고, 간신히 산을 넘은 햇살뿐이다. 가끔 이층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가느다란 소리가 골짜기의 주인장이다. 한 해동안 먹거리를 주던 산골짜기도 여전히 말이 없다.


봄이면 나물을 주고, 여름엔 푸른 녹음을 주었다. 가을이면 영근 열매로 한해를 축복해 주었다. 일 년간 내 준 골짜기가 겨울엔 잠잠한가 했었데, 골짜기 흔적은 아직도 여전하다. 아내와 함께 앉은 밥상, 거기엔 골짜기의 진한 흔적이 남아있다. 새봄, 새싹이 돋아나면서 제일 먼저 홑잎나물을 만날 수 있었다. 가느다란 가지에 파릇한 연초록 순이 올라온다. 어린 새싹이 안쓰럽고 앙증맞아 한없이 망설인다. 고민 끝에 드문드문 솎아 얻은 홑잎 나물이다. 살짝 데쳐 참기름에 무쳐 먹는 맛, 표현이 불가능한 봄의 맛이다. 아껴 먹고 남은 홑잎 나물을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었나 보다. 아직도 파릇함이 가득한 홑잎 나물, 연초록 봄이 온듯했다. 향긋하면서도 보드라운 식감은 떨칠 수 없는 맛이다. 홑잎의 시절이 가고, 여름이 점점 익어 갈 무렵에 등장한 것이 고사리였다.

초봄에 얻은 홑잎나물

두터운 대지를 뚫고 올라온 고사리, 아침부터 맑은 이슬을 이고 있었다. 작은 바람에 바르르 떠는 모습이 앙증스러워 미안한 마음으로 고사리를 꺾었다. 솜털을 이고 있던 작은 고사리가 안쓰러워서다. 한 솥을 삶아 말려도 한 줌으로 줄어드는 고사리다. 아내와 함께 열심히 꺾는 고사리는 이유가 있다. 외손녀가 좋아하는 나물이기 때문이다. 어린것이 먹지 않을 것 같지만 고사리만 보면 언제나 싱글벙글한다. 고사리를 먹으러 시골 외갓집에 온단다. 고사리가 소중하지만 여름내 즐거움을 주던 드룹도 외면할 수 없다. 가시가 있고 덤불 속에 자라던 드룹도 겨울 밥상에 등장한다. 여름을 맛깔나게 장식했던 드룹이 겨울에도 등장한 것이다.

뒷동산 표, 고사리

고사리를 꺾고 나서 틈이 보일 여름날, 곳곳에 드룹이 자라났다. 덤불 속을 찾아들어 따낸 드룹,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고급 식재료였다. 땅 드룹이 있고 온실 드룹이 있지만, 산 드룹 맛에는 어림도 없다. 알싸하면서도 싱싱한 드룹은 아내가 좋아한다. 한 움큼 꺾어오면 얼굴이 환해진다. 귀한 드룹을 구해 여름 내 반찬을 했다. 찾아온 친구들 밥반찬이면 환장할 맛이란다. 겨울에 먹을 것을 대비해 장아찌를 해 놓았다. 살짝 데친 드룹을 달착지근한 간장에 조려 만든 드룹 장아찌, 맛을 보면 누구나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하얀 쌀밥 한 술에 따라 들어간 드룹 향에 숨이 멎고, 씹히는 식감에 또 한 번 숨이 멎는다. 겨울 밥상 두릅 장아찌에 입맛이 살아난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찾아 올 무렵에 작은 텃밭에 20여 포기 배추를 심었다. 텃밭에 심은 배추가 서서히 잎을 넓히더니 그예 고갱이를 안았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안으로 살이 찌고, 몸집을 불려 듬직한 모양이 되었다. 한참 몸집을 불려 나갈 무렵, 느닷없이 찬바람이 불어왔다. 배추는 웅크리며 몸을 낮추고 성장을 멈추었다. 한참을 웅크리고 있던 배추, 배추를 뽑아 따스한 지하실에 보관했다. 아내가 정성을 다해 신문지로 싼 후 챙겨 둔 것이다. 한 겨울이 온 날, 아내는 배추를 꺼내왔다. 겉껍질을 벗겨내고 배춧잎을 하나씩 벗겨낸다. 노랗게 살찐 고갱이가 싱그럽다. 한 줄기 떼어 씹는 맛은 고소함에 단맛까지 품고 있다. 맛깔나게 생긴 배추, 아내는 배추전을 하려는 모양이다.

