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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24. 2022

동해안 여행, 주문진과 삼척을 지나 태백으로 향했다.

(삼척 파도를 넘어 태백으로, 삼척 촛대바위 파도)

춘천에 들러 닭갈비를 즐기고 진부령을 넘어 고성을 지났다. 거진항에서 으르렁대는 찬란한 파도를 만났다. 한참의 노닐음은 환상적인 여행이었고, 다시 속초 중앙시장에서 삶을 맛보았다. 하룻밤이 지난날, 다시 주문진항을 찾아 나섰다. 일 년에 대여섯 번은 찾아가는 주문진항이다. 각종 활어가 살아있고 활기찬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통영의 중앙시장과 견줄만한 곳, 주문진 수산시장이다. 언제나 싱싱한 생선이 넘쳐 조용히 둘러보려 하지만 또 해물을 사야 했다. 싱싱해서 사고, 먹음직스러워 해물을 흥정한다. 아이들이 생각나서 또 사고야 만다. 늘 후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물건을 사야 하는 병, 고쳐지지 않는 병임을 안다.


주문진 하면 오징어가 생각나던 곳이었다. 주문진 여행 후 나누어 주는 오징어 한두 마리,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여행지였다. 요즈음은 도로가 좋아지고 차량이 대중화되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누구나 오갈 수 있는 편안한 나들이 장소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많은 교통시설이 확충되어 쉽게 오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다. 주말이면 오갈 수 없을 정도의 차량이 붐비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관광지 주문진 활어시장, 수많은 생선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그냥 갈 수 없었다. 

싱싱하고도 저렴한 고등어를 사고, 오늘따라 많이 나온 오징어를 샀다. 무엇을 더 살까 망설이다 눈으로만 사기로 했다. 거대한 킹크랩도 사고 싶고, 묵직한 문어도 욕심난다. 수입산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바닷가재도 입맛을 돋워준다. 여기저기에서 손님을 유혹하는 눈길이 따갑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서둘러 수산시장을 나왔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에 마음까지 상쾌하다. 오랜만에 가벼운 몸가짐으로 신나는 주문진 시장을 나섰다. 다시 찾아가야 할 곳이 있어서다. 삼척의 촛대바위를 찾아야 하고, 태백에 들러 점심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도가 또, 그리워 삼척 촛대바위를 보고 싶고, 오래전 태백에서 만났던 닭칼국수가 그리워서다.


동해안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길 7번 국도다. 한쪽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친구 삼아 오가는 7번 국도는 잊을 수 없는 길이다. 갖가지 사연과 삶을 공유하고 있는 7번 국도, 포항에서 통일전망대를 주파하는 자전거길, 영원히 잊지 못할 7번 국도다. 시간이 촉박해 동해고속도로를 경유하기로 했다. 동해고속도로에서 만난 고속도로 휴게소, 아름다운 동해안을 가득 안고 있다. 수없이 밀려오는 푸른 파도와 겹겹이 다가오는 햇살이 만났다. 도저히 그냥 갈 수 없는 환상적인 동해바다였다. 동해바다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삼척 근덕면에 위치한 삼척 촛대바위, 추암의 촛대바위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삼척시 근덕면에 위치한 삼척 촛대바위,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아 좋다. 시골스런 항구를 지나 촛대바위 입구에 도착했다. 안내하는 사람도 없는 안내소, 촛대바위를 소개하는 리플릿만 덜렁 꽂혀있다. 산길을 따라 펼쳐진 둘레길은 밀려오는 파도를 감상하기 너무 좋다. 동해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바닷길, 밀려오는 파도가 발길을 잡는다. 수없이 달려오는 파도의 물결, 하얀 포말 덩어리가 뭍으로 밀려온다. 파랑에 녹색이 섞여 있는 환상적인 바다색, 거기에 하얀 햇살이 부딪쳤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동해바다 색깔, 환상적인 색의 조화를 또 만났다. 역시 자연의 위대함은 떨쳐낼 수가 없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이 요동을 친다. 자연이 만들어 주는 색의 조화, 온몸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바위를 만나 물길이 넘어섰고, 넘지 못한 물결은 이내 돌아서 간다. 넘은 물결과 남은 물결이 다시 만났다. 서로 엉켜 흐르는 물결은 골을 만들고, 따르지 못한 물결은 뒤를 따른다. 기어이 만들어진 하얀 물결은 길을 이루고, 푸름에 하양이 어울린 신비한 색의 조화다. 떨칠 수 없는 파도는 그칠 줄 모른다. 느닷없이 부딪친 물결은 공중으로 치솟고, 남은 물결은 주저 않고 만다. 하늘로 치솟은 물결이 햇살을 만나 하양에 푸름이 공존하는 하늘이다. 느닷없이 달려온 물결이 바위에 부딪쳤다. 산산이 부서진 물방울이 하양으로 변했고, 뒤따라온 물결과 한 몸 되었다. 찬란한 햇살이 바다에 내려왔다. 하양인지 푸름인지 알 수 없는 바다색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윤슬이 빛을 발하고, 물인지 바위인지 알 수 없는 동해다.

