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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28. 2022

눈 쌓인 잔디밭,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밝은 햇살을 맞으며, 눈이 내렸다.)

흐린 모습으로 골부리던 하늘, 오랜만에 맑은 모습으로 골짜기를 찾았다. 지난밤엔 골짜기에 하얀 눈이 내린 것이다. 하얀 눈이 시골 동네를 하얗게 덮고 있다. 널따란 잔디밭에도 하얀 눈이 가득하다. 먹거리를 찾아 나선 산새들은 몸이 달았다. 먹거리를 모두 덮어 버린 눈이 못 마땅해서다. 한두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소란을 피우더니 이내 사라지고 없다. 가끔 찾아오던 산까치도 흔적이 없다. 하얗게 덮은 눈이 원망스러운 모양이다. 두터운 이불을 푹 덮은 이웃집 닭장, 어둠 속에서도 닭들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알을 낳았는지 부산하고, 사랑방에 앉아 겨울을 나는가 보다.


드문드문 산을 넘은 바람이 골짜기 손님이다. 조용한 골짜기엔 도랑물 소리도 잦아들었다. 눈이 쌓인 골을 따라 눈만 빼꼼히 내놓고 옹알거린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도랑물만이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갑자기 큰 바람이 찾아왔다. 나뭇가지가 부산하게 움직인다. 바람의 심술에 가지에 앉은 눈이 부산을 떨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찾아온 바람에 놀란 가지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시 걸터앉아 겨울을 즐기던 눈이 깜짝 놀랐다. 허부적대는 하얀 눈이 앞 산에 휘날린다. 갑자기 하얀 눈이 날리는 골짜기가 되었다. 바람 덕에 만나는 멋진 풍경이다.

하얀 눈이 덮인 잔디밭, 햇살이 찾아왔다.

시골까지 덮고 있던 뿌연 먼지, 푸근한 오늘은 간 곳이 없다. 산을 넘은 햇살이 그 사이에 얼굴을 내밀었다. 가득한 푸름에 만나기 힘들었던 햇살을 겨울 따라 홀쭉해진 녹음 덕에 쉽게 만날 수 있다. 여름을 덮었던 푸름이 쇠해진 덕이다. 기어이 햇살이 가득 넘어온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넘어온 햇살이 골짜기를 비춘 것이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온 햇살, 하얗게 눈 내린 잔디밭까지 가득 내려왔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맑은 햇살이다. 반짝이는 햇살이 마구 튀어 오른다. 나뭇가지에 묻고 남은 햇살, 기어이 가지 사이을 뚫고 잔디밭까지 내려온 것이다. 시골에서나 만날 수 있는 맑고도 투명한 햇살이다.


유난히도 맑은 햇살이 하얀 눈 위에 떨어졌다. 눈 위에 떨어지고 남은 햇살이 튀어 올랐다. 사방으로 튀어 오른 햇살, 그 햇살이 창을 넘어 거실로 들이닥쳤다. 남은 커튼을 활짝 열어 햇살을 초대했다. 오늘따라 맑고도 투명한 햇살이 살아서 넘나 든다. 맑은 유리가 없는 듯 햇살이 거실로 찾아든 것이다. 숨 죽이던 거실 식구들이 화들짝 놀랐다. 벽에 걸린 가을도 놀랐고, 세월을 걸친 수석 한 점도 정신이 넘나 든다. 지난가을에 태어난 가을을 담은 수채화 한 점이다. 거실 한 벽에 걸려 있는 가을색의 수채화, 기어이 햇살을 맞이한 것이다. 화사하게 빛나는 가을이 유난이도 맑게 웃는다. 수채화 밑으로 한 점의 수석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강가에서 무던히도 오랜 세월을 버틴 수석이다.

지난 가을에 만난 수채화 그리고 수석 한 점

오랫동안 그려낸 수채화, 지난가을 세월을 이야기 삼아 그려진 수채화다. 긴 세월을 버틴 지리산 골짜기의 바위가 물을 만났다. 성스럽게 자란 나무가 있고, 그 사이를 뚫고 흐르는 물덩이가 있다. 골짜기 물을 먹고 자란 나무가 봄을 만났다. 푸른 봄에 태어난 연초록 잎이 여름을 맞아 검푸름으로 물들었다. 여름의 긴 장마를 묵묵히 견디자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의 정성으로 물든 낙엽이 나뭇가지에 앉은 것이다. 물은 끊임없이 흘러 수북이 골짜기를 흘렀다. 계절을 싣고 삶을 얹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었다. 가을이 익고, 익은 가을이 떨어진 물이 있다. 물속에 들어선 가을 위로 맑은 물이 흐른다. 흐르는 물 위에 햇살이 내려앉았다. 맑은 햇살을 먹은 도랑물이 흐느끼며 흐르고 있다. 여기에 바위와 세월이 어울려 골짜기를 이루었다. 장구한 세월의 골짜기가 시골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둑한 거실을 밝게 비춰주던 담담한 수채화가 오늘도 맑은 햇살을 만난 것이다.


장구한 세월을 견딘 수석은 말끔히 얼굴을 씻었다. 부드러운 피부에 검은색을 먹었다. 맑은 물이 오랜 세월 흐르며 닦아낸 얼굴이다. 반짝이는 얼굴에 검은 물이 들었고, 세월은 덧없이 흐르며 얼굴을 갈고 또 닦아 주었다. 묵묵히 세월을 견딘 수석이 아름다운 얼굴로 태어났다. 골부리던 햇살이 창을 넘어 들이닥친 덕이다. 몇 해전, 시골로 이사할 때 따라나선 수석이다. 젊음을 가득 담았던 수십 점의 수석, 홀가분함을 찾아 몇 점을 대동했다. 서러움을 안고 따라나선 수석, 말없이 시골집을 지켜주고 있다. 가끔 눈길을 주어도 언제나 변함없는 수석이다. 고단한 땀이 배인 몇 점의 수석, 기나긴 추억을 안고 있었다. 강가를 헤매다 기어이 집안으로 들여진 수석이다. 가끔은 제자리가 아닌 것 같아 안타까운 수석이지만, 젊음이 있고 세월이 묻어 포기할 수 없었던 수석이다.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던 수석이 맑고도 투명한 햇살을 받았다.

손녀가 남긴 겨울 날의 흔적

잔디밭에는 하얀 눈이 내린 아침, 잔디를 덮은 하얀 눈 위에 산을 넘은 햇살이 앉았다. 남은 햇살이 창을 열고 거실로 찾아들었다. 가을을 담은 수채화 한 점이 햇살을 보고 웃고 있다. 세월 먹을 수석 한 점이 덩달아 웃어 준다. 수채화를 지켜 주던 세월 속 수석 한 점과 벽에 걸린 수채화가 시골집을 빛내주는 아침이다. 여기에 커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조용하던 거실에 잔잔한 커피 향이 가득 덮었다. 따스함에 가을과 세월이 겨울 눈을 바라보고 있다. 숨도 쉴 수 없는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누구도 방해하지 받지 않는 골짜기의 겨울 아침이다. 지루하도록 고요한 시골 아침, 짙은 커피 향이 이층으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하얀 하늘이 내어 주는 햇살과 하얀 눈, 가을 수채화 그리고 세월의 수석이 그려내는 골짜기의 겨울 풍경이다. 여기에 지루함을 덜어주는 향긋한 커피 향이 내려앉았다. 자그마한 도랑물만 조용히 옹알대고 있는 골짜기의 겨울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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