배추전에 나타났다.

맑은 물에 밀가루를 섞었다. 노란 배춧잎을 밀가루에 묻혀 배추전을 했다. 노란 배춧잎이 노릇노릇한 옷을 입었다. 기름밭에 적당히 익은 배추전이 나타난 것이다. 하얀 밀가루 옷을 입고, 기름에 젖어 노릇한 옷을 해 입었다. 접시에 올려진 배추전 모양이 여유롭고도 의젓하다. 널따란 잎을 벌려 하얀 옷이 그럴싸하다. 여기에 텃밭산 청양 고추가 등장했다. 텃밭에서 자란 청양 고추, 시원한 매운맛이다. 아내가 여름내 따놓은 청양고추다.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은 간장에 배추전을 적시었다. 배추전이 입으로 향하는 순간, 고소함과 매콤함이 적당히 섞인 맛은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계절이 주고 간 맛이 겨울까지 남겨진 것이다.


여기엔 막걸리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적당히 숙성된 텁텁한 막걸리가 왔다. 막걸리 한 잔에 배추전이 어울렸다. 입안에서 만난 두 가지 향은 어쩔 줄을 모른다. 목을 넘고 남은 막걸리 향에 매움과 고소함이 만난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어울림에 부르르 몸을 떤다. 어릴 적 주전자가 그리운 막걸리다. 넘칠 듯 말듯한 주전자를 들고 걷던 논길이 생각난다. 왜 마셔야 하는 막걸리인지 몰랐다. 왜 어른들은 막걸리를 마셔야 하는가 이제야 알게 됐다. 이런 맛에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맛을 알았다. 계절이 주고 간 갖가지 맛이 가득한 계절, 겨울이다. 봄을 지나 여름과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골짜기가 아니었다.

상큼한 냉이도 있지요.

초겨울에 접어들어 겨울 냉이의 맛을 알았다. 이웃의 도움으로 알게 된 겨울 냉이 맛도 대단한 맛이다. 아내와 함께 캐 온 겨울 냉이가 가끔 등장한다. 상큼함에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겨울 냉이가 살아 날듯 푸릇하다. 뜨끈한 국으로 변신했고, 달큼한 무침으로도 등장했다. 잊을 수 없는 골짜기 맛을 품고 있다. 여기에 포기할 수 없는 밤밥이 등장했다. 가을을 흠뻑 안겨주던 빨간 알밤, 친구들에게도 보내준 산밤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지난한 계절을 이기고 가을에 결실을 보았다. 가끔 앞산에 올라 주워 모은 알밤이 하얀 쌀밥에 올라앉았다.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들어오는 맛, 부드러움에 달큼함에 멈출 수 없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환장할 맛이라는 앞산 표 밤이, 하얀 쌀밥에 가득 들어앉았다. 시골살이에서 얻을 수 있는 축복이기도 하다.


봄을 지나 여름을 견뎌냈고, 가을에 영글어 겨울을 맞이했다. 갖가지 골짜기가 길러낸 먹거리가 겨울 밥상을 살찌게 한다. 모든 것을 내준 자연의 고마움을 겨울 밥상에서 만난 것이다. 아무런 기억 없던 계절의 고마움이다. 감사한 골짜기의 삶은 겨울까지 이어지고 있다. 겨울 골짜기의 삶은 여전히 조용하다. 두런대던 나무도 말이 없고, 재잘대던 산새도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준비하는 계절 마중은 여전하다. 알지 못한 순간에 봄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멈춤이 없는 도랑은 봄을 노래할 테고, 양지쪽에 푸르름은 봄을 부르고 있다. 가끔 내린 눈은 산을 넘은 햇살에 눈을 흘긴다. 땅을 적시고 도랑물 되어 골짜기를 슬며시 녹이고 있다. 햇살이 더 익어 찬바람 산을 넘고, 따스함이 골을 찾아올 것이다. 두터운 겨울을 살아내고 맑은 봄을 기다리는 골짜기 이야기다. 겨울을 봄으로 안내하는 아내의 밥상에서 골짜기의 겨울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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