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나들이, 선운사 동백꽃)
맑은 햇살이 벌써 뒷산에 내려앉아있다. 맑은 햇살은 맛이 다르다. 보기에도 다르다. 맑은 햇살은 튀어 오르는 색감도 다르다. 시골 도랑에 떨어진 낙엽에 햇살이 비추었다. 순식간에 떨어진 햇살이 되비추어 튀어 오른다. 그 햇살이 맑은 햇살이다. 맑은 햇살이 앞산에 내려온 것이다. 사람들이 맑은 햇살 속에 산을 오른다. 갑자기 맑은 햇살이 그리워졌다. 선운사 뒤편 동백 숲이 생각났다. 동백나무 잎에서 튀어 오른 햇살이 보고 싶어서이다. 아내와 길을 나섰다. 고창 선운사로 가기 위해서다. 꽃을 지운 동백잎이 햇살에 반짝이리라.
두어 시간을 달려 선운사 근처에 도착했다. 우선은 허기를 메워야 했다. 수없이 많은 장어집이 줄을 지어있다. 어느 집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다. 차를 몰고 두리번거리다 한 집을 찾았다. 주차된 차가 많은 집을 고른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그럴듯한 시골집이다.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 메뉴가 오로지 두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구입하려는 자동차, 수없이 많은 옵션 가격에 참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참 고마운 메뉴판이다. 음식 종류가 많으면 머리를 어지럽힌다. 덩달아 고단해진다. 간단하여 고를 것도 없는 메뉴판이다. 정말 고마웠다. 서둘러 주문을 하자 음식이 바로 나온다.
정갈하게 준비된 장어와 밑반찬이 차려졌다. 후회는 하지 않을 듯한 반찬이다. 세세히 설명을 하는 사장은 손수 길러 장만한 반찬이란다. 시금치가 그렇고, 더덕이 그렇단다. 멀리서 왔다는 말에 복분자주 두 잔을 서비스라며 내어준다. 복분자 한 모금은 혀를 그냥 두지 않았다. 달콤함은 영혼까지 흔드는 듯했다. 위아래로 오가는 혀를 진정시키며 식사를 했다. 왠지 거부감 없는 밑반찬이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 주었다. 거나하게 식사를 하고 절집으로 향했다.
벌써 목련이 하얀빛을 발하고 있다. 봄이 왔다는 소식이다. 절집에 이르는 길에는 몇 개의 상점이 문을 열었다. 벌써 봄나물을 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짙푸른 쑥이 있고 냉이가 있으며, 작은 머위도 한 자리 차지했다. 할머니가 손수 뜯으셨다며 사라 하신다. 그리운 어머니가 떠오른다. 얼른 눈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꼭 들르라 하신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길가에는 벌써 벚나무가 안달이 났다. 따스한 봄빛 따라 꽃을 피우고 싶은 것이다. 단풍나무도 붉은빛에 물 들었다. 길 따라 걷는 길이 맑은 햇살에 싱그럽다. 산골 바람은 한층 더 산뜻하다. 오랜만에 선운사 절집에 들어섰다. 아침나절 조용함이 좋다.
언제나 만나면 숙연해지는 절집이다. 고색창연한 절집이 너그러이 햇살을 품었다. 덩달아 숙연해진다. 널찍한 절집이 편안함을 준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동백을 맞으러 갔다. 푸르른 동백이 햇살을 안아 준다. 반짝이는 햇살이 튀어 오른다. 맑은 햇살이다. 햇살이 곳곳에 돌아온 봄을 맞이한다. 푸르름이 싱그럽다. 동백에 다가갔다. 깜짝 놀랐다. 동백이 꽃을 달고 있는 것이다. 빨간 동백꽃이다. 동백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오랜동안 기다려 주는 사람은 없을까 잠깐 생각한다. 기다려줄 사람은 없을까도 생각했다.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부질없는 생각임을 금방 알았다. 떨어진 동백꽃도 붉은빛을 발하고 있다. 동백처럼 살 수는 없을까도 생각해 본다. 기다려준 동백이 고맙다는 생각을 해본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며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 추백, 동백으로 나누어 부른다는 안내문이 있다. 가까이 바라본 동백꽃은 생각대로다. 처절하도록 진한 빨강 꽃은 선홍색 사랑에 겸손을 얹어 준다. 그리운 사랑에 그리움도 있다. 빨간 사랑이 그네를 타는 사이 맑은 햇살이 동백을 찾았다. 잎에서 튀어 오른 맑은 햇살은 봄을 노래한다. 주변에 있는 붉은 매화가 장단을 맞춘다. 동백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질세라 흰 매화도 하품을 한다. 붉은 동백꽃에 잎에서 튀어 오른 맑은 햇살에 봄날은 혼을 잃었다. 동백꽃에 정신을 놓는 사이, 붉은 동백 앞에 세 스님이 있다. 동백에 반했나 보다.
세분 스님이 동백에 정신을 잃었다. 어디선가 절집을 찾은 스님들 같다. 동백꽃을 따라 걷는 스님들은 마냥 신이 났다. 어린아이처럼 동백꽃을 좋아한다. 웃음을 지울 수 없는 스님들이다. 스님들도 동백꽃을 찍는다. 보통 사람과 같은 포즈이다. 사람 냄새가 난다. 봄을 찾아 신이 난 모습니다. 동백에 홀려 한 나절이 가버렸다. 마을음 추스르며 절집을 벗어났다. 봄은 성큼 절집에 내려앉았다. 절집 앞 냇가에 내려왔다. 나무에도 봄이 왔다. 내려오는 길에 상점을 찾았다. 할머니가 기다리시는 듯해서이다. 할머니께 넉넉한 덤을 받으며 머위를 샀다.
맑은 햇살이 그리워 나선 나들이였다. 선운사 동백나무가 그리워서다. 빨간 동백꽃도 보고 싶었다. 봄이 너무 다가와 꽃은 기대하지 않았다. 잎새에서 튀어 오른 맑은 햇살이라도 보고 싶었다. 운이 좋아 기대하지 않던 붉은 동백꽃을 만났다. 처절하도록 빨간 동백이다. 스님들도 즐겨했던 동백꽃이었다. 너무 반가운 동백꽃이었다. 그렇게 반갑고도 반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선운사 절집에 젖어 다시 찾은 봄을 생각했다. 할머니 후한 덤에 그리움이 묻은 봄을 맞이했다. 맑은 햇살에 홀려 떠난 그윽한 봄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