깊고도 깔끔한 구수함으로 긴장감을 주는 닭칼국수

서둘러 동해를 떠나야 했다.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 베이스캠프가 멀기 때문이다. 언제나 돌아가야 하는 베이스캠프가 멀어서다. 사람이나 동물은 비슷한 삶이다. 멀리 돌아도 베이스캠프로 돌아야 가야 함이 같지 않겠는가? 삼척을 돌아 태백으로 향하기로 했다. 몇 년 전, 태백을 돌아 임원항을 찾아가는 길이다. 허기를 메우기 위해 찾아간 태백의 '한서방 칼국수'를 만났다. 닭칼국수라는 말에 비릿한 맛을 연상했지만 쓸데없는 기우였다. 구수함에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고, 그릇에 담긴 양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이 너무 많아 조금만 달라했지만 주인장이 듣지 못한 것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적은 양을 주었더라면 엄청난 후회를 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닭칼국수집은 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도 여전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큐알코드를 내밀었다. 코로나가 문화적인 양식을 한 단계 높여놨다는 생각이다. 


오래 전의 식당은 변하지 않았고, 종업원의 숫자만 많아진 듯하다. 메뉴는 정할 것도 없이 닭칼국수다. 양을 너무 많아 덜어 달라는 주문을 했던 집이다. 기다림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끝없이 들어오는 사람들, 아직도 명성이 대단함을 알려준다. 드디어 닭칼국수가 등장했다. 어마어마한 양은 여전하다.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양이 올라왔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한번 먹어 보기로 했다. 구수한 국물에 들어있는 걸쭉한 닭칼국수 맛은 변함이 없다. 특유의 닭맛을 살려내면서 국수 본연의 맛을 건드리지 않았다. 텁텁하지도 않고 묵직하면서도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어떻게 이런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몇 백 킬로를 달려온 발걸음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맛이다. 


한참의 노력(?) 끝에 국수를 거의 먹을 즈음, 주인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건장하고 당당함에 눈길을 사로잡는 중년이다. 구석에 있는 거대한 널빤지를 이용해 국수를 밀려는 모양이다. 오늘은 운이 좋다. 저런 멋진 구경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건장한 체구는 아니었지만 거대한 국수판과 홍두깨가 눈을 의심케 한다. 드디어 준비한 밀가루 반죽이 등장했다. 거대한 덩어리를 중앙에 놓고 홍두깨를 움켜잡는다. 서서히 팔 근력을 움직이더니 국수 반죽을 밀어낸다. 팔뚝에 근육이 긴장하면서 늘어나는 국수 반죽이 점점 넓혀진다. 고단한 근력으로 펼쳐진 밀가루 반죽이 널따란 국수판을 덮고 말았다. 밀가루를 뿌리고 켜켜이 접어 올린 국수를 썰기 시작한다. 한 움큼씩 모아 놓은 국수의 양이 엄청나다. 대단한 노력과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닭칼국수다. 오랜만에 볼 수 없는 국수 미는 과정을 뒤로하고, 먼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길이 가볍기만 한 여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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