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게맛을 찾아서)
입춘은 왔다 간 대지는 벌써 봄을 감지하는 날이다. 봄이 오는 계절, 전부터 봄이면 떠 오른 곳이 있다. 서해안의 장고항과 왜목마을이다. 장고항엔 눈만 달려 있는 실치가 있고, 왜목마을엔 봄의 전령인 간자미가 있다. 야속한 세월을 뒤로 물린다면, 성구미의 아련함을 찾아가고 싶지만 이미 세상이 헤집어 놓고 말았다. 조용한 시골 한구엔 그리움이 앉아 있었다. 따스한 할머니 좌판엔 간자미와 실치가 동무를 이뤘고,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이웃의 삶이 있었다. 세월을 탓해서 무엇하랴만, 문명의 물결은 조용한 항구 성구미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먼지가 풀풀 나는 괴물이 들어서고 말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찾아갔던 왜목마을에도 간자미는 살아 있었다.
아직도 맛을 볼 수 있을까 망설이는 아침이다. 상큼한 미나리와 깨가 섞인 간자미 무침, 잊을 수 없는 맛이기 때문이다. 아직 이른 시기가 아닐까? 헛걸음이 될까 서해 간자미를 멀리하고 제철 게를 찾아 영덕으로 차를 몰았다. 길게 늘어선 고속도로엔 트럭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무엇이 그리 많이 실려 있을까? 비집고 들어설 틈바구니가 없다. 핑계 김에 느린 걸음으로 찾아가는 영덕이다. 김천 나들목을 지나 영덕선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많던 차는 부산행을 택했는가 보다. 영천 방향으로 다 몰려간 덕에 영덕선은 한가롭기만 하다. 지난해에 찾아갔던 낙동강이 보인다. 자전거를 끌고 낙동강을 찾았다.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부산이었다.
부산에 둥지를 튼 딸에게 전화를 하자 깜짝 놀란다. 이순을 훌쩍 넘긴 아비가 낙동강을 따라 부산까지 왔단다. 자전거에 올라 근육의 힘으로 낙동강가를 달린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모험을 즐길 수 있을까를 생각게 하는 낙동강이다. 서서히 속도를 높여 달려가는 영덕, 곳곳에 터널이 헤아릴 수 없다. 누군가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테고, 누구는 그냥 호사를 누리고 있다. 길게 드러누운 도로를 타고 달리는 기분, 세상 끝까지 달려보고 싶은 심정이다. 언젠가, 북유럽을 여행한 기억이다. 20여 일간 장장 4,000km 손수 운전했었다. 조용한 해변가를 따라 달리던 북유럽의 길, 너무나 행복한 기억이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는 길, 거기엔 북유럽의 한가함과 여유가 있었다. 그런 여유를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을 가다듬고 도착한 영덕 강구항엔 수많은 호객꾼들이 차를 막는다. 추운 계절에 삶이 어렵다는 생각에 작은 연금이나마 받고 있음에 감사하다. 곳곳에 늘어선 게를 선전하는 간판, 서민들이 찾기에는 버거운 집들이다. 한 마리에 10여만 원이라니 적어도 20만 원은 쥐어야 든든한 점심이 된다. 아내와 두 사람이 적어도 기십만원을 달라한다. 먼 길을 달려왔지만 언뜻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다. 아내는 또 말한다. 이렇게 망설이다 보면 언제 맛을 볼 것이냐는 하소연이다. 옳은 소리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넉넉하진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은 있어야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항구에 게는 종류도 다양하고 먹을 수 있는 시기도 제각각이다.
종류도 다양한 대게와 꽃게 그리고 홍게, 서식지가 다르다. 꽃게는 서해안 수심 30여 m의 얕은 곳에 서식하고, 대게와 홍게는 차가운 동해 800여 m 아래에 서식한단다. 대게는 크다는 뜻이 아니라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 하여 대게라 하는 것이다. 붉은 대게라고도 하며 온 몸이 붉은빛을 띠고 있는 것이 홍게다. 홍게는 대게와 함께 서식하지만 많이 잡혀 가격이 훨씬 저렴하단다. 대게 중에서 박달나무 같이 속이 꽉 찬 게가 박달대게다. 대게는 영어로 Snow crab으로 불린다. 눈이 내리는 북부의 찬 바다에서 잡히기 때문이란다. 대게와 홍게는 맛이 다를까? 대게는 장의 맛이 고소하고 다리살은 부드럽지만, 홍게는 장의 맛이 달달하면서 다리 살은 대게보다 조금 흐물대는 맛이다. 대게보다 훨씬 저렴함을 생각하면 전혀 뒤지지 않는 홍게다.
