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비 내리는 아침)
아버지, 여름 비가 내립니다
후덥지근하던 골짜기
검은 구름 떼 지어 산을 넘어와
앞산에 아스라이 드리우더니
가느다란 세로줄이 되어
하나 둘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아버지, 여름 비가 내립니다
검게 드리웠던 먹구름은
가느다란 물줄기 되어
연초록 물결을 진한 검푸름으로
물들이며 지나갑니다
아버지, 여름 비가 내립니다.
바람 타고 내린 빗줄기는
여린 연초록 싹을 살찌우려
들녘을 진한 푸르름으로 덧씌우고
넉넉한 가을 한나절을 기약하는
성스런 물이 되어 흠뻑 내립니다
아버지, 여름 비가 내립니다
용마루를 타고 내린 비는
추녀 밑 땅을 밤새도록 후벼 파
어느새 가느다란 여울을 만들고
안마당을 휑하니 돌고 또 돌던
기억 속에 그리운 그 비가
아침부터 내립니다
아버지, 여름 비가 내립니다.
연초록이 녹음으로 성숙해지고
들녘이 푸름으로 가득하여
검푸름의 여름을 지나
누런 들판을 기약하는 여름 비가
추억 속 그리운 비가 되어
아스라이 앞 산에서 내려옵니다.
아버지, 그리운 여름 비가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