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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n 18. 2022

골짜기가 시끄러운 여름날의 오후

(골짜기에 꽃을 심다, 마을을 밝혀 줄 달맞이꽃)

자그마한 골짜기엔 졸졸대며 흐르는 작은 도랑이 있다. 진한 가뭄에도 목숨은 끊기지 않으며 장마철이면 마음껏 소리를 내지르는 도랑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도 옹알거림은 끊임이 없다. 가을을 넘어 겨울이 오면 하얀 쌓인 얼음덮고 도랑은 동면으로 접어든다. 하얀 얼음장 밑으로 겨울잠을 자는 듯한 도랑물, 속으론 여전히 옹알거리는 천생 도랑물이다. 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계절을 알려주는 신통한 도랑물이다. 찬란한 도랑을 기준으로 작은 시멘트 제방쌓았고 위로는 시멘트 포장이  골짜기 길이다. 도랑 위로는 앞산이 자리를 잡고 사시사철 푸르름을 준다. 바람이 내려오고 푸름이 흘러내리며, 갖가지 나물과 새들을 길러내는 소중한  산이다. 골짜기의 기준점이 되는 도랑 거룩하고도 찬란한 동네의 왕핏줄이다.


거룩한 도랑따라 만들어진  가장자리 시멘트 벽돌 에는   송이쯤 심을만한 작은 공간이 늘어서 있다. 눈길을 거두면 외면하기 쉬운 작은 공간이다.  뼘의 땅도 놓치지 않는 동네 이웃들이 그냥 둘리가 없다. 지난해에는 천수국을 심어 황금빛 시골길을 만들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로 밝은 골짜기를 만들어준 소중한 꽃이었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과 길을 따라 자란 꽃송이들, 봄부터 가을까지 넉넉한 골짜기를 만들어  꽃길이었다. 여름으로 깊어지는 계절, 아직도 길가에는 꽃이 없어 허전했었다. 어떤 꽃을 심을까 고심하고 있던 오후, 갑자기 동네가 시끄러워졌다. 무슨 일일까?

지난해 동네를 밝혀준 천수국

도랑 따라 살고 있는 이웃들이  모였다. 연중행사를 하기 위해서다. 길게 늘어동네길 가장자리에 꽃을 심는 행사를 하기로  것이다. 올해는 무슨 꽃을 심을까? 꽃모종이 자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천수국 때문에 곤충들을 막을  있다는 이웃이 말이었다. 지난해에 천수국을 심은 이유였다. 올해도 천수국을 심어볼까 아내는 고대하고 있었다. 시골살이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올해도 내심 기대하고 있는 꽃이었다. 꽃모종을 기르던 이웃올해는 천수국 모종이 모자란단다. 씨를 받아 심은 모종을 기대했지만 원하는 대로 싹이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사정이 되는 대로 꽃을 심기로 했다.

작은 도랑물이 흐르고 있다

우선은 천수국이 되는 만큼 심고 나머지에는 곳곳에 지천인 황금달맞이꽃을 심기로 했다. 황금달맞이꽃, 번식력이 뛰어나 시골집의 곳곳에 자리를 잡은 꽃이다. 꽃이 피면 노랑빛으로 밝게 웃는 모습이 대단한 꽃이다. 황금달맞이꽃, 분홍 달맞이꽃 그리고 달맞이꽃이 동네에 가득한 골짜기다. 부지런한 황금달맞이꽃은 벌써 꽃을 피워냈고 그늘 쪽의 황금달맞이꽃은 아직 서성대고 있다. 이웃이 천수국 모종을 뽑아 왔고 황금달맞이꽃도 준비했다. 우선은 천수국을 있는 대로 심기로 했다. 작은 틈에 꽃을 심는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다. 흙이 넉넉하지 않아 흙을 준비해야 하고 작은 틈의 흙을 파고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흙이 모자라면 앞산에서 흙을 날라 보충하고, 서서히 꽃을 심어나갔다. 한두 사람이 아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선  심기, 동네를 밝게 만드는 작업이다. 누구 하나 싫어하는 사람 없고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다. 서서히 천수국을 심고 모자라는 곳엔 황금달맞이꽃을 심었다. 서로가 어울리도록 이곳저곳을 나누어 나란히 심어 나갔다. 시골에 살아가면서 언제나 고민 중에 하나는 이웃과의 불화다. 혹시나 불편하면 어떻게 할까? 하루 이틀 보는 사이도 아닌데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서로가 망설이는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동네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한다. 서로 돕고 이해하는 이웃들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모두가 나서서 하는  심기, 누구 하나 불평함이 없는 즐거운 행사다.

도랑가에 핀 황금달맞이꽃

천수국을 심고 모자라는 곳엔 황금달맞이꽃으로 채워졌다. 한참의 노력 끝에 함께한 동네  심는 행사가 끝났다. 서로를 격려하며 심은 꽃은 작은 도랑과 길을 따라 길게 줄을 섰다. 성급한 황금달맞이꽃은 벌써 꽃을 피운 것도 있다. 자그마한 모종으로 자리 잡은 천수국과 황금달맞이꽃, 언젠가는 동네를 밝게 만들어  소중한 손님들이다. 꽃도 아름답게 피어 동네를 밝혀 주겠지만 모두  마음으로 꽃길을 만드는 이웃들이  아름다운 골짜기다. 비록 조금은 힘든 일이어도 이웃과 함께하는  심기는 아름다운 꽃보다도  흐뭇한 동네 행사다. 계절이  깊어지면 시골길을 따라 피는 꽃들이 밝은 동네를 만들어 주지만 밝게  꽃을 생각하며  같이   심기가 더욱 소중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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