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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05. 2022

늙은 청춘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하루를 살아가는 지혜, 아프리카 나미브 듄 45 사막 여행)

뼛속까지 시골 촌사람에 보수적인 사람이다. 가능하면 오래된 것을 지키려 하고, 새로움에 늘 머뭇거림이 익숙하다. 어쩌다 나타나는 새로움엔 늘 불편해하며 외면하는 사람이다. 바람같이 나타나는 유명 연예인,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열광하는 드라마도 별 관심 없다. 나의 삶도 살기 버거운데, 남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왜 남의 삶에 그리도 열광하며 살아야 할까?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하면서도 타고 난 성격은 어쩔 수 없다. 언제나 똑같은 고집스러움에 식성도 늘 같다. 밥을 먹어야 했고 따끈한 국이 있어야 했다. 오래전,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흔적이었다. 


고집스러운 삶이었지만, 삶은 여행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살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짬만 나면 드나들었던 이유다. 시간만 나면 이곳저곳을 드나들었다. 힘이 들었고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은 여행을 많이 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내에게도 가끔은 자랑삼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배낭을 메고 수십 개국을 돌아다녔다. 아시아에 유럽이 더해졌고,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헤매고 다녔다. 제일 처음 출발했던 배낭여행의 기억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그리스와 터키, 20여 일 간 배낭여행을 위해 출발했다. 모든 것이 낯선 여행이기에 긴장과 설렘이 있던 여행이다. 

우유니 소금사막, 늙은 청춘의 어설픈 몸짓

어렵게 도착한 그리스의 밤, 모든 것이 어설프고 새로웠다. 어렵게 하룻밤을 지나고 일어난 새벽, 아침을 해결해야 했다. 아침을 제공해 주기로 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어수룩한 총각이 따라 오라며 아침을 해준단다. 신속하게 차려진 아침상, 계란 프라이 하나에 빵 몇 조각과 커피 한 잔이 전부였다. 순식간에 어설픈 총각이 차려낸 그들의 아침상이었다. 할 수 없이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침으로 손색이 없었다. 한나절 여행하고도 전혀 문제가 없는 아침이었다. 우리 같으면 생각도 못하는 일이다. 밥을 해야 했고, 국을 끓여야 했으며 몇 가지 반찬을 해야 했다. 찬거리를 준비하려 많은 생각과 비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혀 다른 문화가 신기했다. 


아내가 아침상을 준비한다. 적어도 한 시간은 먼저 일어나야 했고, 밥을 하고 국을 끓어야 하며 덤으로 몇 가지 반찬을 해야 했다. 밥과 국만으로는 밥상의 위엄(?)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몇 번 뜨지 않는 반찬을 꺼내 놓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야 했다. 출근 시간이 바빠 몇 숟가락 뜨고 일어선다. 한 시간여 준비한 밥상을 순식간에 앉았다 일어서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시간이 허무했고, 아내의 노고가 너무 서러웠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출근을 해야 한다. 아이들도 챙겨야 하는 일도 남아 있다. 오랫동안 고민해 온 아침 식사를 여행지에서 깨달았다. 한 번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케이프 타운, 희망봉에서 만난 식사

우리도 아침은 빵으로 먹자 하니 아내가 깜짝 놀란다. 도저히 생각도 하지 못했던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잖다. 아내도 고민 끝에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번거로운 식사보다 빵과 간단한 과일로 아침을 하기 시작했다. 빵이 등장했고 가끔은 떡도 등장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꽈배기도 등장하고, 시장에서 만난 옥수수도 등장한다. 아침 식사가 진화하면서 야채샐러드도 등장하고, 요구르트와 커피가 오르기도 한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은 꽤 오래되었다. 참, 괜찮은 생각에 삶이 편해졌고 아침이 쉬워졌다. 쉽진 않지만 나도 간단히 해결이 가능한 아침이 되었다. 아내도 부담스럽지 않은 식사였고 효율적인 식사가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삶이다. 순식간에 여행을 가자 하면 아내는 두 말 없이 따라나선다. 새벽에 출발한 여행길, 아침 식사는 문제가 아니다. 지나는 길에 김밥 한 줄과 음료수 한 잔이면 해결된다. 빵 한 조각과 음료수 한잔이면 해결이다. 전에는 어림도 없는 아침 식사다. 국이 있어야 하고, 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니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세월과 함께하면서 늙은 청춘이 살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알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운동은 밥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틈만 있으면 운동을 한다. 마라톤을 하고, 헬스를 하며 자전거를 즐긴다. 심심하면 뒷산을 오른다. 갖가지 운동을 하는 사람, 오래전 어머니의 말씀대로 너무 많은 옷을 휘지른다. 아침에 한 벌 벗어 놓고, 오후에 한 벌을 또 벗어 놓는다. 

모로코에서의 한 끼 식사

쌓이고 쌓이는 게 휘질른 옷이지만 언제나 세탁기를 이용하기도 번거롭다. 젖은 옷을 쌓아 놓기도 불편하다. 어느 순간에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하숙을 하면서 또 자취를 하면서 모든 빨래는 손수 해결했었다.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던 빨래였다. 수도 없이 벗어 놓는 빨래, 하는 사람도 숨이 찬다. 많으면 세탁기를 이용하지만 땀에 절은 한두 개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운동도 하는데 운동삼아 빨래도 해 보는 것이었다. 아무 문제가 없는 빨래, 아내도 편리하고 내 마음도 여간 편한 것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휘지르는 빨래가 해결되는 것이다. 세월이 변했다는 생각 대신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덩달아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운동 후 땀 흘린 참에 청소를 하는 것이다. 일층과 이층을 오가며 하는 청소도 만만치 않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사람이 많이 변했단다. 늙어가는 청춘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먹고살기 바쁘던 시절, 숟가락을 던져 놓고 출근한다. 밥상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가야만 했다. 서서히 세월이 흘러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숟가락을 던지고 만 밥상, 누군가는 정리해야 하는 뒷설거지였다. 뒷 설거지를 나누어서 하면 안 될까? 내가 하면 안 될까? 고지식하던 생각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늙은 청춘이 밥을 얻어먹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또 터득한 것이다. 숟가락을 놓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오래전 어머니, 말도 안 된다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씬도 하지 말라는 부엌, 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간단한 국내 여행은 수시로 간다. 동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남해안과 곳곳의 산을 찾는다. 밥을 짓고, 설거지는 맡아서 하고 있다. 늙어 가는 청춘이 편안이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침에 만난 식사 한 끼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삶의 방법이 바뀌면서 생각도 서서히 바뀌어 갔다. 오래 전의 방법을 고집만 할 것이 아니라 삶의 편리함과 서로 살아가는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남의 삶을 즐기기보단 나의 삶을 살기에도 부족한 세월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삶이 풍요롭고도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늘 고심하면서 마음을 바꾸니 하루하루 편하게 살아가는 삶이 되었다. 자그마한 생각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나면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었다. 삶의 방식에 유연한 대처가 늙은 청춘이 살아가는데 훨씬 편하고 안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알려준 살아가는 방법, 늙은 청춘이 용케도 살아가는 방법, 삼시 세 끼를 편안히 얻어먹을 수 있는 방법,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이렇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 알았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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