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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16. 2021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추석이 어느덧 코 앞입니다.

(부모님 전상서, 수채화: 가을날의 물빛)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오랜만입니다.

올해도 무더위에 시달리며 한여름을 지나고 나니,

소슬한 찬바람이 찾아오고 계절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성스러운 가을에 윤기를 얹어 이 땅의 생명들이 귀천 없이 

둥근 보름달을 맞이 할 수 있는 추석도 어느덧 코앞에 와 있습니다.


어머니, 참 오랜만입니다.

모진 무더위를 참아내고 거센 비바람을 견디어 내야

성스럽고 풍성한 가을을 기약하며 계절의 아름다움을 맛보듯이,

모질고도 야무진 세월에 젖어 안으로 여물고 겉으로 익어야

혼자만의 몸짓으로 허공을 날며 저마다의 먹잇감을 찾을 것 같은

어설픈 아비로서의 끝없는 걱정이 성스런 가을을 소슬하게 합니다.

호수에도 어느덧 가을이 왔다.

아버지, 참 오랜만입니다.

가느다란 실바람에도 움찔하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소스라치던

자그마하고 철없던 아이들이 뒤뚱거리던 걸음마를 뒤로 하고,

어엿한 어른으로 흉내를 내며 혼자만의 날개 짓으로 날려는 모습이 

가을 아침의 눈앞에 아른거리니 먼 옛날 당신들의 타는 가슴을

이제야 온몸으로 알게 되었음이 가을날의 아침을 숙연하게 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참 오랜만입니다.

가끔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월의 고단함을 잊으려 했던

당신들의 속마음을 헤아림 없이 혼자서도 날아오를 것 같던

오래 전의 그 철부지 모습이,


자그마한 몇 방울 소주잔으로도 붉은빛으로 세월을 물들이고

덧없는 세월이 얼마 더 흐르고 나니 몇 잔의 소주잔마저 망설였음이

그리도 철딱서니 없던 이 자식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것은

두 아이의 어설픈 아비 노릇마저 그렇게도 버거워서인가 봅니다.

고마니 풀, 예쁜 꽃을 달았다.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참 오랜만입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부지런한 농부가 흐뭇해하는 것은

싸늘한 봄날에 씨앗을 뿌리고 비바람을 막아낼 울타리를 처서

지성과 정성으로 알곡을 이루어 가을날의 성스러움을 알았음이니,


당신들 삶의 몸짓을 밑천 삼아 어설픈 날개 짓

모른 척 바라보며 접힌 날개 펼쳐주며 다독이고

삶의 응어리 살며시 풀어주어 저마다의 날개 짓이 더없이 여물도록

어설픈 아비 노릇 정성으로 해보렵니다.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참 오랜만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당신들의 추석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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