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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21. 2022

겨울을 따라간 골짜기엔 하얀 눈이 있었다.

(친구들과의 산행, 산에서 만난 풍경)

친구들과 격주로 하는 산행, 근처에 있는 산을 번갈아 오른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체육관에 들러 운동을 하고, 하루는 자전거 또 하루는 산행을 했었다. 겨울이 앞을 막아 자전거길을 멈추고 주로 산을 찾아 나선다.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산을 찾는 날이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 아침, 날씨가 매섭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루 쉴까도 생각해 보지만, 오늘 지나면 또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눈이 와서 길도 미끄럽고 공기도 차갑다. 오래 전의 기억이 떠 오른다. 차갑기만 하던 겨울날, 아버지는 오늘도 땔감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아버지 눈치를 살피다 썰매를 들고 줄행랑을 친다. 썰매장을 가면 하루가 즐겁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시골 동네, 그곳에 번듯한 썰매장이 있을 리 없다. 기껏해야 벼를 벤 논에 모아진 물이 얼어 미끄럼을 타는 수준이다. 곳곳에 베고 남은 벼 그루터기가 있어 볼품도 없다. 어른이 그럴듯하게 만든 썰매도 아니다. 어렵게 굵은 철사를 구하고 널빤지를 찾아냈다. 아버지가 감춘 연장 그릇을 또 찾아냈다. 산에서 구한 나무에 철사를 고정시켰다. 이를 널따란 판자에 고정한 썰매, 볼품은 없지만 신나는 놀이도구였다. 나무를 잘라 못을 박은 것이 썰매를 밀기 위한 송곳이었고, 허름한 장갑을 끼고 썰매를 탄다. 벼 그루터기에라도 닿으면 곤두박질치기 쉬운 썰매장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하루는 너무나 짧은 겨울 해였다.

차를 몰고 도착한 곳엔 하얀 눈이 내렸다. 곳곳에 미끄러운 빙판이 도사리고 있는 곳, 친구들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오른 언덕엔 야자매트가 길게 깔려있다. 하얀 눈이 쌓인 언덕배기엔 비료포대가 있어야 했는데 야자매트가 자리 잡았다. 야자수 열매인 코코넛의 추출물을 이용해 만든 바닥재다. 산을 오르는 곳마다 펼쳐진 야자매트, 산은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산을 오른다. 보잘것없는 비료포대와의 어울림이 한없이 즐거웠던 기억이다. 가끔 만나는 돌덩이에 궁둥이가 얼얼해도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언덕이었다. 눈 위를 뒹굴며 하루를 보냈던 코찔찔이 친구들, 어느새 머릿결이 허연 세월이 되었다. 벌써 삶을 버린 친구들도 하나씩 늘어가는 세월, 남은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한 산행 길이다.


눈이 오는 중이라 오르는 사람이 드물다. 마스크를 써야 할까 벗어도 될까? 고민하는 사이 사람이 내려온다. 산을 오르는 중이지만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 외면하는 것이 불편해서이다. 언제쯤 편안한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숲 속엔 솔잎과 갖가지 낙엽이 수북하다. 오랜 기간 동안 쌓인 것이다. 발을 헛디디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하는 산행길이다. 예전에 생각할 수도 없는 땔감이다. 추운 방에 군불을 지펴야 했고 끼니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은 커다란 재산이었다. 땔감을 준비해야 하는 서민, 이를 말려야 하는 주인 간의 싸움이 치열했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일 년 내내 이루어지곤 했었다. 불과는 뗄 수 없었던 시골 동네의 삶, 따스한 불길이 그리워진다.

썰매를 타고 비료포대와 한 나절을 보냈다. 추위가 찾아왔고 눈도 내렸다. 어린 철부지들의 입성도 시원치 않았다. 투박하게 덧 꿰맨 나이론 양발에 허름한 점퍼 하나가 고작이다. 내의라 해도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누구 하나 투덜댐이 없던 시절이다. 한 나절 놀다 보니 얼굴과 온몸이 시리다. 어쩔까 망설이다 어렵게 감춰 온 성냥이 위력을 발휘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나무를 모아 불을 붙였다. 거지가 모닥불에 살찐다는 말을 실감했던 따스함이다. 슬쩍 내민 발이 훈훈한 사이, 엉성한 나이론 양말을 그슬리고 말았다. 나이론 점퍼도 성할리 없다. 군데군데 불똥이 튀었으니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시 못 올 오래 전의 추억이다.


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시내, 하얀 눈이 내려 상쾌하기만 하다. 뿌연 미세먼지로 덮여있던 도시가 찬 공기와 하얀 눈으로 말끔해졌다. 하얀 눈과 도시의 어울림이 그럴듯한 그림이다. 추운 겨울이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진다. 젊은이들도 산을 오르며 젊음을 과시하고 있다. 추위에 꽁꽁 싸맨 사람들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간단한 차림으로 산을 뛰어오르는 모습이 싱그럽다. 산을 뛰어오르며 마라톤을 연습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풀코스는 아니어도 하프 마라톤을 했던 시절, 평지보단 언덕을 선호했다. 운동이 되는 듯해서였다. 산을 뛰어오르며 숨이 멎을 때까지 뛰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신체도 마음도 바꾸어 놓고 말았다.

겨울을 버티고 있는 푸르름

아직은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몸을 이끌고 정상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이지만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다. 겉 옷을 풀어헤치자 마음까지 상쾌한 겨울바람이다. 살기 좋은 세상임을 알려주는 운동 기구들, 지자체에서 설치해 놓은 운동 기구들이다. 어떻게 이 무거운 것을 들고 왔을까? 주변에 이동식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다. 역시 어떻게 이곳까지 이동시켜 왔을까? 삶에는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누군가는 힘든 노동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다. 먹고 살기 힘겨웠던 시절 하고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산 꼭대기에 운동기구가 설치되고, 정상까지 쉽게 올 수 있도록 야자매트를 깔아 놓았다.


찬 바람이 찾아왔어도 마음만은 상쾌하다. 곳곳에 남아 있는 눈이 아름답고, 마침 떠 오르는 햇살에 기분마저 상쾌하다. 어렵게 살아오던 시절이 훅 지나가고 이제는 모두가 살만한 시절이 왔다. 먹을거리가 걱정 없고, 입을 거리도 문제없다. 모든 것이 풍족해진 우리의 삶, 우리는 모든 것을 만족하고 사는가? 산을 오르며 계속하던 생각이다. 비료포대와 얼기설기 만든 썰매가 있었고, 가난이 줄줄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 울을 넘던 떡 한 접시가 있었고, 논두렁에서 나누던 새참이 있었다. 골목을 드나들며 종일 뛰어놀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은 없었고 가슴 적시는 정이 있었다. 설날이 기다려지고, 보름날이 기대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많이 변했고 인심도 변했다. 지금은 무엇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을까? 가슴 저리도록 기다림은 없는 것일까? 눈이 내린 산에 올라 지난날을 기억해 보는 상쾌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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