동해안의 대게가 있다면 서해안엔 꽃게가 있다. 중국 어선과 쫓고 쫓기는 바다 싸움을 해야 하는 꽃게, 왜 꽃게라 했을까? 육지에서 툭 튀어나온 곳을 곶(串)이라 한다. 쉽게 장산곶을 알 수 있다. 꽃게의 등딱지에는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곳이 있다. 꽃게 등딱지가 튀어나와 곶 같이 생겼다 하여 곶과 게를 합쳐 ‘꽂게’라고 부르던 것이 꽃게가 되었단다. 그 외에도 다양한 게가 있지만, 가장 많은 즐겨먹는 꽃게와 대게는 철이 다르게 즐길 수 있다. 대게는 수확철인 겨울이 제철이다. 겨울에 동해안이 붐비는 이유이다. 여름에는 금어기이기 때문이다. 꽃게도 계절에 따라 꽃게의 암수가 다르다. 봄철엔 알이 꽉 찬 암게의 계절이고, 가을엔 살이 꽉 찬 수게의 계절이다.
오늘은 강구항을 멀리하고 먼 길을 택하기로 했다. 강구항을 지나 축산항을 거쳐 멀리 후포항을 향했다. 자전거길로 익숙했던 후포항엔 많은 식당이 있다. 한적한 길에 자전거 도로임을 알려주는 파란 선이 반갑기만 하다. 곳곳에 거대한 간판이 손님을 유혹한다. 여러 집을 서성이다 시골스런 집을 찾아들었다. 서글서글한 사장은 정스럽고도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에 주문을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갑자기 퉁명스러운 한 마디가 날아온다. 편한 자리에 앉으란다. 어디선가 손님이 들어서는 것을 감지한 모양이다. 묵직한 저음을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 없는 목소리다. 꼼짝을 못 하고 어명(?)을 따랐다. 의자에 앉자 제공되는 물과 밑반찬, 한마디의 말도 없다. 참 별스런 식당을 찾아온 것이다.
남자 사장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몸짓이다. 퉁명스러운 말솜씨에 행동, 밑반찬을 던지듯이 놓고 간다. 화가 난 모양이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뒤돌아 나올까 말까를 망설이다 참고 앉았다. 게가 솥으로 들어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한참의 침묵 끝에 도착한 게, 먹음직스럽다. 여전히 안주인은 말이 없다. 적당히 익혀진 게맛살, 조금은 달착지근하다. 대게에 홍게가 적당히 섞인 맛이다. 입에 닿는 식감이 멀리 찾아온 식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고단한 손의 노동으로 한참의 여유로운 맛을 보고 나자 밥이 나왔다. 게딱지에 비빔밥이 올려진 밥이다. 여주인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고소함과 달큼함이 적당히 섞인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먼 길을 헛되지 않게 게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베이르 캠프로 향해야 하는 길, 어디를 가도 시골장은 구경해야 하지 않겠나?
시골스런 후포항의 시골장이 섰다. 곳곳에 해물이 가득하고 농산물도 있다. 역시 바닷가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바닷가와는 관계없는 커다란 단감이 보인다. 달큼함과 상쾌한 입맛을 전해주는 노란 감이다. 얼른 고개를 돌리려는데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열다섯 개의 커다란 감을 만원에 팔던 것인데 7,000원만 달란다. 어쩔까 망설이는 찰나, 두 봉지를 들어 검은 봉지에 넣는다. 만원에 두 봉지, 커다란 감 30개에 만원이란다. 얼떨결에 받아 들고 주머니를 열어야 했다. 언젠가 강구항 생각이 난다. 게를 팔던 젊은 남자, 10만 원을 달라한다. 양이 너무 많다 하면서 오만 원어치만 달라하자, 통째로 넣어주며 5만 원만 달라한다. 감을 파는 사람도 얼렁뚱땅 감을 넘기고 자리를 뜬다. 얼떨결에 감 봉지를 들었지만, 겨울 바다를 또 그냥 갈 수 없지 않은가?
푸르름과 신선함이 살아 있는 동해다. 언제나 신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푸름이 있고 하양이 있으며 젊음이 살아나는 바닷가다. 동해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바다였다. 먹거리를 주고, 볼거리를 주며 삶에 활기를 주는 바다였다. 근처 고래불 해수욕장, 고래불이 무슨 뜻인지? 고려말 대학자 이색 목은 선생이 이름을 지었다는 고래불, 고래가 노는 뻘이라는 뜻으로 불은 뻘의 옛 어원이란다. 백사장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하얀 파도가 밀려온다. 푸름에 하양의 탈을 쓰고 달려오는 겨울 바다의 위용,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그림이다. 앞에서 서둘러 오면 뒤에서 밀며 달려온다. 둘이 만난 하얀 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푸름에 하양이 한껏 흥이 났다. 곳곳에 포말을 이루는 겨울 바다의 용트림을 만났다. 어느 순간 게맛보다는 겨울바다에 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서둘러 온 길을 되짚어 오는 길, 게와 겨울 바다가 어우러진 겨울바다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