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물에 발 담그고)
푸름이 가득 심긴 긴 사각 네모
서둘러 다가선 발걸음엔
푸르른 추석 배추 손을 내밀고
홀쭉한 가을 상추 마음 흔들어
얼른 품에 안고 숨어든 골짜기
호미자루 친구 삼아 밭이랑 세워
아내 불러내어 배추 세우고
줄줄이 상추모 열 지어 점찍고 나니
온몸이 땀에 젖은 여름날이다
초복에 중복 지난 삼복 여름날이라
더위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삶이지만
어느덧 더위가 힘이 든다니
오래전 내 아버지 눈에 밟힌다
어째서 더위에 힘이 들어야 하고
왜 이리 밥 숟가락에 숨이 가빠야 하는 건지
가버린 여름날엔 고개만 갸웃거렸건만
세월의 덧없는 발걸음 내달으며
넉넉히 알려주는 그 여름날이다
서둘러 바지 걷고 들어선 집 앞 도랑물
시원한 물줄기에 다리 적시고
푸드덕 땀에 절은 얼굴 씻어내니
내 아버지 풀 지게 세운 저녁나절
홀쭉한 다리 씻는 모습이 보여
한 여름 도랑물에 마음까지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